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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올드무비㊹] 박찬욱·송강호·신하균·배두나, 예술장인들의 초심


입력 2021.05.31 08:01 수정 2021.06.01 08:36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복수는 나의 것’, 가끔은 완벽한 영화 감상이 필요해

류승범·정재영·신정근 등 찾는 조·단역 찾는 재미 꿀맛

영화 '복수는 나의 것' 스틸컷 ⓒ제작 스튜디오박스, 배급 CJ ENM

일가를 이룬 이들의 시작을 보는 일은 재미도 쏠쏠하고 의미도 깊다. 위인전을 읽는 이유다.


영화 가운데 감독부터 배우까지 거장이 되고 최고가 된, 예술장인들의 초창기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작품은 그리 흔하지 않다. 후일 감독이 마스터가 되었다 해도 출연 배우들은 무명으로 끝났을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 드문 기적이 일어난 영화가 ‘복수는 나의 것’(2002)이다. 감독 박찬욱은 세계적 거장이 됐고, 송강호는 한국어 연기만 했음에도 세계 영화인들이 이름을 아는 배우가 됐고, 배두나는 일본을 시작으로 할리우드 영화와 드라마에 진출한 배우가 됐고, 신하균은 대한민국 최고의 표현력을 자랑하는 ‘연기 괴물’이 됐다.


그 밖에도 연기파 류승범과 정재영이 각각 뇌성마비 남자, 동진(송강호 분) 전처의 재혼남이라는 조ㆍ단역으로 힘을 보탰고. 차진 연기력의 이대연과 기주봉이 동진의 복수를 돕는 형사와 동진에게 해고된 노동자로 분했다. 신정근, 오광록, 김익태가 말 한마디 없이 미영(배두나 분)의 복수를 한다. 류(신하균 분) 누나 역의 임지은은 물론이고 류승완 감독, 이금희 아나운서 등 영화를 보다 보면 반가운 얼굴들이 끝없이 등장, 미소가 커진다.


ㅎ신하균(초록머리칼)이 연기한 류의 '말'을 마치 다 들은 것 같은 느낌, 놀라운 연기 ⓒ

어마어마한 내공의 예술장인들이 한 데서 만난 ‘복수는 나의 것’은 아이러니의 아이러니가 이어지는 비정한 드라마다.


시청각장애인 동생 류를 미술대학에 보내려고 몸 아끼지 않고 일하던 누나는 신장병을 얻어 목숨이 위태롭다. 그런 누나를 위해 신장을 주고 싶어도 혈액형이 달라 기증하지 못하는 동생은 장기밀매업자에게 자기 신장과 1000만 원을 넘기지만, 알몸뚱이로 버려진다.


갖은 헛고생을 했는데 기증자가 나타난다. 기증자가 나타났는데 수술비가 없다. 유괴 범죄까지 저질러 수술비를 마련했는데, 수술받을 누나가 없다.


누나를 잃은 동생은 장기밀매업자에게 복수를 결심한다. 딸을 잃은 아버지는 유괴범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자신들이 잘하는 일, 야구방망이 휘두르고 전기기술을 써서 복수를 실행한다. 복수는 했는데 자신이 죽는다. 복수의 성공이 나의 파멸을 부른다.


복수 완수 직전, 그러나 착잡한 심경, 송강호가 하면 뻔하지 않은 리얼이 된다 ⓒ

감독 박찬욱은 누구에게도 ‘내 것’이기만 한 복수를 독점으로 허락하지 않는다. 아이러니가 물고 물리는, 먹이사슬과도 같은 복수 파노라마의 참혹한 결말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박찬욱은 고약하다. 이 잔인한 사적 복수를 영화적으로 너무나 아름답게 그렸다. 연기, 미술, 음악이 좋은 건 물론이고 장면 장면의 미장센이 완벽하다. 아버지 동진이 딸이 흘러간 강에 와서 말할 수 없는 심정으로 담배를 태우다 꽁초를 버리는데, 이 모습을 꽁초가 버려지는 물 아래서 카메라에 담았다. 보는 순간 압도당하고 본 후에 잊히지 않는 이 한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이 하늘로 솟구치게 예술적이다.


이외에도 이루다 설명하기 입 아프게, ‘복수는 나의 것’이 소설이 아니라 영화여야 하는 이유를 박찬욱 감독은 모든 요소가 완벽하게 종합된 영상으로 보여준다. 끝내준다. 함께한 배우와 스태프의 땀을 배신하지 않은 연출이다. 문득 궁금하다. ‘복수는 나의 것’을 탄생시킨 모든 이들은 지금도 그때 그 일을 해냈던 초심과 행동력을 간직하고 있을까.


한·미·일 거장들이 사랑하는 배우 배두나 ⓒ

가끔은 흠잡기 힘든 영화를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머리가 맑아지고 감성이 돋고 눈이 좋아진다. 요즘 흔히 보이는 대형 기획영화들이 놓치고 있는 게 무엇인지, 왜 돈을 쏟아붓고도 엉성한 결과물로 마무리되는지 헤아려진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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