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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초점] ‘트로트’로 향하는 젊은 국악인들을 바라보는 시선


입력 2021.03.09 08:47 수정 2021.03.09 08:48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양지은부터 김태연까지…'미스트롯2' 상위 4명 모두 국악인

"국악과 트로트, 기교·선법·정서 등 매우 흡사"

"설 무대 사라지는 국악계, 인재들 이탈 부추겨"

ⓒ포켓돌스튜디오, TV조선

양지은, 홍지윤, 김다현, 김태연은 TV조선 ‘미스트롯2’에서 각각 진·선·미와 4등의 성적을 냈다. 이들의 공통점은 흥미롭게도 모두 국악 전공자들이라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미스트롯’의 1대 진인 송가인도 국악 전공자다. 양지은은 중학교 때부터 판소리를 전공해 대학 시절에도 국악과를 졸업했고, 홍지윤도 국악을 전공했다. 김다현과 김태연도 어린 시절부터 판소리를 배웠고 ‘국악 신동’으로 알려져 있다.


이전에도 젊은 국악 인재들의 트로트로의 이동이 있었지만, 몇 년 사이 그 움직임이 가속을 내고 있는 셈이다. 1920년대 등장 당시 ‘엔카’와 닮았다는 이유로 왜색이 짙은 음악으로 치부됐던 트로트로의 이동이 대거 일어나고 있는 이유는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는 가수들이 탄생하면서다.


그중에서도 국안인들의 이동이 매우 자연스러운 일처럼 여겨지게 된 데에는 근본적으로 두 음악이 가진 특성 때문이다. 국악을 전공하고, 현재 국악·대중음악을 폭넓게 다루고 있는 작곡가 A씨는 “국악과 트로트는 기본적으로 비슷한 선법을 쓰고 있다. 또 국악과 트로트를 표현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한’과 ‘흥’이 강조되는 두 음악의 정서가 유사하기 때문에 국악인이 트로트에 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트로트는 7음계 중 ‘라시도미파’의 단조 5음계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도레미솔라’의 장조 5음계에서 ‘라’의 비중을 높여 사용하는 독특한 음계를 지니기도 했다. 국악의 경우에도 대표적인 선법으로 평조 ‘솔라도레미’, 계면조 ‘라도레미솔’을 사용하고 있다.


또 트로트에 담긴 ‘한’과 ‘흥’은 국악의 핵심 정서이기도 하다. 지금은 음계도, 정서도 다양하지만 1930년대 중반, 국내 창작이 본격화되던 시기 주로 애절한 슬픔의 노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행복할 수 없는 처지에 대한 비관, 고향을 떠나 정착하지 못하는 나그네의 고통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고, 이는 지금까지도 트로트를 ‘애환’과 ‘한’으로 인식되게 했다. 뿐만 아니라 꺾는 목과 흔드는 목과 같은 기교도 국악과 흡사하다.


이와 같은 이유들 때문에 국악으로 기본기를 다져 온 인재들의 트로트 도전이 다른 장르의 가수들보다 비교적 쉽고, ‘트로트의 맛’을 가장 가깝게 구현해낼 수 있는 셈이다.


그런데 다수의 국악 인재들이 트로트로 방향을 바꾸는 근본적 이유에 대해 업계에선 ‘국악의 현주소’를 언급했다. 소리꾼 집단 낭만판소리의 최민종 대표는 “아무리 국악계에서 수작을 내놓는다고 해도 메이저 매체에 노출되는 것이 쉽지 않다. 즉, 아무리 멋진 전통을 하더라도 일반 관객들로 객석을 채워 수익구조를 만들기 어렵다”고 말했고, 판소리를 전공한 B씨(34)는 “전통 국악인들이 설 무대가 점점 사라지고, 취업의 문도 좁아지는 현실”을 짚었다.


수십 년간 국악은 ‘트렌드에 뒤처지는 음악’ ‘고리타분하고 따분한 음악’이라는 편견과 싸워왔다. 2000년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국악의 대중화가 시작됐고, 최근 들어 이날치 밴드를 중심으로 몇몇 팀들이 좋은 성과를 내고 있지만 여전히 국악에 대한 편견은 존재하고, 갈 길은 멀다. 최근 국악 인재들이 트로트 등으로 이탈하는 현상도 이런 환경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란 설명이다.


최민종 대표는 “젊은, 실력 있는 국악인이 기회 부족이나 경제적 이유, 불안한 현실 탓에 트로트로 전향하는 것은 안타깝다. 결국 국악계의 현실 때문에 인재들의 이탈이 생기는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이들의 전향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진 않는다. 최근 이들을 중심으로 트로트 열풍이 불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대중들도 이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국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상생의 효과를 불러올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국악과 트로트의 상생에 힘을 보태고 있는 건 ‘미스트롯’ 1대 진 출신 송가인이다. 현재 트로트계에서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그는, 국악인으로서의 본분도 잊지 않는다. 트로트 가수로서의 방송 활동뿐 아니라 국악 관련 공연들에도 꾸준히 오르고 있고, 국악인들을 거듭 언급해왔다. 특히 최근 방송된 ‘조선팝어게인’ ‘외식하는 날’ 등에서는 국악계 절친들을 소개했고, 자신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로 ‘국악인에 대한 후원’을 꼽기도 했다.


다만 작곡가 A씨는 급격히 인기를 끄는 트로트의 열기에 편승했다가, 이후 목적이나 방향성을 잃고 흔들리는 국악인들이 발생할까 우려하기도 했다. 그는 “송가인과 같이 잘 되는 사람은 수십, 수백 명의 사람 중에 한 명 꼴이다. 잠깐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순 있지만 혹여 성공하지 못했을 경우, 이도 저도 아닌 상태가 될까 걱정”이라며 “그 리스크는 온전히 본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기 때문에 신중한 도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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