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업계 줄다리기 끝 합의
20% 인상 요구서 한 발 양보
실손의료보험료를 둘러싼 금융당국과 보험업계의 줄다리기 끝에 결국 내년 인상률이 평균 14.2%로 결정됐다. 쌓여만 가는 적자를 감안하면 20% 이상의 인상이 불가피하다던 보험업계가 결국 한 발 양보하면서 타협한 모양새다.
가입 시기가 5년 이상 지난 1~2세대 계약의 보험료는 16% 가량 인상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새해부터는 반값 할인에 들어간 4세대 실손보험으로의 갈아타기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는 금융당국과의 지속적인 협의 결과, 내년 1~3세대 실손보험료의 전체 인상률 평균이 약 14.2% 수준으로 결정됐다고 31일 밝혔다.
2009년 9월까지 판매된 1세대 구(舊)실손보험과 2009년 10월부터 2017년 3월까지 판매된 2세대 표준화실손보험의 내년 보험료 인상률은 평균 16%다. 2017년 4월 이후 공급된 3세대 신(新)실손보험은 2020년부터 적용해왔던 8.9% 수준의 한시적인 할인 혜택이 종료된다.
당초 보험업계는 1·2세대 상품 모두 상한선인 25%에 가까운 보험료 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실손보험 운영에 따른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올해 3분기 말 기준 손해보험업계의 실손보험 손해율은 131.0%로 3년 전 121.8% 대비 10%p 가까이 급등했다. 손해율은 보험사가 거둬들인 보험료와 비교해 내준 보험금 등 손해액 얼마나 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실손보험 가입자가 낸 보험료가 100원일 때 지급한 보험금이 131원으로 더 많다는 얘기다.
보험업계는 이대로 가다간 실손보험 운영 자체가 불가능해 질 수 있다고 토로한다. 실제로 보험연구원의에 따르면 지금 추세대로 보험료와 보험금이 증가할 경우 내년부터 2031년까지 업계가 감당해야 할 누적 적자는 112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사실상 실손보험 운영이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실손보험의 적자 확대 배경에는 고액 비급여 진료를 일삼는 의료 쇼핑족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수의 선량한 고객이 일부 가입자의 도덕적 해이 탓에 부담을 대신 짊어지는 형국이다.
◆"과잉진료·비급여 개선 논의 지속"
하지만 금융당국은 물가에 대한 악영향 등을 고려할 때 보험업계가 요구하는 인상률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론을 신경 써야 하는 정치적 상황도 금융당국에겐 압박 요인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런 금융당국의 입장이 반영돼 중간선에서 인상률이 결정된 셈이다.
대신 보험업계는 내년부터 4세대 실손보험으로의 계약 전환에 더욱 주력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앞으로 6개월 간 4세대 실손보험으로 전환하는 1~3세대 계약자에 한해 1년 간 납입보험료의 50%를 할인하는 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또 온라인을 통해 계약전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소비자의 편의성도 도모할 계획이다.
4세대 실손보험은 기존 실손보험의 구조를 개선하고 일부 가입자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면서, 보다 저렴한 보험료로 합리적인 보장을 제공하고자 지난 7월 출시된 상품이다. 실례로 구실손보험은 자기부담금 없이 해외 치료비까지 보장할 정도로 보장 범위가 넓은 반면, 4세대 실손보험은 비급여치료를 특약으로 분리해 보험료 부담을 낮춘 대신 자기부담금을 30%까지 높였다. 또 받은 보험금에 따라 최고 3배까지 다음해 보험료가 할증된다.
생·손보협회 관계자는 "과잉진료와 비급여문제 해결이 실손보험 적자를 해소하는 중요한 방안이라고 인식하고, 향후 개선방안을 마련해 정부당국에 건의하는 등 실손보험이 제2의 건강보험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지속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