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EA, 비축유 방출 결정에도 유가 110달러 '파죽지세'
원유 공급 차질 우려에 원자재값 도미노 상승
車·정유·석화, 수요 위축에 따른 수익 감소 전망
국제유가가 110달러 이상으로 치솟으며 고공행진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비축유 방출 조치에도 공급 우려를 상쇄시키기에는 부족하다는 판단이 유가를 계속 밀어올리는 모습이다.
글로벌 기관들은 이 같은 속도라면 유가는 조만간 120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한다. 제품 수요 회복으로 '봄날'을 기대한 산업계는 치솟는 원자재값에 오히려 역풍을 맞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국제유가는 2일(현지시간) 기준 WTI(서부텍사스유)가 110.60달러를 기록, 올해 초 76.08달러 보다 34.52달러(45.4%) 상승했다. 2011월 5월 이후 최고치다.
같은 기간 브렌트유는 33.95달러(43.0%) 오른 112.93달러를 나타냈다. 2014년 6월 이후 최고 기록이다.
최근 유가는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러시아와 서방 국가들의 긴장감이 날로 고조되면서 무섭게 치솟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원유·천연가스 공급이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가 수급 불안을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과 러시아 등 비(非)OPEC 산유국 협의체인 OPEC+가 미국의 추가 증산 요청에도 하루 평균 40만배럴 증산이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점도 유가 상승을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IEA는 유가 안정을 위해 비상 비축유 6000만 배럴을 방출하기로 했다. 6000만 배럴은 IEA 회원국 비축유(14억 8000만 배럴)의 4.1%에 해당한다. 다만 러시아의 6일치 생산량, 12일치 수출량에 불과해 유가를 진정시키기에는 부족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모건스탠리는 불확실성을 근거로 브렌트유 가격 전망치를 배럴당 100달러에서 110달러로 최근 상향했다.
골드만삭스는 IEA 방출 규모가 유가 급등을 막기에는 불충분하다며 앞으로 브렌트유 가격이 앞으로 한 달간 95달러에서 115달러로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러시아의 석유 순수출량이 하루 평균 730만 배럴임을 감안하면, 이중 600만 배럴이 운송 보험, 신용장 등의 문제로 공급 차질을 겪게돼 공급 부족 우려를 가중시킬 것으로 진단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일부 산유국에서 증산에 나서더라도 원유 공급난 우려를 상쇄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글로벌 에너지 분석기관인 S&P 글로벌 플래츠는 IEA 등의 비축유 방출, 사우디아라비아·UAE 증산이 현실화되면 앞으로 몇달간 200~300만 배럴 규모의 원유가 추가적으로 공급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또 이란 핵 합의 성사 시 100만 배럴이 추가 도입될 것으로 봤다. 다만 이 같은 조치는 단기 처방에 불과해, 공급 규모는 3개월 만에 다시 100만~150만 배럴 수준으로 낮아질 것으로 분석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갈등이 날로 심화되면서 산업계는 러시아와의 거래 타격으로 수익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신용평가의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산업별 영향 점검' 보고서는 자동차 업종의 경우, 러시아 경제 위축으로 인한 신차 구매 감소, 수출통제로 인한 판매가능 재고 부족 등으로 러시아 시장 판매 둔화를 예상했다.
아울러 해외 부품 조달 제약으로 현지법인 가동률이 저하될 수 있으며, 러시아 루블화 약세, 원부자재 가격 상승 및 물류·공급망 경색 가능성도 부담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자동차 부품업종 역시 원자재 가격 상승, 물류·공급망 경색 등 수익성 하락압력을 받을 것으로 진단했다.
정유업계는 원유 가격이 너무 올라 제품 가격이 급등하면 수요가 위축돼 정유사들의 마진(제품-원유 가격차이)이 악화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업계 관계자는 "러시아산 원유 비중이 많지 않아 당장 수급 차질은 크지 않다"면서도 "고유가가 지속되면 석유 제품 수요가 위축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 같은 수요 감소는 정제마진 하락을 동반할 수 있어 부정적"이라고 설명했다.
정제마진은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수송·운영 등의 비용을 뺀 가격으로, 통상 업계에서는 배럴당 4~5달러를 손익분기점(BEP)로 판단한다.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현재 6.9달러대로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향후 방향성을 예단하기 힘들다는 전망이다.
석화업계는 나프타 가격 급등으로 원가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수요가 꺾이며 수익이 감소한 석화업계는 올해 러시아-우크라이나 불똥으로 이 같은 부진이 심화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석화 산업의 주 원료인 나프타는 원유에서 정제돼 나오며 평균 제조원가에서 차지하는 나프타 비중은 70%를 웃돈다.
실제 나프타 국제가격은 이달 1월 t당 809달러였으나 한 달 새 918달러로 오르며 13.5% 상승했다. 작년 4분기부터 일부 설비 가동률을 조정해온 석화업계는 마진이 더 하락하게 될 경우 하향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진단한다.
석화업계 관계자는 "러시아산 나프타 수출 제한에 따른 공급 부족으로, 나프타 가격 상승 우려가 커지고 있다"면서 "마진이 떨어지는 일부 설비는 가동 조정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