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2만명 넘는 모임도…순수 지지모임 아닌 '조직'역할 자처
향후 정치적 부채로 작용할 우려도…"사랑하려면 사랑만 해라"
범야권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지율 선두권을 달리면서 팬클럽도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회원수 2만명이 넘는 대형 모임부터 500명 규모의 온라인 팬카페까지 수십 곳에 달한다.
윤 전 총장은 아직 대선무대에 오르지도 않았는데 팬클럽부터 생겨나 응원할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다른 정치인 팬클럽에서 운영자로 활동해본 경험이 있는 이들이 '무대세팅'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들은 기사나 칼럼을 공유하는 기본적인 온라인 활동은 물론 정치적 기반이 없는 윤 전 총장의 '조직'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일부 팬클럽은 시‧도단위의 지역별 모임을 꾸리며 내년 대선에 뛰어들 준비하고 있다.
비공개 페이스북 그룹 '윤석열을 사랑하는 모임(윤사모)'이 대표적인 윤 전 총장 팬클럽으로 꼽힌다. 가입자만 2만명이 넘는 윤사모는 올해 초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갈등을 겪을 때 여권 지지층과 '화환대전'을 벌이며 세과시를 하기도 했다. 게시판에선 윤 전 총장을 "후보자"로 부르며 지원방향 등을 논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윤 전 총장 이름의 '열'자를 따온 '열지대(悅地帶)'라는 팬클럽도 생겨났다. 이들은 윤 전 총장의 돌잔치 사진, 초등학교 시절 부친 윤기중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와 찍은 사진, 대학 졸업 사진 등을 공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윤 전 총장과 직접적인 인연이 없으면 입수하기 어려운 사진이다.
"누구를 '사랑한다는 모임'이면 사랑만 해줘야"
이들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엇갈린다. 우선 야권에선 '팬덤 리스크'를 더 크게 보고 있다. 윤 전 총장이 제3지대에서 세력을 규합하거나 기존 정당에 입당하는 등 정치적 선택을 할 때 부채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팬클럽에서 '정치적 지분'을 요구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실제 일부 팬클럽은 단순히 윤 전 총장을 지지하는 순수한 성격의 모임이 아닌 지역조직까지 갖춘 정당 성격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윤사모는 윤 전 총장의 의사와 관계없이 그의 정계입문을 준비한다는 명분으로 '다함께자유당'이라는 정당 창립을 추진하고 있다.
다함께자유당은 지난달 27일 인천에서 중앙당 창당을 시작으로 대전시당, 대구시당과 부산시당을 창당했다. 이들은 조만간 전국 16개 시·도당 창당을 마무리하겠다는 구상이다. 윤 전 총장 의지와 관계없이 '윤석열당'이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누구를 사랑하는 모임이라고 했으면 사랑만 해야 하는데, 그걸로 뭔가 정치적 인정을 받거나 이익을 보려고하면 안된다"면서 "'아미'(BTS 팬클럽)처럼 기부와 봉사를 하는 선한 영향력을 하면 자연스럽게 그들의 이미지도 좋아진다. 그게 순수한 팬클럽의 힘"이라고 말했다.
정치인 팬클럽의 '순수성' 지지층의 '극성' 도마에
지난 2017년 대선에서도 정치인 팬클럽의 순수성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당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팬클럽인 '반딧불이'는 당시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를 공개 지지하며 노선을 틀었다. 반 전 총장이 대선무대에서 내려오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 것이었다.
순수한 지지모임이 아니라 선거철 정치판을 옮겨 다니는 브로커에 가깝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현재 윤 전 총장 팬클럽을 움직이는 인물 가운데 반딧불이 출신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극성 팬덤'문제가 정치권 화두로 떠오른 만큼 윤 전 총장이 대선무대에 오르기 위해선 팬클럽과의 관계 설정도 정리해둘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지자들의 움직임을 단순히 '양념'이라고 묵인하기엔 자칫 여당처럼 극렬지지층에 끌려다니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 팬클럽을 직접 운영해본 정치권 관계자는 "노사모와 박사모 이후 팬클럽 중에 순수한 지지모임은 찾기도 어렵다"면서 "서로의 목적과 결과, 보상이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한순간에 안티팬클럽 등으로 돌변하는 게 이쪽 생리"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런 측면에서 윤 전 총장 팬클럽은 굉장히 위험해 보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