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를 상징하는 색이 있다면 회색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 은발에서 다크 그레이로 염색을 했고, 공식 석상에서도 회색 계열의 옷을 자주 착용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광주 선대위 출범식에는 아예 회색 맨투맨 티셔츠를 단체로 맞춰 입었다. 그 사이 민주당의 상징색인 파란색은 주변부로 밀려났다.
정확한 변화 시점을 특정할 순 없지만 ‘이재명의 민주당’을 강조하던 시기와 대략 일치한다. 대선 후보로 결정됐을 때만 해도 이 후보를 비롯해 민주당 주요 인사들은 모두 파란색 점퍼를 입고 회의에 나타나고 선거운동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같은 모습을 보기 어려워졌다.
회색은 단순히 검은색과 흰색의 중간에 있다고 인식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꽤 복잡하다. 회색 원단을 만들 때에는, 특히 고급일수록 검은색과 흰색뿐만 아니라, 붉은색과 파란색 등 다양한 실이 사용된다고 한다. 그래서 주변의 광량에 따라 같은 회색이라도 다른 색의 느낌을 낼 수 있다.
선대위 관계자는 “자유분방함과 다양성을 가지고 2030세대에게 보다 편하게 다가가기 위함”이라고 했다. “모두 파란색을 입는 것이 국민에게 전체적이고 집단적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한다. 간담회나 현장 방문 등의 행사에서 이 후보가 와이셔츠와 넥타이 대신, 라운드 티셔츠 혹은 니트를 착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재인 정부나 민주당과 일정 부분 거리를 두고 이 후보를 돋보이게 만들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데일리안 의뢰로 여론조사기관 공정(주)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이 후보를 지지한다고 답한 응답자의 74.2%가 ‘리더십과 자질’을 그 이유로 꼽았다. 반면 소속 정당(7.8%)이나 공약(7.7%), 도덕성(1.9%)을 꼽은 응답자는 거의 없었는데, 결과에 비춰보면 상당히 주효한 전략으로 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이 후보가 던지는 메시지도 회색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개별적인 메시지는 회색의 천을 구성하는 붉은색·검은색 실 같이 명확하다. “이재명은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 “야당이 발목을 잡으면 차고 가겠다”, “구 적폐 세력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식이다.
그런데 다른 쪽에서는 “국민이 반대하면 국토보유세를 할 수 없다”, “기본소득을 반드시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며 모호한 메시지를 낸다. 자신이 꺼냈던 전 국민 재난지원금도 강한 저항이 일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철회했다. ‘빨갛다’ ‘파랗다’ ‘검다’와 같이 색을 표현하는 말은 많지만 회색은 형용이 어려운데, 이 후보의 메시지와 행보가 딱 그렇다.
이 후보는 “맥락을 보라”고 타박하지만 야권에서는 ‘이중언어’라는 비판이 나온다.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는 “국민의 반대가 높은데 안 하겠다는 것이냐 (물으면) 이 후보는 설득할 자신이 있다고 답한다”며 “하겠다는 것인지 안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가의 리더는 이중언어를 쓰면 안 된다”며 “변신할 때는 그 근거에 대해 국민에게 진정한 반성과 해명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