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환 수습 뒤 몸 낮춘 이복현 "은행 자율관리"
투기성 대출은 심사 강화, 정책성 대출 협조 약속
'실수요자' 은행별 기준 달라 대출 혼선은 여전
가계부채 규제를 놓고 금융당국 수장들의 엇갈린 목소리가 시장 혼란을 키운다는 지적이 거세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오락가락 메시지에 실수요자의 불안감이 가중되자,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부랴부랴 수습에 나섰고 이 원장이 뒤늦게 이견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원장이 '스피커' 역할을 자처한 열흘 간 5대 은행은 20여차례 금리를 올리고, 30여개 대출 제한 조치를 내놓으며 혼란스러웠다. 이 원장이 가계부채의 가장 큰 '리스크'라는 평가마저 나왔다. 모두 금융위원장 취임 40여일만에 벌어진 상황이다. 두 기관의 관계 정립을 두고 잡음이 나오는 이유다.
10일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날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8개 국내은행장과 만나 "감독당국의 가계대출 규제는 기본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최소한의 기준"이라며 "은행이 각자의 리스크관리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간담회가 끝난 후에도 기자들과 만나 "가계대출을 엄정 관리하고 은행의 자율적인 여신 심사를 통해 적절한 포트폴리오를 운영해야 한다는 입장에 대해서는 금융위와 금감원 모두 이견이 없다"며 "급증하는 가계대출 관리와 관련 저희가 조금 더 세밀하게 메시지를 내지 못해 국민들께 여러 불편과 어려움을 드려서 송구하다"고 공식 사과했다.
앞서 이 원장은 지난달 은행권 대출금리 인상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개입을 더 세게 해야 할 것 같다고 발언했다. 이에 은행들이 대출 규제 정책을 쏟아내며 실수요자 피해가 불거지자 "최근에는 가계부채 관리 속도가 늦어지더라도 실수요자들에게 부담을 줘선 안 된다"고 기조를 바꾸었다.
이 원장의 발언에 시장 혼란이 가중되자 김 위원장은 지난 6일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고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기조는 확고하다. 은행이 자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교통정리에 나섰다. 이날 이 원장의 사과는 김 위원장의 발언과 궤를 맞춘 것으로 풀이된다.
이 원장은 간담회에서 논의된 가계대출 정책 관련해서는 여신 심사에 대한 특정 기준을 세우되, 그레이존에 대해서는 은행연합회와 논의하는 방식이 나왔다고 언급했다. 은행들이 연간 경영계획 목표치를 초과해 가계대출을 취급할 경우 내년도 총부채원리금비율(DSR) 한도를 줄이겠다는 특단의 조치에 대해서도 한 발 물러섰다.
10∼11월 가계대출 흐름, 2단계 스트레스 DSR 효과, 은행의 여신 심사 정밀화 등을 살펴보고 판단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금융당국의 엇박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실수요자'에 대한 은행권 해석이 달라 소비자들의 혼란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한은행은 이날부터 주택 신규 구입 목적의 주택담보대출을 무주택 세대에만 허용키로 했다. 기존 1주택자의 '주택 처분 조건부' 주담대도 취급하지 않는다.
다만 신규 주택 구입을 목적으로 주담대를 실행하는 당일에 기존 보유 주택을 매도하면 대출이 가능하다. 이 경우 보유주택 매도계약서와 구입주택 매수계약서를 제출해야 한다.
우리은행은 수도권의 주담대와 전세대출을 무주택자에게만 내어 주겠다는 극약처방을 내놓았지만, 9가지 예외 조건을 달았다. 결혼예정자, 주택 상속인의 경우 1주택자라도 주담대와 전세대출을 모두 허용하기로 했다. 또한 1주택자가 수도권으로 직장을 옮기거나 자녀 교육, 질병 치료 등의 개인사정이 있는 경우 전세대출만 인정한다.
은행권은 각 사별 자율적 대출관리를 강조한 당국 기조에 발맞춰, 다양한 실수요자 사례를 세밀하게 검토할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출공급 전격 중단은 은행권에서 시작된 만큼, 금감원장이 대출공급 수위 조절에 대한 언급을 하는 것은 적절했다"면서도 "금감원은 감독 기구인데 정책까지 끌고가려다 보니 시장에 혼선을 빚은 것 같다"고 평했다.
다만 "가계대출 관리를 은행 자율에 맡겼음에도 예측을 하고 정책을 만들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금융당국이 실거주 목적이나 주택 보유 여부를 기준으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실수요자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