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정당‧후보에 '불모지' 광주‧전남서 15% 안팎 지지율 유지
강성친문에 대한 거부감과 '호남적자'없는 상황도 맞아떨어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호남 지역 지지율이 심상치 않다. 그동안 범보수‧야권에겐 불모지나 다름없던 호남에서 두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하며 새로운 현상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앞서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실제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지난 16일 전국 18세 이상 101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윤 전 총장은 호남지역에서 41.4%로 이재명 지사(40.8%)에게 근소하게 앞섰다. 윤 전 총장은 모든 지역에서 우위를 지키며 51.1%로 이 지사(32.3%)를 압도했다.
4.7보궐선거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윤 전 총장은 호남에서 15% 안팎을 유지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TBS 의뢰로 지난 16~17일 전국 만18세 이상 10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15.1%를 기록했고, 리얼미터가 JTBC 의뢰로 지난 18일(성인남녀 1020명 대상) 실시한 조사에선 17.7%였다.
보수진영 '금단의 땅'에 뿌리…역대 대선에선 어땠나
윤 전 총장이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아직까지 호남에선 이재명 지사와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아성을 넘지 못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럼에도 정치권이 호남 민심을 주목하는 것은 윤 전 총장이 야권의 '금단의 땅'에 서서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간 보수정당의 호남지역 대선 전략은 승리가 아닌 두 자릿수 득표율이었다. 지난 대선에선 "호남에서 10%만 찍어주면 은혜 갚겠다"가 지역구호가 되기도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대선에서는 광주‧전남‧전북 10%를 목표로 잡아 왔는데, 그 마저도 쉽지 않았다"고 했다.
역대 대선에서 보수정당 후보가 호남에서 두 자릿수 득표율을 기록한 것은 2012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일했다.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전남에서 10.0% 득표율을 기록하며 '보수의 불모지' 공략에 성공했다. 전북에서도 13.22%로 선전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역대 최대 격차인 531만7708표 차이로 압승을 거둔 17대 대선에서도 광주는 8.59%의 득표만 보냈다. 지난 19대 대선은 더 심각한 수준이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광주와 전남에서 얻은 득표는 각각 1.55%와 2.45%에 불과했다.
호남은 왜 지지할까…선거참패, 백신문제, 대깨문, 전두환
정치권에서는 윤 전 총장을 향한 호남의 '이례적인' 지지성향을 4.7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완패한 후폭풍으로 보고 있다. 이른바 대깨문으로 불리는 강성친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윤 전 총장에게 반사이익으로 작용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대선을 11개월 남겨두고 아직까지 '호남의 적자'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윤 전 총장이 일종의 대안후보로 자리 잡은 측면도 있다. 향후 대선정국이 본격화되고, 유력주자 윤곽이 드러나면 "우리쪽 될 사람을 밀어준다"는 전략적 투표성향이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여권에선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며 애써 의미를 두지 않으려는 표정이다. 여론조사 표본수가 워낙 적다보니 민심이 반영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리얼미터-JTBC 조사의 경우 광주‧전라지역 표본이 92명이었고, 리얼미터-YTN 조사는 광주‧전남‧전북 80명이었다.
윤 전 총장이 대학시절 모의형사재판에서 당시 전두환 대통령에게 사형을 구형해 경찰 수배를 받은 일화가 호남 민심을 자극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념성향을 떠나 '反전두환' 정서가 뿌리 깊은 호남이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호남 민심이 4.7보궐선거 참패로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코로나19 백신 문제로 좀 더 싸늘해진 게 아닌가 싶다"면서 "윤 전 총장이 모호한 위치에 있으니까 저쪽(야권) 사람으로 보지 않는 시각도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꽃가마 태우려는 야권…벌써부터 "우리 총장님"으로 불려
정치권에선 결국 윤 전 총장의 정치적 선택지에 따라 호남 민심도 요동칠 것이란 데 이견이 없다. 아직은 제3지대에 있지만, 신당창당이나 기존정당 입당 등에 따라 민심 대이동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리얼미터-YTN 조사에선 보수 성향의 75.4%가 윤 전 총장에게 투표하겠다고 밝혔다.
야권에선 윤 전 총장이 호남에서도 지지를 받는 범보수 대권주자로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흘러나온다. 현재 지도부 선출과 통합 등 야권 재편 논의에서 윤 전 총장 영입이 주요 의제로 등장할 정도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전 총장을 부를 때 '우리 총장님'이라고 하는 분들도 제법 있다"고 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호남은 여전히 민주당 지지가 강한 것이 사실이다. 윤 전 총장 지지율이 두 자릿수가 나오지만 온전히 옮겨간 것으로 보긴 어렵다"면서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국정운영에 대한 피로감 등으로 대안을 찾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평론가는 "윤 전 총장의 호남을 비롯한 지지율은 4.7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이긴 것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면서 "민심이 유동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