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음악인 배제했던 기존 지원 요건 변경
"시청자들의 의견 적극 검토·반영"
시청자 참여가 경연 프로그램의 성패를 가르는 시대다. 이는 사회 전반으로 퍼진 대중화 현상의 하나로 볼 수 있다. 특히 대중의 인기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가수를 가려내는 오디션의 경우는 더더욱 ‘전문가’보다 ‘대중’으로 평가자의 권위가 상당부분 옮겨갈 수밖에 없다. 경연 프로그램들은 이런 대중화의 방법으로 ‘투표’ 시스템을 도입했고, 이는 시청자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계기가 됐다.
최근 JTBC ‘슈퍼밴드2’가 참가자 모집 기준을 급하게 변경한 것도 시청자의 영향력 증가에 따른 결과로 볼 수 있다. 올해 상반기 방송을 앞둔 ‘슈퍼밴드2’는 당초 참가자 모집 공고를 게재하면서 나이와 국적·학벌·분야에 상관없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그 ‘누구나’에서 ‘여성 뮤지션’은 제외됐다.
앞선 시즌에서도 남성으로 지원자를 한정하면서 대중에 뭇매를 맞은 바 있다. 이런 지원자 예외 규정 탓에 프로듀싱팀 ‘얘네바라’는 실제 여성 키보디스트를 제외하고 두 명의 남성 멤버들만 출연해 ‘듀오’로 소개됐다. 여성 뮤지션 배제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자 제작진은 “‘슈퍼밴드’는 남성들로만 구성된 팝 밴드를 결성하는 것이 기획 의도”라고 밝히면서 프로그램이 호응을 얻으면 여성이 포함된 시즌도 제작할 의사가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시즌2에서도 여성 뮤지션은 배제됐다. ‘슈퍼밴드2’뿐만 아니라 JTBC는 세 번의 시즌에 걸쳐 진행된 음악 경연 프로그램 ‘팬텀싱어’를 제작하면서도 지원 요건을 ‘남성’으로 한정을 두기도 했다. 이에 네티즌은 ‘성차별적 모집’이라며 시대에 역행하는 JTBC 경연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JTBC ‘시청자의회’ 게시판에는 성차별적 지원조건을 규탄하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여성 음악인들도 직접 목소리를 냈다. 싱어송라이터 오지은은 “‘슈퍼밴드’ 또 남자만? 근데 왜 그렇게 정했는지 그 사고의 흐름을 알 것 같아서 더욱 화가 난다”고 했고, 밴드 새소년의 황소윤은 과거 ‘슈퍼밴드’ 시즌1의 지원 요건을 비판한 관련 기사를 랭크하면서 “안녕하세요. 저는 세계적인 밴드 새소년의 프론트퍼슨 황소윤이고요. 여성”이라고 썼다. 밴드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의 키보드·보컬을 맡고 있는 안다영도 SNS에 자신의 프로필과 수상 이력을 나열하면서 (‘슈퍼밴드2’ 지원) “자격 없음”이라고 썼다.
계속되는 비난 여론에 제작진은 3차 모집을 통해 ‘여성 뮤지션’을 추가해 지원 요건을 확대, 발표했다. 제작진은 “고심 끝에 참가 자격에 (성별의)제한을 두지 않기로 했다”면서 “여성 뮤지션의 참가를 꾸준히 원했던 시청자분들의 의견을 적극 검토해 반영했다”고 밝혔다.
‘슈퍼밴드2’ 지원요건에 성별 제한이 폐지된 건, 성차별에 꾸준히 목소리를 낸 네티즌과 여성 음악인들이 만들어 낸 결과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깊다. 동시에 경연 프로그램의 특성상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방송사의 처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최근 엠넷 ‘프로듀스’ 시리즈, TV조선 ‘미스트롯’ 시리즈 등 인기 경연 프로그램과 관련한 문제를 지적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네티즌을 중심으로 ‘진상규명위원회’가 구성되는 등 집단행동으로까지 번지고 있고, 이들의 활동이 발단이 돼 실제 제작진의 법적 처벌까지 이끌어냈다. 이런 상황에서 ‘슈퍼밴드2’가 특별한 이유를 내세우지 못한 이번 지원 요건을 유지할 때 입게 될 리스크는 결코 적지 않다.
‘슈퍼밴드2’가 지원 요건을 수정하면서, 표면적으로 대중이 지적한 논란은 일단락 됐다. 다만 이 변화는 여론을 의식한 보여주기식 대처로 끝나지 않아야 한다. 지원자 모집은 물론 본방송을 통해 보여줄 경연에서도 ‘실력’을 ‘성별’로 가르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차별 없는 뮤지션 발굴, 또 그들이 공정한 경연을 펼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하는 것이 인기 프로그램을 만드는 제작진과 방송사의 역할임을 다시 한 번 새겨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