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지분 자회사 설립...5월 제안서 제출
‘경쟁 심화’ ‘제 살 깎기’ ‘점포 축소’ 우려
금융지주사들이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의지를 다지고 있다. 기존 은행에서 디지털금융을 하고 있으나, 새로 인터넷은행을 만드는 것이 더 경쟁력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기존 은행이 인터넷은행에 뛰어들면 소비자의 선택권은 넓혀지는만큼 긍정적인 효과가 예상된다. 단 K뱅크나 카카오뱅크 등과 다른 차별화된 혁신성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금융지주는 다음주 은행연합회를 통해 금융위원회에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관련 정책 제안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은행장들은 지난 26일 은행연합회 정기이사회에 참여해 금융지주사의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라이센스를 허용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인터넷은행 참여 형태는 100% 지분을 가진 자회사 방식이 예상된다. 앞서 금융지주사들은 지난 7일 은행연합회가 진행한 설문에서 인터넷은행 100% 자회사 소유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KB금융의 경우 이환주 부사장(CFO)이 최근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금융위원회와 협의 중"이라며 "만약에 라이센스 허용 정책 방향이 바뀐다면 저희(KB금융)도 할 가능성 있다"고 언급했다.
디지털 금융그룹을 별도 자회사로 떼어내는 ‘BIB(Bank In Bank)' 형태도 거론됐으나, 이사회에 참석한 은행장들이 어렵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BIB는 숍인숍 같이 기존 은행 브랜드에 다른 브랜드를 만들어 서비스하는 방식으로, 별도 라이선스를 받을 필요가 없어 편리하다. 그러나 기존 모바일 뱅크와 다르지 않고 내부 경쟁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사실 금융지주사들은 오래전부터 인터넷은행에 눈독을 들여왔다. 비대면 거래가 급증하면서 기존 모바일 앱으로 디지털 금융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규제 강도나 비용, 조직관리, 속도 등에서 오프라인 은행은 인터넷은행 대비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현재 KB금융과 우리금융지주가 은행을 통해서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의 지분을 보유 중이지만 역할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특히 인터넷은행들은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사실상 인터넷은행 시장을 독점하다시피한 카카오뱅크는 하반기 상장을 위해 예비심사 신청서를 접수했다. 예상 기업가치만 20조원대이다. 카카오뱅크가 장외 시장에서 주당 8만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는 것을 감안하면, 단순 계산으로 32조원을 넘는 셈이다. 1위 업체인 KB금융지주의 시가총액은 22조(4월 중순)이다. 지난해에는 1136억원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며 내실을 다지고 있다.
1호 인터넷은행인 케이뱅크도 비대면 열풍에 힘입어 수신잔액이 10조원을 돌파했다. 지난해는 암호화폐 거래소인 업비트와 계좌 등록 제휴를 맺고, 암호화폐 투자자들의 예치금으로 자산규모를 키우고 있다.
금융당국은 오는 7월 은행업 경쟁도 평가를 실시한 뒤 금융지주의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 허용 문제를 살펴볼 방침이다. 당국은 지난2018년 은행업 경쟁도 평가 결과 신규은행 진입 여부를 긍적적으로 보고 2019년 말 ’토스 뱅크‘ 설립을 허용한 바 있다.
금융당국 입장에서 기존 은행들의 진출은 시장의 저변을 넓히고, 중금리 대출 확대같은 정책 목표를 추진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당시 중·저신용층에 대한 대출 확대를 기대했으나, 금융위로부터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는데 그쳤다.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혁신적인 변화가 있었지만 중금리 대출은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인터넷 은행이 지난해 전체 은행권 중금리대출(1조8000억원)의 75%를 차지했으나, 전체 가계대출 중 중저신용층 대출은 15.6%에 불과했다.
다만 인터넷은행 시장이 3년차임을 고려하면 과도한 경쟁심화도 우려된다. 케이뱅크가 증자를 받은 뒤 겨우 정상화된 가운데, 제3인터넷은행인 토스뱅크는 아직 출범조차 안 된 시점이다. 자칫 과거 LCC(저가항공사)가 돈이 된다고 대형항공사를 포함해 앞다퉈 뛰어들다 과잉경쟁으로 시장이 망가진 전례를 되풀이 할 수 있다.
시장은 물론 계열사간 제 살 깎아먹기도 예상된다. 기존 은행들은 디지털 전담 조직을 꾸리고 경쟁력 강화에 한창이다. 인터넷은행 자회사 출범은 결국 내부 구조조정 전략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혁신성 충족도 관건이다. 각 지주사들은 대표 은행의 모바일 앱을 통해 각종 비대면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금융위의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 평가항목 및 배점’에서 혁신성 항목 비중은 전체 35%로 가장 높다. 지주사가 선보일 인터넷은행의 혁신성이 기존 비대면 서비스와 어떻게 다른지를 입증해야 하는 것이 숙제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주사들이 인터넷은행 시장에 진출을 하기 위해서는 혁신성과 중금리 상품 확대가 핵심 충족 요소가 될 것”이라며 “특화 상품을 선보이거나 오프라인 점포 운영능력을 활용해 온라인 영업에 적용시키는 등의 다양한 시도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다만 비대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존 금융사들의 시도는 오프라인 점포 축소를 부추길 수 있다. 이 관계자는 “인터넷 은행 진출의 성공을 위해서 비대면 요소를 부각시킬 수 밖에 없는데, 이는 금융당국의 점포 효율화 방향과 부딪힐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은행의 점포 수는 6405개로, 1년전보다 304개 줄었다. 신설된 점포 수는 30개에 불과했다. 시중은행의 경우 238곳이 폐쇄했고, 지방은행도 44곳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