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제재 위반 지적하며 대화 여지 남겨
바이든 "비핵화 조건부로 외교 진행돼야"
선제적 제재완화 등 '당근' 제시 안 할 듯
"北 도발, 모두가 예상하는 일상적 행동"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재검토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상황에서 북한이 탄도미사일 발사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나섰다.
다음주 워싱턴에서 한미일 안보 당국자가 머리를 맞대고 대북정책을 최종 조율할 예정인 만큼, 북한의 이번 군사 도발이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각)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 "유엔 결의안 1718호를 위반한 것"이라며 "긴장을 고조시킨다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1718호 결의안은 지난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에 대응해 유엔이 채택한 제재안으로,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금지를 골자로 한다.
바이든 행정부의 '원칙적 대응'은 미 본토 위협이 되지 않는 단거리 미사일을 묵인했던 트럼프 행정부 대응과 차이가 있다. 실제로 미국은 이날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책임을 묻는 차원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소집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북제재위는 안보리 이사회보다 무게감이 떨어져 압박 수위가 높다고 보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미국이 사실상 '수위조절'에 나선 것은 '대화의 문이 아직 열려있다'는 바이든 대통령 발언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외교의 방식도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다만 "비핵화의 최종 결과에 따라 조건부로 진행돼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앞서 아시아 순방에 나섰던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이 '완전한 북한 비핵화' 목표를 달성하는 차원에서 외교적 접근을 취하겠다고 공언한 내용을 재확인한 셈이다.
결국 미국의 이날 대응은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경고를 보내면서도 대화 여지는 남기는 '절충안'으로 풀이된다. 다만 '비핵화와 연계된 외교'를 못 박아 바이든 행정부가 거듭 강조해온 '잘못된 행동에 보상을 줄 수 없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는 평가다. 이는 북한의 협상 테이블 복귀를 꾀하기 위해 선제적 제재완화나 한미연합훈련 중단 등의 '당근'을 제시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이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이 요구하는 적대시 정책 철회를 통한 북미대화 재개 방식보다는 인권 문제, 돈세탁과 같은 '북한 약점'을 잡아서 오히려 북한을 견인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자문연구위원은 "북한이 적대시 정책을 철회해야 북미대화를 하겠다고 거듭 밝혀왔다"면서도 "적대시 정책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진 않다. 이는 미국이 먼저 카드를 가지고 오라는 얘기인데, 바이든 행정부는 응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가 인권 유린·돈세탁 등 북한이 국제규범을 위반한 문제를 부각시키고 있다며 "결국 북한이 조건 없이 대화에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워싱턴 조야가 지난해 연말부터 끊임없이 북한 도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다양한 대북 접근법을 모색해온 만큼, 이번 탄도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대북정책 노선이 수정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다.
마크 피츠패트릭 전 미국 국무부 비확산 담당 부차관보는 미국의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의 군사도발을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라며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를 더 했다고 재검토 중인 대북정책의 내용이나 속도를 변경할 필요를 느끼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 특사는 재검토 중인 대북정책에 "북한이 어느 시점에 '온도를 끌어올리는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점도 포함돼있을 것"이라며 미사일 도발이 대북정책 수립에 큰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을 지낸 게리 세이모어 박사 역시 북한의 군사도발은 "모두가 예상하는 북한의 일상적 행동"이라며 "정책 검토에 아무런 영향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