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銀 전세대출 113조…올해만 7조8천억↑
속도조절 나선 은행…서민 부담 확대 우려
국내 5대 은행의 전세자금대출이 올해 들어 8조원 가까이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의 부작용에 이어 최근 꿈틀대기 시작한 전셋값이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시중은행들이 계속 몸집을 불리고 있는 전세대출에 제동을 걸기 위한 속도조절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서민들의 전세금 마련 부담도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 등 5개 은행들이 보유한 전세대출 잔액은 총 112조9776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7조7649억원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은행별로 보면 신한은행의 전세대출이 26조5292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1조7642억원 증가했다. 이는 5대 은행중에 최대 규모다. 이어 국민은행은 22조6660억원, 하나은행은 22조4785억원으로 각각 1조2891억원과 1조9171억원이 늘었다. 이밖에 우리은행은 21조4729억원, 농협은행은 19조8311억원으로 각각 2조2932억원과 5014억원 규모가 증가했다.
은행 전세대출이 늘어나는 건 그만큼 전셋값이 오르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전세를 얻는데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보니 대출 규모도 증가한 것이다.
전셋값을 끌어 올린 핵심 요인으로는 임대차법이 꼽힌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가 도입되면서 전세 계약기간은 4년으로 늘었고, 계약 갱신 시 보증금 인상률은 5%로 제한된다. 이에 집주인들이 신규 계약 때 보증금을 최대한 올려 받으려 하면서 전셋값이 뛰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나마 2·4 주택 공급대책 발표 후 안정세로 접어드는 듯 했던 서울 아파트 전세 시장은 다시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국민은행 리브부동산의 주간아파트 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달 들어 3주 연속으로 상승률이 0.13%에 머물렀지만, 같은달 마지막 주와 이번달 첫째 주에 각각 0.18%와 0.17%를 기록하며 오름폭이 커졌다.
최근 전셋값 상승의 배경에는 재건축 규제 완화 기대감과 이에 따른 매물 감소가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후 재건축이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확산하면서 2년 실거주를 채우기 위한 사례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은행들은 더 이상 예전처럼 전세대출을 공급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전세대출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한도 관리의 필요성이 커졌다는 판단에서다. 은행들 사이에서는 전세대출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한 금리 인상이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신한은행은 지난 1월 서울보증보험이 보증하는 신한전세대출의 최대 우대금리 폭을 0.1%p 낮춘데 이어, 지난 3월에는 주택금융공사와 주택도시보증공사가 보증하는 전세대출의 우대금리도 0.2%p 내렸다. 형식적으로는 우대금리 축소이지만, 차주가 입장에서는 그만큼 대출 이자율이 높아지는 셈이다.
아예 전세대출을 중단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우리은행은 올해 3월 말 우대금리 폭을 0.2%p 하향 조정했음에도 전세대출이 계속 확대되자, 결국 이달 들어 모든 전세자금대출 상품의 신규 취급을 일시 제한하기로 했다.
이처럼 전셋값과 대출 이자율이 함께 상승 곡선을 그리는 흐름이 이어질 경우 전세를 구하려는 서민들의 어깨가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는 점은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새 임대차법으로 인한 전세 가격 상승효과와 대출 금리 인상이 맞물리면서 차주가 체감하는 전세 비용은 한층 가중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