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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히든캐스트㊺] ‘뮤지컬 덕후’가 된 서울대 출신 ‘박영주’의 진정성


입력 2021.06.05 08:40 수정 2021.06.05 17:24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드라큘라' 8월 1일까지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뮤지컬에서 주연배우의 상황을 드러내거나 사건을 고조시키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코러스 혹은 움직임, 동작으로 극에 생동감을 더하면서 뮤지컬을 돋보이게 하는 앙상블 배우들을 주목합니다. 국내에선 ‘주연이 되지 못한 배우’라는 인식이 있는데, 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고자 합니다.>


ⓒ오디컴퍼니(주)

지난 2017년 뮤지컬의 본고장 영국 웨스트엔드 뮤지컬 ‘미스 사이공’에 캐스팅되면서 화제를 모은 뮤지컬 배우 박영주는, 놀랍게도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이다. 지난달 20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개막한 뮤지컬 ‘드라큘라’에서는 앙상블 및 잭 스워드 커버를 맡고 있다.


늦깍이 뮤지컬 배우가 되기까지, 그에게 가장 큰 벽은 ‘서울대 출신’이라는 꼬리표 였다. 득이 될 줄 알았던 수식어가 오히려 독이 됐다. 호기심에 도전하는, 혹은 서울대 출신이 무슨 연기를 하냐는 오해와 편견 때문이었다. 벽에 부딪힐 때마다 그는 포기보단, 배우로서 인정받겠다는 오기로 버텼고, 결국 독이 됐던 꼬리표를 다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긍정적 수식어로 만들었다.


긴 시간을 버티며 배우로서 인정을 받게 된 건, 뮤지컬 무대에 대한 존중과 뮤지컬 배우에 대한 진정성 있는 꿈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을 ‘뮤지컬 덕후’라고 표현한다.


-결정적으로 박영주 배우의 마음을 흔들었던 사건이 있나요?


저는 대학에 들어가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어요. 고등학교 때처럼 무조건 외워서 시험을 잘 보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진리에 대한 탐구랄까요? 그런 시간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좋은 성적을 위한 공부를 또 하고 있더라고요. 방황을 하던 중에 국제 구호가 한비야 씨의 강연을 듣게 됐어요. 강의 사이 빈 시간에 우연히 듣게 된 그 강의가, 제 인생을 바꿨죠.


본인의 일화를 이야기하면서 ‘왜 이 일을 하시나요’라고 누군가가 물어봤을 때 ‘이 일이 제 심장을 뛰게 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이 제 심장에 불화살처럼 꽂혔습니다. 이후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어렸을 때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장면을 흉내 냈던 기억을 시작으로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중 2007년 독일로 교환 학생을 갔다가 런던에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보고 완전히 뮤지컬 배우가 돼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린 시절의 박영주 배우는 어떤 아이였나요?


배우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대신 아버지께서 파바로티를 좋아하셔서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오페라 노래를 많이 듣기도 했고, 발라드 넘버를 좋아해서 학교 소풍이나 장기자랑 시간에 가요를 자주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도 그렇지만 애니메이션을 정말로 좋아해서요. 어렸을 때 제가 정말로 그 만화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가면을 쓰고 동생을 억지로 끌어들여서 장면을 흉내 내고 그걸 부모님께 보여드리곤 했어요.


-뮤지컬 배우를 결심하기까지 각오가 남달랐을 것 같은데요.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잖아요. 정확히 제 이야기인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정말 노래를 잘하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뮤지컬 오디션을 보면 바로 주인공이 되고 서울대 경영대 출신으로 주목도 받을 줄 알았어요. 철이 없었죠. 오디션에 가서 다른 사람들은 보면서 ‘아 내가 정말 걸음마도 못 하는 상태구나’라는 걸 깨닫고 정말 미친 듯이 연습에 매진했습니다. 마치 제가 고등학교 3년간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을 때처럼 연습실에 옆에 고시원을 잡아서 연습실에서 연기 노래 춤을 누구보다 열심히 연습을 했어요. 그리고 일주일에 2~3번은 대학로에서 연극, 뮤지컬 가리지 않고 좋은 작품을 추천받아서 공연을 봤고요. 그렇게 하루 하루 ‘누구도 나를 오디션장에서 무시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마음으로 준비했어요.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나요?


제가 런던에서 ‘오페라의 유령’을 보고 뮤지컬 배우가 돼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을 때 두 분의 반응이 좀 달랐어요. 아버지께서는 배우가 되는 길이 워낙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을 텐데 자식이 그 힘든 길을 간다니깐 반대보다는 걱정을 많이 하셨고요. 어머니께서는 한 번 도전해 보라고 말씀하셨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저 스스로 포기할 거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어쨌든 2년 동안 휴학을 하고 도전을 해보고 그때 다시 이야기를 해보자고 하셨고 졸업은 꼭 해야 된다는 조건으로 뮤지컬 배우가 되기 위한 트레이닝을 시작했습니다. 2009년도에 뮤지컬 ‘삼총사’ 무대 크루를 시작으로 정말 감사하게도 그 해 가을에 오디션에 합격해서 뮤지컬 ‘모차르트’까지 작품을 하게 되면서 부모님께서도 제 진심을 보시고 이해해주셨던 것 같아요.


