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선 관련 네거티브 공세 개시
언론과 유권자의 합리적 판단력 중요
며칠 전 7월을 달력에서 떼어 내면서 “이제 7개월 남았구나” 했다. 마치 현역 시절 제대 특명을 기다리는 심정 같았다.
옛날 ‘군대 36개월’을 생각하면 7개월은 아무 것도 아니다. 군대는 나만 잘 참으면 제대를 하지만, 5년마다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는 갈수록 복잡해진다. 아수라장이 연상된다.
상대를 떨어뜨려야, 내가 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검증(檢證)이라는 미명하에 여.야 간에 또 경선 중인 같은 당 후보들끼리 ‘네거티브(Negative)’가 벌써 시작됐다. 여.야 대선 후보가 확정되면 말 그대로 죽기 살기로 싸울 것이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58조는 “선거운동이라 함은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상대가 ‘당선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 즉 네거티브(부정적) 공세도 합법적인 선거운동 방식이다.
그래서 이 지점에 많은 시선과 고민이 모인다.
정치학자들이 연구해 보니, ‘유권자들은 포지티브(Positive, 긍정적)한 정보보다 네거티브한 정보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는 결론이 나왔다. 마치 날씨가 좋을 때보다 태풍 등 악천후 때 일기예보를 더 많이 보는 것과 같고, 때로는 네거티브가 더 효과적인 선거운동이라는 설명이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네거티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정상적인 네거티브는 유권자에게 정보가 된다면서, 선거관리위원회가 후보자의 가족관계, 납세, 병역, 전과 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네거티브 중에서도 근거 없는 사실을 조작해 상대 후보를 중상모략하거나 상대 진영을 혼란에 빠뜨리는 흑색선전(Black Propaganda)을 따로 떼어내 ‘마타도어(Matador)’라고 구별하기도 한다.
본래 ‘마타도어’는 스페인 투우에서 ‘죽이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투우사’를 말한다. 투우 경기가 끝나면 관객들이 흩어지듯, 선거가 끝나면 유권자들은 곧 생업으로 돌아간다. 끝까지 남아 마타도어(Matador)의 희생자를 위로해 주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도 몇 달 전 ‘현 정부가 북한에 원자력발전소를 비밀리에 건설해 주려 했다’는 야권의 비난에 시달리다가 “많은 마타도어를 받아봤지만, 이건 도가 지나치다”고 반응했다. 현직 대통령도 겁내는 마타도어다.
한국 선거사를 보면 정치권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네거티브나 마타도어를 펼쳤다. 위조된 녹음테이프를 들고나온 김대업은 2002년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을 폭로한다는 사기극을 벌였다. 이 사기극은 당시 지상파 방송의 ‘중계방송’ 덕에 노무현 후보의 당선에 큰 기여를 했다.
그 반대로 지난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주도한 생태탕 마타도어는 도리어 역효과를 냈다. 16년 전 한 차례 식당에 다녀간 고객의 신발이나 옷차림을 기억하는 천재 소년(?)을 유권자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2007년 대선에서는 민주당 측이 이명박 후보의 BBK 주가 조작 의혹을 제기했으나, 제대로 평가 받지 못했다. 하지만 BBK 의혹은 뒤에 사실로 확인됐다. 또 지난달에는 문 대통령의 심복 ‘바둑이’ 김경수(전 경남지사)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인터넷 뉴스에 대한 댓글 조작을 한 혐의가 확정돼 교도소에 재수감되는 등 여.야 간에 혼전이 계속돼왔다.
엉터리 인물을 증인이라고 내세우는 수법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나 네거티브가 사이버 세계로까지 번지는 것을 보니, 그 세계에도 진화나 변이가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뒤지고 있는 민주당은 초조하다. 당내 경선에서 유력 후보들 사이의 네거티브 소용돌이를 겪으면서도, 야당 윤석열 후보나 장모, 부인을 상대로 네거티브를 시작했으나 도리어 역풍이 만만찮다.
결혼 전 부인의 과거에 대한 근거 없는 주장은 여성비하와 직업에 대한 민주당의 천박한 인식 수준을 드러낸 것이라고 도리어 20대 30대 여성 유권자들의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
‘정치는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고 내일의 꿈을 기대하도록 하는 일’이기 때문에인류와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 정치가 없다면 이렇게 복잡다기한 국가와 기업, 개인 사이의 이해관계를 어떻게 정리해 나간단 말인가?
또 ‘정치가 존재하는 한 네거티브도 존재한다’는 말도 있다.
그렇다면 각종 선거 때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네거티브를 생산해 내는 정치권만 탓할 일이 아니라, 네거티브를 전달하는 언론과 또 이를 받아들이는 유권자들이 달라지는 방법도 있다.
언론이 ‘정상적인 검증’과 ‘비열한 흑색선전’을 가려줄 의무를 진다면, 유권자들은 정치권이 제작하고 언론이 전달해 주는 네거티브 사기극에 넘어가지 않을 ‘합리적 판단력’으로 무장할 때가 됐다. 서울과 부산의 유권자들은 지난 봄 보궐선거 때 민주당이 시도한 ‘생태탕 마타도어’를 구별하는 판단력을 보여줬다. 정치권과 언론보다 이제는 유권자들을 믿을 시간이다.
글/강성주 전 포항MBC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