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적금 이자율부터 영향 전망
이자마진 개선 공식 깨질 수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전격 인상하면서 은행들의 손익계산서를 둘러싼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준금리 인상은 은행들의 이익을 늘려주는 호재로 여겨지지만, 최근의 시장 여건을 감안하면 득보다 실이 더 클 수도 있어서다.
더 이상 확대를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대출이 불어나 있는 상황에서 금리 상향으로 자금 조달 비용만 빠르게 몸집을 키울 경우 은행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2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최근 금융통화위원회는 정례회의를 열고 기존 0.50%였던 기준금리를 0.75%로 0.25%p 인상했다. 한은 기준금리가 조정된 건 지난해 5월 이후 15개월 만이다. 금리 인상은 2018년 11월 이후 2년 9개월 내 처음이다.
기준금리의 반등은 기본적으로 은행 실적에 긍정적인 요소다. 대출 금리가 따라 오르면서 이자마진이 확대될 여지가 커지기 때문이다. 과거의 경험만 놓고 보면 기준금리가 0.25%p 상승할 때 은행들의 이자마진은 통상 0.04~0.05%p 가량 개선된다는 게 금융권의 평가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출 이자율이 당장 크게 움직이진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한은이 최근 잇따라 기준금리 인상 신호를 내 왔고, 이런 영향이 시장금리에 미리 반영돼 있어서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예전만큼의 이자마진 확대를 기대하기 어렵단 얘기다.
그렇다고 대출을 늘려 이자마진을 키우기에도 한계가 있다. 고삐 풀린 가계부채를 잡기 위해 금융당국이 총량 규제에 나선 까닭이다. 최근 NH농협은행과 하나은행은 신용대출 한도 축소에 들어갔고, 나머지 시중은행들도 해당 조치 실행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말 기준 가계신용은 1805조9000억원에 달했다. 가계신용이 1800조원을 돌파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가계신용은 가계가 은행, 보험사, 저축은행, 대부업체 등 각종 금융기관에서 받은 대출과 결제 전 카드 사용금액을 합친 통계로 가계부채를 포괄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자금 조달 비용 증가폭 '관건'
반면 은행들이 예금과 적금 등 수신 상품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이자율에는 기준금리 인상이 보다 빨리 반영될 것이란 관측이다. 이전에도 은행들은 한은 기준금리 인상이 이뤄지면 여론 등을 감안해 한두 달 안에 예·적금 이자율을 올리는 케이스가 많았다.
이를 은행 입장에서 보면 대출 등 사업에 필요한 돈을 끌어 모으는데 투입해야 하는 조달 비용이 증가한다는 의미다. 대출 이자율을 바로 상향하기 어려운 조건에서의 기준금리 인상이 은행들에게 마냥 달가운 소식만은 아닌 이유다.
가뜩이나 은행들은 예·적금 확보에 열을 올려야 하는 상황이다. 은행들의 예대율이 금융당국이 정한 마지노선에 임박하고 있어서다. 예금과 적금을 둘러싼 은행들의 경쟁 심화는 조달 비용의 추가적인 확대를 불러올 수 있는 요인이다.
예대율은 보유한 예금과 비교해 대출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를 보여주는 수치로, 은행들의 과도한 대출을 막기 위한 지표다. 예대율이 100%가 넘으면 은행은 추가 대출을 제한받게 된다. 올해 상반기 말 4대 은행들의 예대율은 평균 99.1%로 100%에 육박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이후 잠재돼 있는 금융 리스크도 고려해야 할 돌발변수다. 금리 인상으로 빚 상환에 난항을 겪는 차주들이 늘어 대출 연체율이 악화되면 은행들의 비용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금융권 관계자는 "제로금리 기조 속에서 급증한 가계대출, 규제가 이자 마진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 코로나19에 따른 차주들의 경제적 어려움 등 현재 금융시장의 특수한 환경을 감안하면 기준금리 인상이 곧 은행의 이익이라는 공식이 잘 들어맞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