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北에 백신제공 계획 없다"
대북 인도적 지원 지지 입장은 재확인
전문가 "北 '동의' 구한 文, 지나친 저자세"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19 백신의 전 세계 공급에 기여하는 차원에서 북한에 대한 백신 지원 가능성을 시사한 가운데 미국은 대북 백신지원에 나설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는 14일(현지시각) 대북 백신지원 가능성을 언급한 문 대통령 발언과 관련해 "우리는 북한에 백신을 제공할 계획이 없다"면서도 "(바이러스 감염에) 가장 취약한 북한 주민들에게 중요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공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은 계속 지지한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말했다.
북한에 비핵화 협상 재개를 촉구해온 미국이 백신을 협상 마중물로 활용할 생각이 없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미 당국자는 북한이 요청할 때만 백신 지원이 가능하다며, 공급된 백신이 북한 주민에게 잘 전달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모니터링 절차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다만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는 거듭 지지를 표명한 만큼, 미국 당국 차원이 아닌 국제사회 차원의 대북 백신지원에는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미국은 화이자 백신 5억회 분을 글로벌 백신 공동 구매·배분 프로젝트인 코백스(COVAX)를 통해 공급하기로 했다. 코백스를 세계보건기구(WHO)와 공동 운영 중인 세계백신면역연합(GAVI·가비)은 미국이 제공키로 한 백신을 북한도 공급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지난해부터 한국·미국 등 개별 국가 차원의 인도적 지원을 전면 거부하고 있다. 다만 코백스에는 백신을 요청한 바 있어 국제사회 차원의 인도적 지원은 수용하겠다는 입장으로 풀이된다.
앞서 코백스는 지난 5월까지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북한에 공급할 예정이었지만, '기술적 문제'로 연기된 바 있기도 하다. 북한 현지에 국제기구 관계자가 한 명도 상주하지 않아 모니터링 시스템을 갖추기 어려운 데다 고질적 전력난으로 저온 보관이 필수인 AZ 백신을 안정적으로 다루기 어렵다는 '현실적 제약'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북미가 국제사회 차원의 백신 공급을 고리로 접점을 마련할 여지가 보이자 문 정부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남북협력 지지 표명'을 명분 삼아 팔을 걷어붙인 모양새다.
오스트리아를 국빈 방문 중인 문 대통령은 전날 "한국이 글로벌 백신 허브 역할을 할 경우 북한도 당연히 협력 대상이 된다"며 "북한이 동의한다면 북한에 대한 백신 공급에 협력할 것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방역 당국 계획상 우리나라 백신 접종이 가을께 마무리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해당 시점 이후로 미국산 백신 위탁생산 물량을 개발도상국 등에 공급하는 과정에서 북한에도 손을 내밀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북한이 한국 정부 차원의 인도적 지원을 '비본질적 이슈'로 걷어찼다는 점에 착안해 국제사회 차원의 백신 공급이라는 '우회로'를 뚫어 북한의 수용 가능성을 끌어올리겠다는 취지로도 읽힌다.
통일부 당국자는 백신 대북지원과 관련해 "남북 직접 협력 방법도 있을 수 있고 글로벌 차원의 협력도 있을 수 있다고 본다"며 "두 가지 모두 가능한 만큼, 가능성을 열어두고 구체적인 협력 방안은 국내 백신 수급상황, 국민적 공감대 등을 종합검토하며 마련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이 대북 백신지원에 있어 북한 '동의'를 언급한 것은 지나친 저자세라고 꼬집었다.
미국과 국제사회가 북한의 '요청'에 따라 지원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과 달리, 문 대통령이 백신 지원 의사를 밝히며 전제조건으로 북한 동의를 거론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문 대통령이 "북한 눈치를 너무 보고 있다"며 "북한이 화가 나면 작게나마 마련된 관계개선 노력이 깨질까 지나치게 걱정하는 모양새다. (문 대통령이)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본인의 업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