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대하사극이 5년 만에 ‘태종 이방원’으로 돌아왔다. 과거 ‘용의 눈물’, ‘태조 왕건’ 등이 국민적 인기를 끌었고, 2014년에 방영된 ‘정도전’도 반향이 컸다. 하지만 그 이후 큰 성공작이 없었고 방송사 재정 문제까지 겹쳐 2016년 ‘장영실’을 끝으로 대하사극의 맥이 끊어졌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태종 이방원’이 시작돼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시청률 10.2%라는 조금 애매한 반응이 나온다. 한 자릿수 시청률도 많은 요즘 상황에 두 자릿 수는 상당히 고무적인 성과이긴 하지만 KBS 주말 대하드라마치고는 그렇게 높은 성적도 아니다. KBS 주말드라마 ‘신사와 아가씨’는 최근 36%를 찍었다. 그보다 많이 저조한 수치이기 때문에, 두 자릿수 시청률이긴 하지만 완전히 성공적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상황인 것이다.
10% 시청률이 넘을 정도로 호응이 나온 것은 일단 KBS 대하사극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과 기대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사극이 팩션사극 위주로만 흘러갔기 때문에 정통사극을 기다려온 사람들도 많았고, 이런 유형의 KBS 드라마에 관성적으로 채널을 고정하는 중장년층 시청자군도 있다.
또, 여말선초 역성혁명기의 이야기는 실제 역사가 웬만한 드라마 대본 이상으로 흥미진진하다. 이미 아는 익숙한 설정이기 때문에 중장년층 시청자 일부가 부담 없이 시청을 시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호응이 어느 정도 선을 넘지 못하는 것은 역시 또 너무 익숙한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용의 눈물’, ‘정도전’이 여말선초를 다뤘고 정통사극이 아닌 사극도 이 시기를 많이 다뤘다. 신선하지가 않고 엄청나게 성공한 전작들과 비교 당한다는 문제가 있다.
작품의 매력이 확연하게 드러나지도 않았다. 극중에서 다양한 세력들이 대립하는데 그들이 무엇 때문에, 어떤 대의로 대립하는지가 명확하지가 않다. 그저 이성계를 왕으로 만들 것이냐 아니냐만 쟁점인 것처럼 그려졌다. 이래서 ‘정도전’보다 시대적 깊이감이 떨어지고 단순한 정략적 다툼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정략적 다툼조차도 피상적이어서, 스케치만 하면서 훑고 지나간다는 느낌이다. 위화도 회군과 개경 전투도 간략하게 처리됐고 그 이후도 역사 다이제스트 분위기였다. 이러면 몰입도가 떨어진다. 아직 이방원이 활약하기 전인 서장이기 때문에 간략하게 넘어간 것인지, 끝까지 계속 이런 분위기일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한다.
최근 페미니즘 열풍에 부응해서인지 여성 캐릭터들이 비중 있게 그려졌다. 그러다보니 이방원과 이성계의 존재감이 제대로 부각되지 못했다. 주요 인물들이 강력하게 격돌해야 하는데 어느 인물 하나 강한 존재감이 없으니 격돌의 박진감도 약했다. 반면에 ‘정도전’ 때는 정도전은 물론이고 이성계와 이인임의 존재감도 강력했었다.
여기선 정도전의 존재감도 약하다. 드라마 ‘정도전’에서 하륜 역할을 맡았던 이광기가 ‘태종 이방원’에선 정도전을 맡았는데, 하륜 때 만큼의 카리스마가 나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주연의 카리스마가 아직까지는 약하다. 주상욱이 확고하게 극의 중심이라는 느낌이 부각되지 않는 것이다.
기본적인 수준의 완성도는 갖췄지만, 앞에서 언급한 이유들로 인해 본격적인 인기몰이가 유예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몽주 참살 장면을 야사가 아닌 정사 고증을 통해 표현한 것처럼 ‘태종 이방원’만의 성과도 나타났다. 이방원의 활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정도전과의 대결구도에 불이 붙으면 극의 박진감이 살아날 수도 있다.
퓨젼, 팩션, 멜로 사극이 판을 치는 분위기에서 정통사극의 존재는 그 자체로 소중하다. 공영방송의 가치이기도 하다. 5년 만에 돌아온 대하사극 ‘태종 이방원’이 성공을 거둬서, 이 흐름이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