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동계 올림픽 구상 불투명…北 반응·미중 갈등 변수
文 "차기 정부 위해 제안"…임기 내 추진 가능성은 낮아져
이재명 '한반도 운전자' 의지…윤석열은 "시기상조" 반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종전선언'을 거듭 제안한 이후 정부의 모든 외교적 역량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에 쏠리고 있다. 정부는 종전선언의 당사국인 미국을 상대로 설득 작업을 벌인 결과, 문안 협의를 마쳤고 중국과도 협의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북한의 호응은 여전히 없다. 미중 갈등도 암초다. 문 대통령의 남은 임기가 4개월여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결국 차기 정권의 숙제로 남겨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외교부와 통일부는 지난달 20일 문 대통령에게 '끝까지 챙겨야 할 5대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인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내년도 업무 추진계획을 서면으로 보고했다. 외교부는 특히 "창의적이고 다양한 대북 관여 구상을 통한 대북 대화 견인 노력에 집중하겠다"며 "대화 조기 재개를 통해 지속가능한 비핵화 과정 돌입의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통일부도 종전선언으로 비핵화를 견인하고 남북관계 발전을 추구하겠다고 했다.문 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종전선언 실현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것이다.
외교가에 따르면 종전선언은 현재 일정 궤도에 오른 상태다. 문 대통령의 제안 이후 종전선언에 대한 한미 간 문안 작업은 마무리됐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한미 간 종전선언 문안은 이미 합의가 돼 있는 상태"라며 "미국도 종전선언 중요성에 공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다음 날 "정부가 미국과 종전선언 문안 협의를 끝냈다"고 밝혔다. 또 다른 당사국인 중국과는 일정 협의 단계에 있다는 게 윤 의원의 설명이다. 중국은 양제츠 중국 중앙정치국 위원과 서훈 국가안보실장의 회담을 통해 종전선언을 지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우선 북한의 호응 여부다.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은 종전선언에 대해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 노동신문 등의 1일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해 말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대남·대미관계 사업 방향 등을 논의했지만 그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종전선언은 물론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관한 언급 없이 코로나19 방역 강화만 주문했다.
이는 코로나 재확산으로 대내외 환경이 불확실해지면서, 당분간 관망하며 대책을 모색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북한이 이날은 대남·대미관계와 관련해 침묵했지만, 외교가에서는 북한이 종전선언의 대가로 핵보유국 인정, 대북 제재 해제 등을 관철하려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요구는 북미 대화 재개의 걸림돌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미중 갈등 상황도 종전선언 추진을 녹록지 않게 하는 요인이다. 미국이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주도하고 있어 올림픽이 개막이 가까워질수록 양국 간 신경전은 고조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이 경우 종전선언에 대한 미중의 관심도가 자연스레 떨어질 것으로 보여, 문 대통령이 구상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회담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는 관측으로 이어진다.
오미크론 등 코로나 상황도 변수다. 중국과 북한의 최고지도자는 코로나 국면에서 단 한 차례도 자국을 벗어난 적 없다. 북한의 이번 전원회의 결과도 북한의 접경 봉새와 고립이 당분간 이어질 것임을 시사한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에 당장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 남북·남북중 정상회담의 개최 가능성도 낮아지고 있다. 정 장관도 "베이징 올림픽을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로 삼기로 희망했지만, 현재로서는 그런 기대가 사실상 어려워지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종전선언 추진의 주체가 차기 정부로 넘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이유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2일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과의 접견에서 "차기 정부에 북미 대화와 남북대화가 진행 중인 상황을 물려주기 위해 한반도 종전선언을 제안했다"고 말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다만 누가 대선에서 당선되느냐가 종전선언 추진 동력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 역할을 계승하겠다는 점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이 후보는 평화가 경제를 성장시키고, 경제성장이 평화를 보장하는 '한반도 평화경제체제' 수립을 대북 기조로 내세운 바 있다. 이 후보는 지난달 9일 "종전선언을 넘어 평화협정으로 가야 한다"며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향해 재검토를 요청하기도 했다.
윤 후보는 종전선언이 국민적 합의에 따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기상조'라며 반대하고 있다. 윤 후보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을 사실상 '비정상'으로 규정하고, 남북관계 정상화로 지속가능한 항구적 평화 체제를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윤 후보는 지난달 28일 "남북 문제는 자주적 방식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것을 국민이 다 안다. 정치적 쇼를 통해서는 해결이 절대 안 된다"고 밝힌 데 이어, 다음 날에도 "북한에서는 핵 개발을 계속하고 미사일을 펑펑 쏴대는데 종전선언하자고 그런다. 거기서 떡이 나오나, 국민 먹거리가 나오나"라고 비판했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오는 3일 신년사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을 위한 종전선언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힐지 주목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달 30일 "우리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해 오고 있고, 북한의 대화 복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조기 가동을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우리 정부가 종전선언 조속히 추진해서 당사국 간 신뢰를 구축하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진전을 이루게 되기를 희망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말씀드려 오고 있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