ⓒ오디컴퍼니(주)

-첫 데뷔 무대가 2009년 연극 ‘길삼봉뎐’이죠. 이때의 기억은 어떻게 남아있나요?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 오디션을 보러 갔다가 연우무대의 유인수 대표님이 저를 예쁘게 보셨는지 오디션은 떨어졌지만 ‘길삼봉뎐’의 코러스로 참여할 생각이 있냐고 제의를 해주셨어요. 그래서 제 인생 첫 작품을 하게 되었죠. 지금도 같이 했던 형들, 누나들과 연락을 하고 지낼 정도로 저한테는 너무 특별한 작품이에요. 연기를 오랫동안 해왔던 베테랑 형님들의 연기를 보면서 어떻게 하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신기한 눈으로 보면서 혼자서 대사 연습도 해보고, 처음 입어 보는 의상과 처음 받아 보는 분장 그리고 프로그램북에 제 얼굴과 이름을 보면서 마냥 신났던 기억이 납니다.


-꿈꾸던 뮤지컬 배우의 길을 걷게 됐지만, 직업이 되는 순간 현실적인 문제들도 생기기 마련이잖아요.


많은 분들이 경제적인 부분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생각하실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것보다 오디션을 보러 갔을 때 제작진이 저를 ‘배우’로 보지 않는 현실이 더 힘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분명 부족한 부분이 있었기에 그런 일이 있었겠지만 ‘서울대 경영’이라는 수식어가 저한테는 계속 마이너스가 되더라고요. 오디션을 보고 나서 ‘우리 회사 마케팅 부서로 올 생각은 없냐’ ‘왜 자꾸 배우를 하려고 하느냐’는 식의 조롱이 끊임없이 있었어요. 상처를 받을 때마다 그만둬야겠단 생각보다 내가 더 열심히 연습해서 나를 꼭 배우로써 인정하게 만들겠다는 오기가 생기게 되더라고요. 그 오기가 배우라는 직업을 계속할 수 있게 해준 큰 힘이기도 합니다.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많이 힘든 시기였을 것 같네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2년간 ‘미스 사이공’ 영국&유럽투어에 참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영국에서 배우로써 인정을 받고 뭔가 이제는 어떤 뮤지컬도 할 수 있다는 끝이 보이지 않는 자신감으로 한국 오디션에 도전을 했는데 결과는 참담했어요. 서류 심사에서 탈락하는 일도 많았고 오디션 기회 자체가 예전만큼 많이 주어지지도 않는 환경으로 변했더라고요. 제가 끼어들을 틈이 없었던 거죠. 뭔가 마음은 한국에 돌아와서 짠하고 데뷔를 하고 싶었는데 그게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2년 동안 한 작품도 하지 못하고 집에서 육아를 하면서 자존감이 바닥을 치기 시작하고 정말 내가 뮤지컬 배우로써 계속 활동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까지 들기 시작했어요. 거기다가 코로나까지 겹치다 보니 해외로 다시 나갈 수도 없었고요. 그래서 이제 뮤지컬을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극단을 운영하는 선배님에게 전화해서 극단에서 생활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고 마음을 비우니 오히려 좀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길게 보자, 아직 시작도 안 했다고 생각하고 예전처럼 내가 또 열심히 하다 보면 기회가 주어질 거라고 생각하다 보니 조금씩 괜찮아지더라고요.


-말 나온 김에 ‘미스 사이공’ 영국&유럽 투어 당시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환경이 다른 만큼, 재미있는 일화도 많을 것 같아요.


어떤 말로 시작을 해야 될지 잘 모르겠어요. 제가 비엔나 뮤지컬이 너무 좋아서 무작정 비엔나로 유학을 갔다가 마침 영국에서 ‘미스 사이공’ 오디션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런던에 가서 9월과 11월 두 번의 오디션을 보고 그다음 해 3월에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어요. 아직도 첫 오디션 합격 순간과 마지막 투이 커버로 최종 합격 메일이 왔을 때 순간을 생각하면 벅차오릅니다.


일단 언어가 다르다 보니 거기서 오는 답답함이 있었어요. 제가 영어가 유창한 것도 아니었고요. 연출과 안무 감독의 말을 이해할 때 더 집중해서 듣고 이해하려다 보니 체력 소모가 크더라고요. 또 제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아쉬움도 컸고요. 그래도 ‘미스 사이공’이 워낙 다양한 나라 출신의 배우들이 모이다 보니 그 자체만으로 재미있는 부분들이 많았어요. 각자의 언어가 다르다 보니 서로의 언어를 흉내 내면서 장난을 치기도 하고, 파티를 할 때면 자기 나라의 음식을 만들어서 서로 나누고 게임을 하곤 했죠.


