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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과 여의도 사투리 [기자수첩-정치]


입력 2024.09.23 07:00 수정 2024.09.23 07:00        남가희 기자 (hnamee@dailian.co.kr)

'여의도 문법' 완전 배제가 불협화음 불러

정치의 영역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당정 관계도, 대야 투쟁도 더 수월해질 것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여의도에서 300명이 사용하는 고유의 화법이나 문법이 있다면 그건 '여의도 사투리'다. 나는 5000만 국민의 화법을 쓰겠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법무부 장관 재직 시절 했던 말이다. '여의도 사투리'란 300명의 여의도 국회의원들이 사용하는 정치적 수사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때로는 완곡하게 표현해 상대방에게 역공의 빌미를 주지 않거나, 모호한 화법으로 어느 쪽으로도 해석할 수 있게끔 여지를 열어두거나, 아니면 겉과 속이 다른 말을 하는 정치인들의 화법을 모두 포함하는 말이 바로 '여의도 사투리'다.


통상 이 말은 기존의 구태 정치를 비판 또는 비하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아마 과거 한동훈 대표가 '여의도 사투리'를 언급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국민들의 불신만 키우고 있는 정치를 바꾸고 '새로운 정치'를 선보이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한 대표의 이 '여의도 문법' 원천 배제가 당내 불협화음을 더 키우는 모양새다.


7월 23일 한동훈 대표가 당대표로 당선된 이후 2개월여의 시간이 흘렀다. 취임 두 달차 한 대표를 향하는 평가는 엇갈린다. 그가 가진 '스타성'이 주는 신선함과 이슈 선점 능력은 분명 긍정적으로 평가받을만 하다. 그러나 '제3자 추천 채상병 특검법' '여야의정 협의체' 등 다양한 이슈를 띄운 것에 비해 뚜렷한 성과가 비치지 않는다는 점, 당내 확장성이 부족하다는 점은 과제로 꼽히고 있다.


특히 한 대표의 당 장악력에 대한 의구심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한 대표가 당내 의원들과 소통을 위해 '식사 정치'를 이어가고 있지만 그 성과에 대해서는 모두가 갸우뚱해하는 분위기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아직 한 대표가 '서초동 사투리'에 더 익숙한 것 같다. 여의도식 스킨십 방식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은 "현재 한 대표의 당내 확장성은 솔직히 말하면 정체된 것 아니냐"라고 지적했다.


한 대표의 소통방식에 대한 의구심은 이번 의정 갈등 문제 해결 과정에서 더욱 도드라졌다. 한 대표가 대통령실에 2026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을 유예하는 방안을 제안했으나 거부당했다. 이 과정에서 원내사령탑인 추경호 원내대표와 협의가 미진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의정갈등 해결'이라는 이슈는 끝내 '친윤계-친한계 갈등' '당정 갈등'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기밀 유지가 중요한 수사의 특성상 폐쇄적 방식으로 방향성을 정하고, 그에 맞춰 행동하는 '서초동 방식'이 여의도에서 펼쳐진 탓에 당내 설득 과정의 부재를 초래한 것이다. 정치는 혼자보다 여럿과 함께 하는 것이며, 그런 정치에서 소통과 설득만큼 중요한 과정도 없다.


한 대표의 이러한 소통 방식은 당정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최근 한 대표가 취임 후 처음으로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과의 소통에 대한 질문에 "대통령실 생각이 민심과 동떨어져 있는데, 불편해지는 게 싫다고 편을 들어야 하느냐?"라고 답한 바 있다. 이같은 발언은 한 대표가 여전히 소통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실의 생각이 민심과 동떨어져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를 설득하기 위해 끊임없이 대화의 문을 두드리는 것도 여당 대표가 해야 할 일이다. 미워도 싫어도 테이블에 앉아야 하는 것이 정치라는 것을 한 대표도 알고 있지 않은가. 설득이 안 될 것이란 이유로 언제까지 대통령과 샅바싸움을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여의도 사투리'에 긍정적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완전히 여의도에 녹아들라고 주문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의도 사투리에 대화와 설득과 협의라는 언어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간과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한 사람의 국민이라도 더 내 편으로 만들어야 이기는 싸움을 하는 곳이 바로 여의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여당은 그 어려운 선거판에서 살아남은 108명의 의원들이 모인 곳이다. 이런 정치의 영역을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조금 더 유연한 태도로 여의도에 접근하라. 혼자 해내기보다 함께 고민한다면 풀릴 수 있는 일은 더 많아진다. '여야의정 협의체' '제3자 특검' '금투세' 그 어떤 것도 당과 정이 함께 하기 위한 설득부터 시작한다면 민주당과의 싸움도 더 수월해질 것이다. '나 홀로 외로운 대야 투쟁' 전에 허심탄회한 속내를 터놓으며 당내 인사들과 소통하는 것, 이것이 한 대표가 최우선으로 해야 할 과제다.

남가희 기자 (hnam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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