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BM 신형 또는 기존 개량형 발사한 듯
文 "김정은, 모라토리엄 파기"
'정세 안정적 관리' 무위로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활용해 4년 4개월 만에 미국 본토 타격 능력을 과시하고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내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를 핵심 성과로 내세우며 대북정책의 '연속성'을 거듭 강조해온 상황에서 북측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사실상 결딴낸 모양새다.
합동참모본부는 24일 북한이 동해상으로 ICBM 1발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비행거리는 약 1080km, 고도는 약 6200km 이상으로 탐지됐다. 비행시간은 약 70여 분으로 파악됐다.
이번 발사가 고각(高角)으로 이뤄진 만큼, 정상 궤도로 발사할 경우 이론상 1만5000km 이상을 비행할 수 있다. 이는 미국 수도 워싱턴DC는 물론 뉴욕을 포함한 미 본토 전역이 사정권에 들어온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군 당국은 북측이 지난달 27일과 이달 5일·16일에 이어 이날에도 ICBM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다만 신형 ICBM(화성-17형) 가능성에 대해선 조심스러운 견해를 내놨다.
군 관계자는 "신형 (ICBM)인지 아닌지는 봐야 한다"며 "과거 제원과 차이가 있다. 차이라는 게 엔진이 달라졌을 수도 있고 탄두 무게가 달라졌을 수도 있기 때문에 추가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미사일이 신형 ICBM이거나 기존 ICBM(화성-15형)의 개량형일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이번 ICBM은 2017년 발사한 화성-15형보다 1700km 더 높게 상승했고, 120km 더 비행했다"며 "북한은 2020년 10월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모형을 공개했으나 그동안 시험발사하지 않은 화성-17형이나 화성-15형의 개량형을 발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회의를 주재하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ICBM 발사 유예를 스스로 파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북측의 ICBM 발사가 "한반도와 지역 그리고 국제사회에 심각한 위협을 야기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며 NSC를 통해 규탄 메시지를 내놓기도 했다.
같은 맥락에서 외교 당국은 미국·일본 등 국제사회와 잇따라 접촉하며 북한 도발에 대한 공동 규탄 메시지를 연이어 발표했다.
특히 유엔 안보리 차원의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언급해 향후 추가 제재 도입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측이 ICBM 발사를 공식 인정하며 모라토리엄 파기를 선언할지는 불분명하다는 관측이다.
앞서 북한은 지난달 27일과 이달 5일 발사한 신형 ICBM과 관련해 "정찰위성 개발을 위한 중요시험을 진행했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16일 쏘아 올린 신형 ICBM은 발사 직후 공중 폭발했으며 관련 보도는 전무했다.
북한이 ICBM 도발을 공식화한다면 북미대화와 관련한 '신뢰구축 조치'를 완전히 철회하는 수순으로 풀이된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월 정치국 회의에서 "우리가 선결적으로, 주동적으로 취했던 신뢰 구축 조치들을 전면 재고하고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들을 재가동하는 문제를 신속히 검토해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북측은 최근 '신뢰구축 조치 재고'와 관련해 동창리 미사일발사장 확장과 풍계리 핵실험장 재건 등을 잇따라 진행 중이기도 하다.
북한이 모라토리엄 파기를 공식화하며 '2017년으로의 회귀'를 선언할 경우, 윤석열 당선인은 평화프로세스 존중·계승 논란에서 벗어나 '제로 베이스'에서 대북정책을 입안할 수 있을 전망이다.
실제로 윤 당선인 측은 오는 4월 개최 예정인 한미연합훈련과 관련해 "현재 국군통수권자는 문재인 대통령"이라며 취임 전까지 대북 이슈에 거리를 두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연합훈련 맞대응 차원의 대규모 북한 도발이 예고되는 상황에서 정권 이양기 정세 악화의 '책임'이 온전히 문 정부에 있다는 점을 에둘러 강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