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 군사합의 이후, 더욱 소극적
전략적 침묵일까, 의도적 덮기일까
지난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30회 가까이 이어졌다. 박근혜 정부보다는 적고, 이명박 정부보다는 많은 횟수다. 청와대는 적극적으로 북한 도발에 대응하는 대신 침묵모드를 선택했다.
그나마 2019년 하반기부터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발포에 대해 아예 발표하지 않는 날도 많아졌다. 야권에선 청와대의 소극적 대응에 대해 “북한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냐”고 비판했다. 그렇다고 여권의 비판에서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20일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실에 의하면 북한의 미사일·방사포·인공위성 등의 도발횟수는 노무현 정부 1회, 이명박 정부 12회, 박근혜 정부 56회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34회를 기록했으며, 미사일 도발횟수만 따지면 28회다. 북한 도발은 보수당 MB정부보다 文정부에서 더 빈번하게 이뤄졌다.
올해 들어서만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5회에 이른다. 이달 들어서만 지난 11~12일 신형 장거리 순항미사일, 15일에는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하는 등 연이어 두 차례나 도발을 감행했다.
특히 군 당국은 북한이 이틀에 걸쳐 발사한 신형 장거리 순항미사일에 대해서는 실시간 포착 여부와 ‘대략적 정보’를 함구하고 있다. 군 당국이 미사일 동향을 실시간으로 포착하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뒤늦게 청와대는 13일 신형 장거리순항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했다는 북한 발표와 관련해 “면밀하게 동향을 파악하고 있다”면서도 ‘한미 군정보당국이 북한의 순항미사일 발사를 사전사후에 전혀 탐지하지 못했다’는 보도에 대해서는 별도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4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북한이 지난 11~12일 신형 장거리 순항미사일 발사실험을 했는데 우리 군과 정보당국은 북한 관영매체를 보고 뒤늦게 도발사실을 파악했다고 한다”며 “문재인 정부는 북한이 미사일을 쏜 것도 모르고 5년 내내 가짜평화쇼를 성사시키는데만 몸이 달아있다”고 비판했다.
김 원내대표는 “만약 실제 상황이었다면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위험천만한 상황”이라며 “지난 3월에도 북한이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을 두발 발사했지만 우리 군은 기껏 미상의 발사체를 발사했다고 발표했다”고 지적했다.
순항 미사일 발사 이틀 뒤 북한은 다시 탄도미사일로 도발했다. 합동참모본부는 지난 15일 오후 북한이 중부 내륙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그제서야 정부는 같은날 오후 서훈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긴급회의를 열었다.
청와대는 “NSC 상임위원들은 먼저 정세 안정이 매우 긴요한 시기에 이루어진 북한의 연속된 미사일 발사 도발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미국을 비롯한 유관국들과 배경 및 의도를 정밀분석하면서 긴밀히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NSC 회의에서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오후 우리 군의 첫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잠수함 발사 시험을 참관하면서 “오늘 우리의 미사일 전력 발사 시험은 북한의 도발에 대응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체적인 미사일전력 증강 계획에 따라 예정한 날짜에 이루어진 것”이라며 “그러나 우리의 미사일전력 증강이야말로 북한의 도발에 대한 확실한 억지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 도발에 대해 청와대가 처음부터 침묵했던 것은 아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5월 북한이 연일 미사일(‘화성-12형’, ‘북극성-2형’)도발을 감행하자 NSC를 주재하며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유엔안보리 결의의 명백한 위반일 뿐만 아니라 한반도는 물론 국제평화와 안전에 대한 심각한 도전행위로 우리 정부는 이를 강력 규탄한다”고 밝혔다.
그해 9월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에 문 대통령은 즉각 현무-II 미사일로 대응 경고 사격을 실시하라고 지시하는 등 북 도발에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공언했다.
그해 11월엔 북한이 장거리 탄도 미사일을 발사하자마자 곧바로 NSC를 주재하며 “북한이 도발적인 군사 모험주의를 멈추지 않는 한 한반도의 평화는 불가능하다”며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할 때까지 한·미 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강력한 제재와 압박을 추진해 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2018년 9월 1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합의해 발표한 이른바 ‘9·19 군사합의’ 이후부터는 북한 도발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9·19 합의를 남북관계 치적처럼 여기다 보니 북한을 향해 아무 말도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2019년엔 국책 연구기관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침묵하는 것은 북한에 ‘도발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김보미 연구위원은 ‘최고인민회의 이후 김정은의 군 현지지도 특성 분석’ 보고서에서 “북한의 계속되는 군사 활동에 침묵한다면 국제사회가 단거리 미사일 발사를 용인한다는 잘못된 신호를 북한에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고 했다.
지난 3월엔 ‘DJ 적자’ 장성민 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 이사장이 “청와대는 왜 침묵하는가”라며 “전략적 침묵이냐, 의도적 덮기”냐고 일침을 가했다.
야권에서는 북한 도발에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지 않는 것도 전략일 수는 있지만, 지나친 침묵은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고, 북한에 끌려다니는 모습만 보여주는 꼴이라고 비판한다. 국민의힘은 “북한에 언제까지 끌려다니기만 할 것이냐”며 “미사일 도발을 비롯한 북한의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정부의 확고한 안보의식과 근본적인 방어체계 마련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