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윈 엔터테인먼트 김홍필 실장의 매니저 일지
'지금 우리 학교는' 출연 배우 하승리 매니저
매니저 일을 시작한지 햇수로 15년이다. 지금이야 매니지먼트학과 등 전문적 교육을 받은 인력이 많이 생겼지만, 내가 심 엔터테인먼트(現 스튜디오 산타클로스 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하던 2007년만 해도 소위 ‘껄렁껄렁 하던’ 친구들이 대부분 매니저를 하겠다고 나서던 때였다. 내 입으로 말하긴 부끄럽지만 나도 그런 류의 사람 중 한 명이었고.
첫 시작은 내 처지에 맞는 직업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개인회생 신청을 한 상태에서 월급이 적으면, 그만큼 월납입금이 적었기 때문에 당시 월급이 적은 업계를 찾아야 했다. 이 매니지먼트 업계가 월급이 적은 대표적인 곳이었다. 심지어 숙소, 식비까지 제공해주니 나로선 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매니저 일을 시작한지 2주 만에 개인회생부결이 나면서 ‘월급도 적은데 때려 쳐야지’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이게 운명인지 뭔지, 이왕 이 업계에 발을 들였는데 현장은 한 번 가보자는 마음으로 촬영장을 간 것이 화근이었다. 바빠서 거의 두 달에 가까운 시간을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얼떨결에 진짜 매니저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지금은 매니저 인력이 부족해 입사와 동시에 현장에 투입되지만 15년 전엔 현장에 나가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숙소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고…내가 배우 매니저인지, 매니저의 매니저인지 혼란스러웠을 정도니까.
일을 배우고, 많은 배우를 경험할수록 여러 감정들이 밀려오지만 그 때마다 버팀목이 되어 준 분도 있다. 블루드래곤 전재순 대표는 내 매니저 생활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분이다. 무엇보다 “배우와 소통만 잘하는 매니저가 있고 배우의 길을 잘 잡아주는 매니저가 있다. 매니저는 배우에게 일로 보여주면 된다”는 전 대표의 조언이 가슴 깊이 남는다.
매니저의 기본 업무는 눈을 뜨면서부터 시작해서 눈을 감는 순간까지 이어진다. 눈을 뜨자마자 포털 사이트를 둘러보는 게 버릇이 됐다. 소속 배우 관련 이슈를 확인하고, 업계 트렌드를 파악한다. 촬영 스케줄이 있으면 현장으로, 없으면 회사로 출근한다. 또 점심과 저녁은 물론 틈틈이 방송 관계자, 기자들과의 미팅이나 이를 빙자한 술자리도 빈번하다.
배우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고,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게 매니저의 역할이지만 진짜 매니저의 능력이 드러나는 건 ‘미팅 스케줄’이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가수든 연기자든 방송 출연 빈도가 스타의 인지도를 가름하기 때문에 수시로 내 배우를 어필한다. 프로그램이나 작품에 맞게 내 배우를 어떻게 기획하고, 어필하는지가 관건이다.
엄태웅의 현장담당 매니저(로드매니저)로 시작해 임지규, 백봉기, 이정현, 안희연(EXID 하니), 박효준 등의 배우들을 거쳐 오면서 촬영 현장의 분위기도 제법 달라졌다. 최근엔 그야말로 ‘각개전투’다. 현재 신생기획사 제이윈 엔터테인먼트(J WIN Entertainment)에서 배우 파트를 담당하고 있는데, 소속 배우 하승리를 케어하기 위해 2020년 4월부터 약 1년간 넷플릭스 오리지널 ‘지금 우리 학교는’ 촬영장을 찾으면서 느낀 변화다.
과거엔 촬영이 끝나고 매니저들끼리 모여 식사나 술자리를 하면서 정보를 교환이 이뤄지고, 친목을 다지곤 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니 초면에도 인사를 하고 서로가 담당하고 있는 배우를 소개시켜주는 것도 당연했다. 그런데 지금은 목 인사라도 하면 양반이고, 보통 촬영이 끝나기 무섭게 ‘휙’ 사라져 버리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긍정적인 변화도 있다. 현장에서 주 52시간 근로시간제가 적용되면서다. 촬영을 위해 밤을 지새우는 일이 허다했던 예전과 비교하면 업계 노동자 인권 문제가 개선됐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다만 이로 인해 촬영 일정에 혼선이 빚어지기도 하고, 매니저를 포함해 스태프를 배 이상 늘려야 하니, 작은 기획사 입장에선 인건비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아 탄력 근로에 대한 목소리도 높다. 흔히 말하는 ‘열정페이’도 사라졌다.
하승리라는 배우가 ‘지우학’의 ‘양궁누나 장하리’로 크게 주목을 받게 되면서 SNS 팔로우가 급증하고, 인터뷰 문의도 이어진다. 내가 기획하고, 케어하는 배우의 성공만큼 짜릿한 순간은 없다. 사실 무언가를 디자인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그 무언가가 ‘사람’일 경우는 더 그렇다. 그래서 이 어려운 일을 해냈을 때의 보람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긴 민망하지만, 얼마 전 (하)승리가 인터뷰에서 포기하고 싶었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 것이 내가 했던 말 때문이라고 했다. 내 아티스트가 나로 인해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게 된 것이 이토록 기쁜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물론 (소속 배우 작품의 인기에 따른) 갑작스러운 업무 폭탄이 버겁기도 하다. 대형 기획사와 달리 팬마케팅부터 SNS 마케팅, 영상 촬영·편집, 촬영 현장 케어, 일정 조율, 홍보 업무 등을 최소의 인원으로 챙겨야 하다 보니 손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 그래도 또 미싱은 돌고 돈다. 연예인이 무명에서 일약 스타로 발돋움하고, 대중의 주목을 받을 때의 자부심은 매니저만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