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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서부극의 반전, 약자들의 서부 정착기


입력 2021.11.18 13:41 수정 2021.11.18 13:41        데스크 (desk@dailian.co.kr)

영화 ‘퍼스트 카우’

미국을 대표하는 장르는 서부극이다. 역사가 짧은 미국인들은 서부극을 통해 개척시대 미국 문화를 구체화했고 미국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무법천지인 개척지 마을을 지키고 약자를 도와 미국인의 모험정신과 개척정신 그리고 정의구현이라는 세계관을 형성했다. 서부극은 미국 영화사 초기부터 대중적인 인기를 끌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 우리가 익히 봐왔던 서부극과는 다른 결의 영화가 개봉했다. 켈리 라이카트 감독의 ‘퍼스트 카우’는 서부극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파격적인 분위기를 선사한다. 추격신과 총격신도 없으며 오히려 잔잔하고 평화롭기 그지없다. 시작부터 “새에겐 둥지를, 거미에겐 거미줄을, 인간에겐 우정을”이라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지옥의 격언’ 중 한 문구를 인용하며 영화의 주제의식을 알린다.


19세기 초반 서부 개척시대 오리건주, 비버 사냥꾼들의 식량을 담당하는 유대인 쿠키(존 마가로 분)는 러시아인을 살해해 알몸으로 쫓기는 중국인 킹루(오리온 리 분)를 구해준다. 몇 년이 지나, 정착한 마을에서 둘은 재회하고 함께 지낸다. 그들은 무역업을 하는 영국인 팩터(토비 존슨 분)가 키우는 마을에 하나뿐인 젖소를 발견하고 젖소의 우유를 훔쳐 스콘을 만들어 판매해 돈을 벌기 시작한다.


영화 ‘퍼스트 카우’는 두 남자의 우정을 문학적 정취로 담아냈다. 영화는 서부극에 근간을 두고 있지만 총잡이들의 가슴 뛰는 이야기가 아닌 두 남자의 우정을 버디 무비의 형식으로 그려냈다. 시대적 배경이나 설정만 보면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가 떠오르지만, 살육과 추격전, 복수극이 없다. 주인공들은 언성 한 번 높이지 않는다. 이질적인 환경에서 온 두 남자가 빵을 팔며 우정을 쌓는 과정이 따스하게 그려질 뿐이다. 영화는 다른 인종, 비주류 사회를 조명하며 이들의 편견없고 진실된 우정을 통해 서부 영화의 장르적 쾌감보다 문학적인 정취로 여운을 남긴다.


상징과 은유로 자본주의의 아이러니를 꼬집는다. ‘퍼스트 카우’는 원작소설 ‘더 하프 라이프’를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젖소 이야기는 새롭게 창조된 것이다. 1820년대 세계적으로 비버 무역이 성행하며 자본주의의 질서가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 젖소는 미개척 땅에서 자본주의 세계를 더욱 확고히 하는 도구가 된다. 땅과 자원을 빼앗은 개척자들이 개인의 젖소 약탈은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자본주의의 맹점을 꼬집는 대목이다. 영화는 경제적 약자에게 관심이 없는 자본주의의 냉혹함을 비판한다.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미국의 정체성도 말한다. 서부 개척시대를 그린 서부극은 철저히 백인 남성 중심의 시각으로 서술된 미국의 정통 역사관이자 국가의 건국신화다. 대부분의 영화는 19세기 중후반을 배경으로 총잡이 카우보이가 등장하지만, ‘퍼스트 카우’의 배경이 되는 1820년대는 미국령이 되기 전, 미국과 영국이 공동으로 소유했던 혼란의 시대였다. 영화는 개척시대에 백인을 중심으로 서부극이 취해왔던 기본 전개와 흐름을 거스르고 부정한다. 그동안 익숙히 봐왔던 활극과 총격전의 서부극이 백인 중심의 미국 신화였다면, 음식과 우정의 서부극인 ‘퍼스트 카우’는 유대인과 동양인 등 이민자가 세운 나라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동안 우리사회는 경제적 성장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 왔다. 그러나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에 들어가면서 잘 살게 되었으나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약자들의 불만은 높아져가고 있다. 영화 ‘퍼스트 카우’는 개척자인 동시에 사회적 약자인 쿠키와 킹의 소박한 삶과 그들이 보여준 연대와 우정을 통해 어려운 시대를 지나온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준다.



양경미 / 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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