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전 위원장 왜 삐졌을까
정치 원로라면 모범을 보여야
스파르타왕 레오니다스가 이끄는 중무장 보명 300명이 페르시아왕 크세르크세스의 수십만 대군과 테르모필레 협로에서 맞섰다. 스파르타군은 페르시아군의 세 차례 강공을 막아냈다. 그러나 현지인이 페르시아군 측에 스파르타군의 뒤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알려준 바람에 앞뒤로 대군의 공격을 받게 됐다.
크세르크세스는 레오니다스에게 전갈을 보냈다.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
레오니다스가 말했다.
“와서 갖고 가라.”
페르시아측이 을러댔다.
“우리 군사의 수는 엄청나다. 화살을 쏘기 시작하면 태양 빛을 가려버릴 것이다.”
레오니다스가 코웃음을 쳤다.
“잘됐군. 그늘 속에서 싸울 수 있을 테니까.”(드니 랭동, 소크라테스와 아테네)
김종인 전 위원장 왜 삐졌을까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런 말을 했다고 들린다.
“동서고금을 봐도 검사가 바로 대통령이 된 경우는 없다. 검찰 조직에 오래 있던 사람이 지금의 어려운 정국을 돌파할 수 있겠나.”
윤석열 전 검창총장이 대통령 되기는 불가능하다는 뜻이겠다. 김 전 위원장은 실력이 있고 수완이 좋은데다 허명(虛名)과 운(運)이 적절히 믹스되어 80이 넘어서도 정치적 영향력을 과시하는 인물이다.
윤 전 총장에 대해 언제는 “별의 순간을 잡은 것 같다”라며 전도가 양양한 것처럼 말하더니 왜 갑자기, (무엇에) 삐졌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요즘엔 가는 말이 곱지 않다. 기대가 채워지지 않아서 부리는 심술 같이 느껴지는데, 정말 그렇지는 않기를 바란다. 고령의 정치인이 스스로 이미지를 초라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기가 안쓰러울 것 같아서….
“오히려 잘됐네. 동서고금을 통틀어 검사가 바로 대통령 되는 최초의 기록을 세우게 됐으니!”
레오니다스 식으로 응답한다면 이런 말이 되지 않을까?
김 전 위원장은 이 말을 하기 하루 전, 그러니까 지난 3일 방송 인터뷰에서도 윤 전 총장에 대해 상당히 비우호적인 언급을 했었다.
“100% 확신할 수 있는 후보가 있으면 전적으로 도우려고 했는데, 그런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이쯤 되면 중증 나르시시즘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김 전 위원장이 100% 확신할 사람이라면 자신 말고는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후에 “선생님이 아니면 누가 대선에 나설 수 있겠습니까”라고 추종자들이 강권하면 못 이기는 채하고 나서려는 것일까? “설마 그러기야!”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정 그렇다면 내가 희생하는 수밖에 없지”라고 할지 누가 알겠는가.
정치 원로라면 모범을 보여야
만약 윤 전 총장이 이제라도 “선생님, 제가 마음속으로 이미 선생님을 멘토로 정해두고 있었습니다. 때가 되면 격식을 갖춰 모시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혹 서운하셨다면 용서하십시오”라고 (반드시 공개적으로) 청한다면 다시 우호적인 평가를 하게 될까? 그간의 행보로 보아 아마도 다시 칭찬 모드로 돌아설 것이다(장담할 수 있다. 다만 윤 전 총장이 그렇게 말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다. 이런 스타일의 노 정객과 패기만만한 정치 신인의 케미가 맞을 리 없지 않은가. 윤 전 총장이 김 전 위원장의 시니컬한 위협에 떨 사람도 아니고).
갈수록 김 전 위원장의 의중을 짐작하기 어렵다. 전에 ‘경제민주화’라는 것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바 있다고 하더라도 ‘킹메이커’ 칭호를 얻기에는 어림없이 못 미쳤다. (결과적으로)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에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지만, 당사자를 비롯한 현 정권 실세들 가운데 아무도 킹메이커로 여겨주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까 내년 대선에서는 확실한 킹메이커, 단독 드리블로 골인시키는 스타플레이어가 되고 싶다는 것일까? 그런 게 아니라면 이 기회에 ‘대선 후보 인가증’ 발급 사무실이라도 낼 생각일까?
김 전 위원장을 보면 정치적 무애행(無碍行)을 흉내 내는 것 같아 보고 듣기에 거북하다(말뜻도 제대로 모르면서 종교 용어를 차용하는 것을 스님들이 용서하시길). 이념·신조·정당의 벽을 주저 없이, 또 어려워하는 빛도 없이 넘나드는 이분의 현란한 정치 편력이 과연 확철대오의 결과인지는 알지 못한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현실 정치에서 그런 행보는 정당정치의 의의를 부정하고 해체하는 우행이거나 만행이 될 뿐이다(스님들의 경우에조차 무애행을 스스로 자랑하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가짜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정말 우리 정치의 민주적 성숙을 바란다면 엷은 미소를 머금은 모습으로 지켜봐 주는 게 어른으로 해야 할 도리일 것 같다. ‘문재인 시즌 2’가 아니라 진실로 새로운 정부를 구성할 야권 리더의 등장을 바란다면 모든 주자가 아름다운 경쟁을 벌일 수 있도록 격려해 주는 것이 원로 정객으로서 한국 정치에 대한 갚음일 것이다. 그만큼 무애행을 즐겼으면 이젠 정말 어디에도 치우침이 없는 원만한 인격으로 정치적 무소유를 실천해야 하는 것 아닐까?
“누가 내 자리 마련해줄 사람 없느냐”며 두리번거린다면 너무 구차해 보일 듯하다. 에이, 아무려면 그러기야 하려고!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