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나
탄핵소추 협박 최 대행에겐 통했다
이 대표 취임 이후 소나기 탄핵·특검
새해 아침이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국민 모두가 희망을 안고 새날을 맞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무안공항의 여객기 참사로 유명(幽明)을 달리한 분들의 명복을 빌고 참담한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유족들에게 온 마음을 다해 위로를 드린다. 이런 참사를 빚은 해당 항공사와 감독관청은 돌아가신 분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유족들의 어려움과 억울함을 만분의 일이라도 풀어드리기 위해 사후수습에 헌신의 노력을 다하기를 기대한다.
이럴 때마다 새삼 깨닫는 일이지만 사고는 거듭된 과오와 교만으로부터 초래된다. 조짐이 나타나고 또 나타나고 하는데도 알아채고 배우지 못하는 사람에겐 반드시 앙화가 닥친다. 개인도 그렇지만 기업이나 조직, 나아가 국가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경고가 계속되는데도 반성하고 고치기를 거부하면 사고나 불행은 벼락처럼 닥친다. 폭탄 돌리기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설마”하지만 결국은 터지고 만다.
나라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나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면에서 세계사적인 기적을 이뤘다고 국제사회로부터 상찬을 받아온 나라가 어쩌다 이 지경에 놓였는지, 생각할수록 가슴에 미어진다. 무안공항의 어처구니없는 사고도, 다른 사고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오만과 아집이 빚어낸 비극이다. 잔고장이 잦았을 것이고, 근무자들의 과로가 사고의 위험을 높였겠지만 경영진은 폭탄 돌리기 심사로 문제를 회피했을 것이다(아마도).
“언젠가는 터지겠지만 내가 책임지고 있는 동안에는 괜찮을 것이다. 이제까지 잘 피해왔는데 하필 내가 책임져야 할 시기에 터지기야 하겠는가.”
폭탄이 누구 손에 있을 때든 폭발의 위험성은 지속적으로 높아진다. 그리고 반드시 파국에 이른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손에서 터졌다고 하더라도 피해는 전체를 삼킨다. 그 점에서 제주항공 사고 비행기나 대한민국이나 다를 바 없다. 사고 발생 요인의 본질은 한 가지라는 뜻이다. 지금도 쉴 새 없이 나라의 기둥을 흔들어대며 힘자랑을 하는, 용감한 바보들은 들으시라.
지금 더불어민주당은 신이 나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들이다. 특히 이재명 대표가 그 기분을 얼굴에 그대로 드러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 27일 한덕수 대통령권한대행 탄핵소추안 의결 정족수가 151명이라며 투표를 진행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의장석 앞에 서 항의를 하는 동안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투표를 마치고 의기양양하게 자리로 돌아갔다. 그 표정을 두고 데일리안에 실린 한 칼럼의 제목이 아주 인상적이다.
“이재명, 득의의 ‘썩은 미소’ 참지 못하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두 번이나 본회의에 올려 기어이 통과시킨데 이어 대통령권한대행 탄핵소추까지 해치웠다. 이에 따라 대통령권한대행 직은 최상목 경제부총리에게로 넘겨졌다. 대행의 대행 체제라는 세계 정치사에도 희귀한 사례를 민주당이 만들어냈다. 이 대표는 여당의원들의 항의 소리를 등 뒤로 들으면서 ‘득의만면’한(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내 명령을 거스르는 자의 최후를 보라”는 기분(?)으로!
탄핵소추 협박 최 대행에겐 통했다
민주당은 ‘헌법재판관 임명’요구에 대해 ‘여야합의’를 조건으로 제시한 한덕수 대행을 탄핵소추한 다음 최 대행에게도 압박을 가했다. 최 대행은 쌍특검(내란 특검·김건희 특검)에 대해서는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반면 헌법재판관 임명과 관련해서는 약간의 재주를 부렸다. 민주당 주도로 국회에서 추천한 3명 가운데 2명을 임명한 것이다(그것만으로도 민주당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 됐다).
그 절박함을 한 대행은 몰라서, 혹은 못 느껴서 민주당의 협박에 응하지 않았다는 뜻이었을까? 경제부총리로서 경제 위기에 대한 우려가 컸으리라는 점은 이해가 되지만 전임자를 무책임한 대행으로 만든 점에 대해서는 고개가 갸웃해진다. 왜 경제와 민생 걱정은 대통령 대행만 해야 하고 거대야당인 민주당은 안 해도 된다는 것인지를 누가 말해주시라.
