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정도 걸어야 져도 이긴다…안철수 패착 복기(復棋)


입력 2021.03.25 08:30 수정 2021.03.25 08:10        데스크 (desk@dailian.co.kr)

국민의힘 전격 입당, 조기에 단일 후보 확정 짓는 전략 택했어야

제3지대 중도층 보수로의 지각변동이 안철수 선택 절박성 약화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왼쪽)와 오 후보 캠프에 합류한 안철수 공동선대위원장이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 참석해 손을 맞잡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북미 언론에는 먼데이 모닝 쿼터백(Monday Morning Quarterback)이란 말이 곧잘 나온다.


프로풋볼리그 NFL 경기는 시청자가 가장 많은 매주 일요일에 열린다. 쿼터백은 필드에서 뛰는 사령탑이다. 그가 작전을 짜서 던져 주거나 쥐어 준 볼을 잡고 뛴 선수가 주로 점수를 내게 된다. 월요일 아침 쿼터백이란 ‘어제 게임에서 그 공격을 이렇게 했으면 성공했을 텐데’라고 뒤늦게 후회하며 더 나았을 작전을 생각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안철수는 야권 단일화 흥행은 성공시키는 큰 역할을 했지만, 승부에서는 졌다. 그에게 먼데이 모닝 쿼터백의 훈수를 둬 봐야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불필요하진 않고, 안철수 본인에게나 정치를 이제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숙고할 가치가 있는 복기(復棋, 한 번 두고 난 바둑의 판국을 비평하기 위하여 두었던 대로 다시 처음부터 놓아 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안철수는 단일화 패배 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검찰총장 사퇴 후 정치 입문 준비를 하고 있는 윤석열에 대해 이렇게 말한 사람이다.


“저는 그분이 야권 지지자들의 정권교체 열망을 담고 있는 ‘거대한 댐’이라고 생각한다. 정치를 하든 안 하든 야권의 정권교체에 큰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만약 정치를 한다면 제가 직접 만나 뵙고, 저의 시행착오와 실수들을 다 얘기해주고 싶다. 왜냐면 저 같은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인으로서 시행착오를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저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그가 또 시행착오를 범했다. 상처에 모욕을 가하는 말로 들리기도 하겠지만, 안철수와 윤석열 같은 한국의 정치 지망생을 위해 쓴소리를 하고자 한다. 그의 시행착오란 선견지명과 담대한 승부 기질 부족, 그리고 신사적인 정도를 걷지 않은 점들이다.


먼저 그는 제3지대 맹주(盟主) 자리에 안주하지 말고 호랑이굴로 들어가 그 호랑이를 잡고 그 기세로 민주당 호랑이를 향해 내게 덤비라고 호령 했어야만 했다. 그는 정치는 생물처럼 살아 움직여서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며, 용기와 지략이 뛰어난 정치인은 그 꿈틀거림을 주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안철수가 지난 연말 “대한민국 서울의 시민 후보, 야권 단일 후보로 당당히 나서서 정권의 폭주를 멈추는 견인차 역할을 하겠다”며 차기 대선 포기 선언을 했을 때 국민들의 호응은 대단했다. 지지율이 여야 통틀어 단연 1위였다.


그는 그 정치 지형, 즉 문재인 정부에는 반대하지만 국민의힘 지지까지 가기에는 아직 이르다(혹은 멀었다)라는 제3지대 중도층 민심이 최소한 4월 7일 시장 보선 때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 후 윤석열 현상이 일어났고, 오세훈이 나경원에 역전승해 상승세를 탔으며,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가 터졌다.


이 세 가지 큰 이벤트는 중도층의 마음을 ‘혁명적으로’ 변화시켰다. 정당이 아닌 인물 중심으로 지지도가 바뀌었다. 정권 교체가 절실한 마당에 기존 정치인들 아닌 새로운 사람들이(오세훈 같은 중고 신인도 포함해서) 나타남으로써 중도층들이 제3지대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제2정파로 흔연히 결집하는, ‘지각변동’이 일어난 것이다.


