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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캐릭터탐구⑦] 소년과 사내의 동거, 배우 엄태구(낙원의 밤)


입력 2021.04.20 14:35 수정 2021.04.20 23:52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태구 by 엄태구(낙원의 밤)

도환 for 엄태구(시시콜콜한 이야기)

배우 엄태구 ⓒ넷플릭스 제공

영화 ‘낙원의 밤’(감독 박훈정, 제작 영화사 금월, 배급 NEW)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박훈정 감독은 ‘마녀’ 때도 김다미라는 신인 배우를 타이틀 롤로 기용한 바 있지만, 자신의 출세작 ‘신세계’를 잇는 느와르에 엄태구를 주인공으로 세운 것은 세간을 놀라게 했다.


엄태구로 말하면, 배우로서 마스크 좋고 표정과 움직임도 동물적이라 할 만큼 감각이 발달한 연기자다.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동창생’ ‘차이나타운’을 통해 느와르에 어울리는 아우라를 보여줬고, ‘인간중독’ ‘택시운전사’에서는 짧은 등장에도 존재를 기억하게 하는 힘을 내뿜었다. 지명도를 제외하면 K-느와르, 한국형 느와르에 제격인 배우임에 틀림 없기에 캐스팅에 무리는 없었다. 이제 ‘낙원의 밤’을 통해 그 스타성마저 검증받으면 명실상부하게 주연배우 자리에 안착할 것이다.


그것의 가능과 불가능을 결정하는 건 언제나 그렇듯 관객의 손에 달렸다. 가늠해 볼 때, 엄태구에게 유리한 지점이 있다. ‘낙원의 밤’ 박태구(엄태구 분)에게는 ‘신세계’의 이자성(이정재 분)에게 없는 멜로 감성이 보태졌다. 느와르를 깨지 않을 만큼 여릿한 감성이고, 엄태구가 잘하는 ‘시작하는 단계에서의 머뭇거림과 풋풋함’이 살아있는 멜로다.


영화 '시시콜콜한 이야기' 스틸컷 ⓒ출처=네이버 영화정보

단정하여 엄태구가 잘한다고 적은 것은 영화 ‘시시콜콜한 이야기’(감독 조용익)에서의 백도환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33분 길이의 중편영화인데, 엄태구에게서 칼과 피를 빼면 얼마나 싱그럽고 사랑스러운지 차고 넘칠 만큼 확인된다. 거칠고 투박한 야성적 이미지가 이미 뇌리에 각인된 배우인데, 불과 영화 시작 후 3분이 가기 전에 과거 작들은 기억에서 밀어내고 자상하면서 예의 바른 ‘숙맥’으로 마음을 파고든다. 그의 상처를 쓰다듬어 주고 싶고, 새로운 연애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든다.


배우 엄태구가 얼마나 예쁜 눈과 단정한 입술, 가지런한 잇속을 지녔는지 조용익 감독의 카메라 포착 덕을 톡톡히 본다. 특히 막바지, 영화 속에서 줄곧 얘기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장면처럼 초록 나무 그늘에서 “아이스크림 너무 먹고 싶었어”라고 수줍게 말하고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쥐어박듯 치며 자책하는 모습, 핑크빛 하드를 이가 얼얼한 표정으로 와드득 씹으며 눈을 꼭 감고 “이제 우리 영상통화 그만해”라고 말하는 모습이 정말이지 사랑스럽다.


생의 벼랑 끝에 선 두 사람. 남은 시간도 도망칠 곳도 없다 ⓒ이하 넷플릭스 제공

그런 백도환이 박태구에게서 보인다. 영화 ‘낙원의 밤’에서 태구는 재연(전여빈 분)과 있을 때, 그 외의 사람과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누나랑 조카와 있을 때의 모습이 된다. 에이스 깡패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따뜻한 사람일 뿐이다. 중학생 시절 가족을 잃고 홀로 된 재연, 이번엔 삼촌마저 떠나고 다시 홀로 된 그는 태구에게 가지 말라고 또다시 혼자가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 말 한마디를 들어주려고 태구는 무던히 애쓴다. 지키지 못한 누나와 조카, 이번만큼은 꼭 지키겠다는 듯 재연 곁에 머무는데 운명은 녹록지 않다.


시한부 인생으로 시간으로부터 도망갈 길 없는 재연. 러시아로 보내주겠다는 ‘생’ 양아치 양 사장(박호산 분) 꾐에 넘어가 제주도까지 왔지만 성내지 않아 더 무서운 북성파 넘버2 마 이사(차승원 분)의 추격에 더는 도망갈 곳 없는 태구. 앞길도 퇴로도 막힌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마음으로 의지한다. 속으로는 서로를 받아들였으면서도 겉으로는 티격태격.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이 먼저 떠날 것이라고 똑같이 생각한다. 홀로 남게 될 상대의 아픔을 생각해 마음을 나누지 못하는 두 사람.


전하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해도 두 사람의 마음은 이미 낙원이다. 낮에는 피 칠갑, 붉은 해가 저물면 재연과 함께하는 낙원의 밤. 누아르는 꼭 지옥일 필요 없다고, 검은색이 꼭 비극은 아니라고 박훈정 감독이 말하는 것만 같다.


스크린 밖에선 부끄럼쟁이, 영화로 들어가면 천생 배우 엄태구 ⓒ

박훈정 감독이 배우 엄태구의 이름을 염두에 두지 않고 캐릭터에 맞게 지은 게 ‘태구’란다. 엄태구에 의한 박태구는 필연이었나 보다. 엄태구에 의해 표현된 태구, 태구 by 엄태구가 좋다. 다른 누구를 상상하고 싶지 않다.


배우 엄태구의 숨겨진 매력, 자연인 엄태구의 모습을 십분 느낄 수 있는 백도환은 엄태구를 위한 캐릭터다. 도환 for 엄태구, 기분이 언짢거나 처지는 날이면 자꾸만 만나고 싶다. 무자비하고 악랄한 ‘밀정’의 하시모토와 ‘시시콜콜한 이야기’ 백도환 사이, 하시모토보다는 백도환 쪽으로 기운 박태구. 거친 외면 속에 여린 감성을 감춘 태구를 만나고 싶다면, ‘낙원의 밤’이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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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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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위 2021.04.20  02:58
    인성최고 기대되는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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