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고객 영업 중단 선언…현실로 다가온 철수설
실적 악화, 제로금리, 금융당국 압박까지 '삼중고'
한국씨티은행이 개인 소비자를 상대로 한 소매금융 사업을 접기로 했다. 기업금융 부문을 남기기로 하면서 간판은 그대로 유지하게 됐지만, 조만간 미국 씨티그룹이 한국에서 손을 뗄 지 모른다는 철수설은 이제 더 이상 소문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게 됐다.
거대 글로벌 금융사의 결단을 둘러싸고 시장의 충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우리나라 금융의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드러내는 한 단면이란 지적도 나온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 한국씨티은행의 본사인 씨티그룹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와 유럽, 중동, 아프리카 지역 내 13개 국가의 소비자금융 사업에서 출구 전략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신 기업금융 비즈니스에 보다 집중적이고 지속적인 투자를 가져갈 것이란 방침이다.
외국계 은행이 국내 소비자금융 시장에서 손을 떼는 것은 2013년 HSBC코리아 이후 8년여 만의 일이다. 이로써 우리나라에서 개인 고객 영업을 지속하는 외국계 은행은 SC제일은행만 남게 됐다.
소매금융 영업 중단으로 한국씨티은행은 인력 구조조정이 예상된다. 다만, 이를 인수하겠다는 금융사가 나타날 경우 고용승계 가능성도 열려 있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씨티은행의 임직원은 총 3500명으로, 이중 소매금융 부문 임직원은 939명이다.
씨티그룹의 행보는 수년간 계속되던 한국 철수설이 어느 정도 사실이었음을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씨티은행은 2014년과 2017년에도 오프라인 점포 통폐합에 속도를 내면서 국내 시장에서 발을 빼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올해 초 다시 한국씨티은행의 철수설이 수면위로 떠올랐을 때 국내 금융권의 반응은 예전과 사뭇 달랐다. 우리나라의 영업 환경이 어느 때보다 열악해져 있는 만큼 예전보다 현실화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수익성 악화다. 한국씨티은행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1878억원으로 전년 대비 32.8% 급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전반적인 경기 침체가 심화한데다, 향후 부실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충당금 적립 부담이 커진 탓이다.
개인 고객 실적은 거의 바닥까지 고꾸라졌다. 한국씨티은행의 소매금융 부문 당기순이익은 148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59.5%나 줄었다. 전체 당기순이익에서 소매금융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7.9%까지 쪼그라들었다.
코로나19가 불러온 제로금리는 결정타가 됐다.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금융시장은 주요 선진국들에 비해 비교적 높은 수준의 기준금리를 유지하며 글로벌 투자 수요를 끌어들여 왔다. 하지만 지난해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사상 처음 0%대로 떨어지면서 투자 매력을 상당히 잃게 됐다는 평이다.
금융당국의 태도도 살펴봐야 할 대목이다. 코로나19 이후 금융당국은 각종 서민 지원 정책에 은행들을 동원해 왔다. 그런데 외국계 은행들이 코로나19 금융지원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비판이 일었고, 이에 한국씨티은행은 금융당국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했다.
금융당국의 배당 축소 압박은 씨티그룹의 마음을 돌리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 됐을 것이란 분석이다. 한국씨티은행은 매년 배당의 형태로 당기순이익의 대부분을 미국 본사로 보내 왔다. 문제는 금융당국이 코로나19 대응을 이유로 배당을 줄이라고 주문하면서 불거졌다. 이 때문에 한국씨티은행은 지난해 당기순이익 중 20%밖에 배당하지 못했다. 씨티그룹 입장에서 보면 한국에서의 수익이 그 만큼 줄게 됐다는 의미다.
금융권 관계자는 "코로나19와 저금리, 정책적 요인이 맞물리면서 국내 금융권의 사업 환경이 크게 열악해진 가운데 글로벌 금융사가 손을 뗀 나라라는 상징성은 시장에 시사하는 바가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