안철수는 중도우파는 물론 중도좌파까지 보수우파로 대이동하는 격랑 속에서 초반에 그 흐름을 선도하다 중후반에는 자신이 그 파도에 휩쓸려 자취를 감추게 된, 민심 급변의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시간이 갈수록 서울 시민들 다수는 오세훈에게 더 관심을 보였고, 3지대결에서도 민주당 박영선에게 안철수, 오세훈 두 야권 주자들이 다 이길 수 있다는 여론조사들이 속속 발표되면서 ‘안철수 아니면 여당에 진다’는 경고등이 빛을 잃기 시작했다.


여기서 오세훈과 안철수의 게임은 사실상 끝났다. 둘 다 박영선을 이긴다면, 굳이 안철수에게 표를 몰아 줄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인물, 언변, 정치 지향 등에서 매력을 가진 오세훈은 단일 후보가 되어야 할 이유들이 많아진 반면 안철수는 줄어들게 됐다. 안철수는 제3지대 어드밴티지를 잃은 데다 개인의 능력, 호감도와 3석 정당의 한계에도 부딛혔다.


그는 페이스를 잃고 막판에 자신의 그릇 크기를 내보이고 말았다. ‘기회주의 3종 세트’가 그것이다. 윤석열이 뜨자 청와대 게시판에 LH 사태 관련 검찰의 직접 수사를 청원하면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마음을 담아 촉구한다”라고 적었다. 야권 단일 후보 경쟁에 나서는 사람치고는 구차하고 민망한 구애(求愛) 제스처였다.


‘국민의힘 간판으론 표 떨어지는데 내가 왜 거기에 들어가냐’라고 했던 처음의 콧대 센 제3지대 대표 위세는 어디 가고 갑자기 당선되면 합당하겠다고 한 것도 앞뒤가 안 맞고, 유불리만 계산한다는 그에 대한 인물평을 재 상기시켜 주는 것이었다. 민주당이 오세훈보다는 안철수가 상대하기 더 쉽다고 보고 오세훈만 죽어라고 때려댄 이유이기도 하다.


안철수는 인기 좋던 초반에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해 후보를 확정 지어 버렸어야 했다. 그런 다음 제3지대 표들을 자기 편으로 끌고 오는 게 순서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용기와 선견지명이 그에겐 없었다. 그랬더라면 오세훈에게 역전패를 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오세훈은 안철수가 입당하면 후보로 나서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니 그는 나경원만 꺾으면 됐고, 아마도 낙승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는 단일화 여론조사가 진행되고 있던 22일 오세훈을 향해 “내곡동 처가 땅 투기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약속대로) 사퇴할 수도 있다. 그러면 야권 후보 없이 선거가 치러지게 된다”라며 ‘무결점 후보 안철수’를 지지해 달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네거티브 공세로 단일화 후보 자리도 잃고 인격도 잃었다.


오세훈이 민주당의 내곡동 의혹 공격에 “나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라고 지지자들을 안심시킨 대로 자신이 있으니까 서울시 직원들의 (셀프 주택지구 지정) 증언이 나오면 후보를 사퇴하겠다고 하지 않았겠는가? 설령 어떤 증언이 나온다 한들 그것이 검증되려면 선거 후나 될 텐데 그가 후보 직을 서둘러 사퇴할 리도 없다.


그럼에도 안철수는 같은 진영 단일화 라이벌에게 상대 당이 약점으로 잡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의혹 공세에 편승하는, 자살골 차기의 비신사적인 면모를 보였다. 서울시장이 그의 최종 목표가 아닐진대, 어쩌려고 그런 패착(敗着)을 두었는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도(正道)를 걸으면 져도 이기는 게 정치이고 인간 세상의 삶이다. 안철수는 물론 정치인들 모두에게 이러한 진리 말씀을 드린다.


글/정기수 자유기고가 (ksjung7245@naver.com)

'정기수 칼럼'을 네이버에서 지금 바로 구독해보세요!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