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고성능 이끌어온 피터 슈라이어‧알버트 비어만 사장 퇴임 유력
디자인 조직, 이상엽‧카림 하비브 센터장 체제…'옥상옥' 제거
연구개발본부장, 완성차 전문가보다 미래 모빌리티 아우를 인물 거론
현대자동차그룹이 이번 주 임원인사를 단행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외부 인재 영입을 통한 역량강화’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혔던 피터 슈라이어 사장과 알버트 비어만 사장이 회사를 떠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젊은 인재의 임원 발탁인사 규모도 관심사다.
15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의 임원인사 시점은 17일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빨라도 16일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그룹은 통상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인사를 발표해 왔으나 정의선 회장 취임 직후인 지난해 연말 인사는 그보다 앞당긴 12월 15일 발표됐다. 앞으로도 인사 발표 시점이 12월 중순이 될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대폭의 세대교체를 통해 정 회장 중심의 경영체제를 구축한 터라 올해 인사 규모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다만 디자인경영을 담당하는 피터 슈라이어 사장과 연구개발본부를 맡고 있는 알버트 비어만 사장 등 외국인 경영진은 이번 인사에서 퇴진이 결정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정의선 회장이 2005년 기아 사장으로 경영에 참여한 이래 주력해온 디자인 역량 강화와 고성능차 개발을 위해 해외 경쟁사들로부터 영입한, 당시 해당 분야 최고의 전문가로 꼽혔던 인물들이다.
슈라이어‧비어만 사장과의 결별은 현대차그룹이 디자인과 고성능차 분야에서 이미 충분한 실력을 쌓았고, 더 이상 ‘과외수업’이 필요치 않게 됐음을 의미한다.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꼽히며 자동차 명가 아우디와 폭스바겐의 디자인을 총괄하던 슈라이어 사장은 2006년 기아로 영입돼 호랑이코 그릴을 시그니처 디자인으로 정립하는 등 ‘디자인 기아’의 신화를 이끌면서 정의선 당시 사장이 ‘디자인 경영’으로 역량을 인정받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에서 16년간 머물며 어느덧 70세에 가까운 고령이 됐다. 이미 이상엽 현대디자인센터장(전무)과 카림 하비브 기아디자인센터장(전무)이 각 브랜드 디자인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디자인경영담당이라는 슈라이어 사장의 역할이 제한적이라는 시각도 있었다.
이에 따라 슈라이어 사장이 퇴임하더라도 후임이 임명되기보다는 이상엽 전무와 하비브 전무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비어만 사장은 정의선 회장이 현대자동차 기획 및 영업담당 부회장이던 2015년 고성능차 개발을 위해 영입한 인물이다. BMW에서 고성능차 개발 총괄을 담당하며 ‘M’ 브랜드를 키워낸 비어만 사장은 현대차에 합류해 고성능 브랜드 ‘N’을 안착시키는 한편, 현대차‧기아 브랜드 차량의 전반적인 성능 향상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8년 말부터 그룹의 첫 외국인 연구개발본부장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이 전동화, 자율주행 등 ICT(정보통신기술) 분야와의 융합으로 전환되고, 현대차그룹의 지향점도 완성차 제조사에서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 기업으로 전환됐으며, 개발 분야도 UAM(도심항공모빌리티), 로보틱스로 다양해지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완성차 성능 분야에 특화된 비어만 사장이 연구개발(R&D) 총괄을 맡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이에 따라 비어만 사장의 후임으로 ICT 분야에 능통한 삼성전차 출신 지영조 이노베이션 담당 사장과 같은 비(非) 완성차 전문가가 깜짝 발탁돼 그룹 전반의 R&D 사업을 이끌 가능성도 점쳐진다.
일각에서는 일부 사장급 인사들이 승진하며 정의선 체제에서 사라진 부회장단이 부활할 가능성도 거론되지만, 정 회장이 취임 후 1년 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부회장단을 꾸리기보단 당분간 회장으로서의 리더십 강화에 주력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앞서 인사를 시행한 삼성과 SK 등과 마찬가지로 현대차그룹 임원인사에서도 30~40대 젊은 인재 발탁이라는 재계 트랜드를 따를지도 관심사다.
특히 정 회장이 육성에 주력하고 있는 수소연료전지, 전기차 배터리, UAM, 로보틱스, 자율주행 분야에서 젊은 R&D 인력을 대거 승진시켜 힘을 실어줄 가능성도 거론된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와 올해 자율주행, 전자시스템, 인포테인먼트, 연료전지, 전동화‧배터리, 로보틱스, UAM 등 미래 성장 분야에서 경력직 사원을 대거 채용한 바 있으며, 조직이 확대되는 만큼 임원 승진도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이다.
지난해 인사에서도 신규 임원 승진자 가운데 30% 가량이 미래 신사업·신기술·R&D 부문에서 배출됐다.
한편, 현대차그룹은 국내외 사업 권역을 통폐합하는 내용의 조직개편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9개로 나눠진 권역 중 수요가 부진한 곳을 통폐합해 5개로 정리하는 방안이 유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