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산업·동원엔터프라이즈간 합병비율 조정
美 스타키스트 자산 가치 제외…합병 예정대로 진행 미지수
동원그룹이 비상장 지주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와 상장사인 동원산업간 합병과 관련, 문제가 제기돼 온 합병비율을 결국 변경했다. 그동안 주주들을 중심으로 커져온 반발에 오너의 지배력 축소를 감수하고 결국 백기를 든 것으로 커진 소액주주들의 힘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
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동원그룹이 주주들의 의견을 반영해 동원산업과 동원엔터프라이즈간 합병 비율을 자산 가치 기준으로 변경한 것은 결국 소액주주들에 대한 항복 선언으로 읽히고 있다.
동원산업은 18일 공시를 통해 동원엔터프라이즈와의 합병 비율을 변경했다고 밝혔다. 양사는 이날 각각 이사회를 열고 양사의 합병 비율을 기존 1대3.84에서 1대2.70으로 조정했다.
동원그룹은 그동안 비상장 지주사와 상장 계열사간 합병을 통해 동원산업을 지주회사로 만드는 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해 왔는데 이번 합병 추진 과정에서 산정한 합병 비율로 인해 주주들의 거센 반발을 받아왔다.
동원산업은 지난달 7일 한국거래소에 동원엔터프라이즈 합병을 위한 우회상장 예비심사 신청서를 제출했는데 당시 동원산업은 최근 주가를 토대로 한 기준 시가에 근거해 양사간 합병 비율을 1대3.84로, 동원산업의 합병가액은 24만8961원으로 각각 결정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소액주주들 사이에서 불합리한 의사 결정이라는 비판과 함께 적정성 논란이 제기됐다. 합병가액이 동원산업 주당 순자산 가치인 38만2140원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동원그룹이 동원산업 지분가치를 과소평가해 오너 일가에 유리하도록 합병 비율을 산정했다는 지적이었다.
특히 동원산업의 경우, 주가순자산비율(PBR)이 합병 결정 당시 0.5배에 불과해 순자산가치가 주가보다 훨씬 큰 상황이었다.
자본시장법상 상장사가 비상장사를 합병할 경우, 기준시가에 따라 합병가액을 결정하되 기준시가가 자산가치보다 낮은 경우에는 자산가치로 합병가액으로 정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음에도 이를 외면했다는 것이었다.
회사의 일방적인 합병 비율 결정에 반발한 주주들은 상법 위반 가능성까지 제기하며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에서 동원엔터프라이즈의 우회상장 신청서 기각 요구 집회까지 여는 등 반발의 목소리는 커져왔다.
결국 주주들의 반발에 부딪히며 궁지에 몰린 동원그룹은 이들의 요구를 수용해 자산 가치에 근거해 양사간 합병 비율과 합병가액을 조정하게 된 것이다.
이번 조정으로 오너 일가의 합병 지주사에 대한 영향력이 보다 축소되는 것임에도 기업이 소액 주주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오너 일가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기존 관행에 경종을 울렸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번 결정에도 동원그룹의 양사 합병 추진이 순탄하게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양사간 합병은 거래소에서 상장 신청을 받아들이면 오는 8월 30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안건으로 상정될 예정이다. 합병 기일은 10월 1일이며 합병 이후 신주 상장 예정일은 10월 21일이다. 합병 절차가 마무리되면 현 지주회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는 동원산업에 흡수돼 동원산업이 동원그룹의 지주회사가 된다.
이번 기업 가치 재산정에서 그룹 지주사가 될 동원산업의 자회사로 핵심 경쟁력을 보유한 미국 1위 참치캔 회사 스타키스트의 자산 가치가 다시 제외되면서 논란의 불씨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동원산업의 별도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가치를 산정해 스타키스트가 배제된 것으로 이에 대한 소액주주들의 불만은 여전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지난달 21일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주최로 개최된 ‘동원산업 불공정 합병 관련 기자회견’에서 소액주주 대표를 맡고 있는 백지윤 블래쉬자산운용 대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큰 원인은 전쟁 리스크,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지수 미편입이 아닌 기업 거버넌스”라고 말했다.
당시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이번 합병 건과 같이 일반주주들의 권리를 무시하는 의사결정이 계속될 경우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절대 해소될 수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