-도전 자체만으로도 남다른 일이지만, 직접 참여하면서 배운 점들도 많겠죠?


배우로서는 투이 역할로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게 제일 크게 배운 부분인 것 같아요. 영국은 원 캐스팅 시스템에 커버를 두고 있어서 저는 투이 커버로써 메인 배우가 몸이 아프거나 휴가로 무대에 설 수 없을 때, 제가 무대에 설 수 있었어요. 앙상블과는 다르게 저 혼자서 아니면 킴과 단둘이 장면을 책임져야 되는 부담감이 있지만 그만큼 그걸 해내기 위해서 고민하고 연습하면서 배우로서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인간 박영주로서는 2년간 같은 공연을 하면서 같이 공연하는 동료들이 참 소중하다는 사실을 배웠어요. 결국 공연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배우와 스태프 그리고 관객까지 모두 함께 만들어가는 거라는 걸 어느 공연 보다 더 뼈저리게 느꼈고, 그래서 더 감사하고 소중하게 존중하면서 작업에 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디컴퍼니(주)

-현재는 뮤지컬 ‘드라큘라’에는 참여하고 계시죠.


앞서 잠깐 말씀드렸지만 원래 뮤지컬을 그만하고 극단에 입단하려고 하던 찰나 아는 후배인 허순미 배우가 ‘드라큘라’ 비공개 비대면 오디션 정보를 줬어요. 그래서 영상으로 오디션에 참여하게 되었고요. 사실 오디션을 지원하고 2주 넘게 연락이 없어서 당연히 떨어진 줄 알고 기대를 안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고 제가 오히려 ‘정말 제가 붙은 게 맞나요?’라고 몇 번이고 확인했던 기억이 나네요. 하하. 실감이 안 났던 것 같아요.


-작품에서 어떤 역할들을 맡고 있는지도 소개해주세요.


앙상블을 하면서 잭 스워드 역할의 커버를 맡고 있습니다. 극중에서 렌필드를 제압하는 간호원으로, 드라큘라의 칼에 찔리는 역으로, 루시에게 피를 빨리는 첫 남자 등으로 등장합니다.


-직접 참여하는 배우로서 느끼는 ‘드라큘라’의 매력은요?


뭐니 뭐니 해도 귓가에 계속 맴돌게 되는 넘버가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각 캐릭터의 성격을 잘 보여주면서 인물의 상태를 아주 잘 표현할 수 있는 넘버들이 많아서 듣고만 있어도 극에 몰입이 잘 되더라고요.


-그간 ‘미스 사이공’ ‘모차르트’ ‘드라큘라’ 등 크고 작은 작품들에 출연하셨는데요. 박영주 배우에게 가장 의미가 깊은 작품이 있나요?


‘모차르트’는 제 인생 첫 뮤지컬이고 그 덕분에 제가 비엔나 뮤지컬에 관심을 가지면서 비엔나로 유학까지 갈 수 있는 가장 뿌리인 작품이고요. ‘미스 사이공’은 비엔나로 유학을 가게 되면서 오디션 기회를 얻고 제가 배우로서 인정받고 엄청 성장할 수 있도록 해 준 작품입니다. 그리고 ‘드라큘라’는 제가 뮤지컬을 그만둬야 하나 생각했던 어려웠던 시기에 저를 다시금 일으켜 세워준 작품이고요. 그래서 세 작품 모두 저에게는 정말 소중한 작품들입니다.


-배우로서 가진 신념이 있다면요?


내가 하고 있는 작품과 함께하는 동료들에게 온 마음을 쏟자.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캐릭터나 작품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주저 없이 디즈니 버전의 ‘노틀담의 꼽추’의 콰지모도 역할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이 작품을 하고 싶어서 일본 사계 오디션을 준비하기도 했어요. 코로나 때문에 할 수는 없었지만요. 그리고 파리 노트르담 성당 종탑에 3시간 넘게 기다려서 올라가서 조금이나마 콰지모도의 마음을 엿보려고 했고요(웃음).


-대중에게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을까요.


‘박영주 배우 참 진정성 있다’…그거 하나면 참 행복할 것 같습니다.


-배우로서, 또 한 사람으로서 박영주 씨의 최종 목표를 들려주세요.


저는 성장하는 만화를 정말 좋아해요. ‘원피스’라는 만화를 보면 루피는 끊임없는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면서 자신과 함께 같은 꿈을 꾸는 동료들을 만나고 성장하거든요. 저 역시 그런 삶을 살고 싶어요. 한 걸음씩 성장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뭔가를 고민하고 만들고 기뻐하고 슬퍼할 수 있는 일, 제 심장을 뛰게 만드는 배우라는 직업, 이 일을 오래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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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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