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 아메리카' 기조 속 생존전략 차원 대규모 투자 불가피
대미 투자, 그룹 총투자액의 8% 수준…여전히 국내 투자 비중 절대적
현대자동차그룹이 미국에서의 전기차 생산 및 5년간 74억 달러(한화 8조1417억원)의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재계에서는 바이든 정부의 통상정책이 트럼프 시절보다 더욱 강력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세계 양대 시장 중 하나인 미국에서의 입지를 유지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14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이번에 발표된 대미 투자계획은 절대 규모로는 적지 않은 액수지만, 그룹의 전체 투자규모에 비하면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2020년 신년사에서 그룹 연간 총투자 규모를 20조원 수준으로 확대해 당시부터 5년간 총 100조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에 5년간 투자하는 금액을 연 단위로 환산하면 1조6000억원 정도다. 연간 투자 집행 규모인 20조원의 8% 수준이다.
미국에 이정도 금액을 투자한다고 해서 국내 투자에 차질이 생기지는 않을 수준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국내에 그룹 계열사들의 핵심 사업장과 연구개발(R&D) 시설이 대부분 위치해 있는 만큼 전체 투자에서 국내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룹 전체에서의 비중은 크지 않지만 바이든 정부에는 충분한 ‘성의’를 표시할 수 있는 수준의 투자금액이다.
바이든 정부의 통상 정책은 이전 트럼프 정부보다 더 강력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고,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앞 다퉈 미국 투자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자국 내 생산을 우선시하는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를 내세운 미국 정부의 움직임을 감안하면 현지 투자에 소극적으로 임하는 기업은 버티기 힘든 상황이다.
결국 현대차그룹의 미국 투자는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대차 아이오닉 5, 기아 EV6 등 전기차 모델의 미국 현지 생산도 바이든 정부의 ‘그린뉴딜’ 및 ‘바이 아메리카’와 연계한 전기차 정책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바이든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과감한 친환경 정책에 나서고 있다. 기후변화협약에 재가입한데 이어 지난달 22일 바이든 대통령 주도로 열린 화상 정상회담에서는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재확인했다.
지난해 말 대선 과정에서 ‘친환경차 산업에서 100만개 일자리 창출’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바이든 대통령의 기조에 따라 전기차나 배터리의 미국 현지 생산을 유도하거나 강제하는 강력한 정책들이 수립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지난 1월 바이든 대통령이 정부기관의 공용차량을 미국산 부품 50% 이상을 미국 현지에서 생산한 전기차로 교체하겠다는 ‘바이 아메리카’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도 이 같은 기조의 연장선상에 있다.
오는 7월경에는 미 환경보호청(EPA)이 보다 강화된 온실가스 강화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며, 친환경차 지원 프로그램의 수혜 조건을 보다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전미자동차노조는 미국에서 생산한 전기차에 대해서만 보조금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들을 감안하면, 더 이상 미국에서 내연기관차만 생산하거나, 국내에서 전기차를 생산해 수출하는 방식으로는 미국 자동차 시장 변화에 대응할 수 없다는 계 현대차그룹의 판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차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전기차 현지 생산이 불가피하다”면서 “미국 시장 내 자동차 업체들의 전동화 리더십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국내생산 수출 방식으로는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