정치적 불확실성과 사회 갈등을 민주당은 못 느끼고, 몰라서 탄핵소추를 거듭했을까? 왜 민주당은 헌법재판관 추천 문제를 국민의힘과 합의하려 노력하지 못하는가. 왜 최 대행만 그 책임을 전적으로 떠안아야 하는가. 그의 해명이 별로 설득력이 없다는 뜻이다. 민주당의 탄핵소추 협박에 굴복한 결과라고 여겨지는데 아닌가?
어쨌든 민주당은 압도적 다수의석을 무기로 의회뿐만 아니라 정부까지 장악한 형세가 됐다. 공수처·검찰·경찰도 그 휘하에 들어간 인상이 짙다. 대한민국의 군대는 지휘계통의 혼선과 무능을 그야말로 ‘한껏’드러냈다. 김정은이 우리를 향해 군사적 모험을 안 하는 게 너무 다행스럽다고 생각될 정도로….
이러고도 경제와 민생과 외교가 건재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 이는 망상이다. 민주당의 권력놀음에 3권 분립 체제가 크게 훼손되고, 정부 기능은 ‘마비’를 우려할 상태에 이르렀다. 이재명 당 대표에 채워진 사법적 족쇄를 풀어내고, 그를 차기 대선 후보로 만들기 위한 민주당의 방탄 횡포가 의회정치의 정상적 작동을 방해하고 입법과정의 왜곡을 초래했다.
이 대표 취임 이후 소나기 탄핵·특검
단적인 예로 21·22대 국회에서 발의된 탄핵소추안이 무려 31건에 달한다. 이 중 추미애 법무부장관(당시), 임성근 판사(당시) 두 사람에 대한 것(전자는 국민의힘, 후자는 민주당이 발의) 외의 29건은 모두 이 대표 취임 이후, 민주당에 의해 발의된 것이다. 이 기간 동안 민주당은 특검법안도 24건이나 발의했다(국민의힘은 4건). 어느 나라에서 이런 예를 찾아볼 수 있겠는가.
입법권을 이용한 정부 흔들기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국민을 위해 행사해야 할 권리를 이 대표 보복용, 방탄용으로 휘둘렀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비상계엄령과 관련된 것들도 포함돼 있지만 그 경우들을 제외하더라도 탄핵소추안, 특검법안을 소나기처럼 퍼부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압도적 거대야당의 민낯이다. 이렇게 정부를 흔들어댄 끝에 민주당은 마침내 윤석열 대통령을 내란죄로 옭는데 성공했다. 지속적으로 입법 횡포를 부려온 쪽이 판관행세를 하고 거기에 저항한 쪽은 죄인의 처지가 된 이 역리(逆理)를 정말이지 이해하기 어렵다.
민주당 이 대표는 희희낙락(喜喜樂樂)하고 있음직하다. 권력투쟁에서 완승을 거두어 사실상 통치자 행세를 하기에 이르렀다. 어쩌면 국가 3권을 자신의 손에 틀어쥐게 됐다고 여기는지도 모른다. 조금만 더 힘을 쓰면 정권을 초토화시키고 윤 대통령을 감옥으로 보낼 수 있다고 자신할 것 같기도 하다. 다양한 혐의의 형사 피고인·피의자 신세에서 대반전의 상황을 만들어 내다니! 과연 모사(謀事)에서는 천부적 능력을 갖췄다고 할 만하다. 그렇지만 어느 구름에 비가 들었는지 누가 알랴!
소크라테스가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행한 ‘변명’의 마지막 부분을, 좀 길기는 하지만 인용한다. 그냥 그러고 싶어서―.
“저에게 유죄 투표한 분들에게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제 아들들이 성인이 되면 제가 여러분을 검토한다며 괴롭혔던 것처럼 여러분도 제 아들들을 괴롭혀 주십시오. 만약 그 애들이 덕보다는 부와 다른 어떤 것에 신경 쓰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면서 뭐나 되는 것처럼 우쭐대면 그들을 나무라 주세요. 정작 신경 써야 할 것에는 마음 쓰지 않으면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뭔가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굴 때 제가 나무랐던 것처럼 요. 여러분이 그렇게 해주면 저와 제 아들들은 여러분에게 옳은 대접을 받는 겁니다. 자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야겠지요. 저는 죽으러, 여러분은 살기위해서요. 그러나 어느 쪽이 좋은지는 신만이 아실 겁니다.”(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 최유경 역)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