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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로, 해외로…이재용 부회장의 '목숨 건' 반도체 행보


입력 2022.06.15 11:32 수정 2022.06.15 11:33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사법리스크 족쇄에도 반도체 경쟁력 확보 위해 종횡무진

국내외 사업장, 글로벌 네트워킹 등 쉴 틈 없는 현장경영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총리 집무실에서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와 만나 반도체 협력 방안 등을 논의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

“메모리반도체시장 정체를 극복할 수 있는 지속적 기술 혁신과 시스템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추진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새로운 반도체시장을 창조하자.”(2019년 1월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DS부문 사장단 회의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목숨 건 반도체 행보’가 처절하게 이어지고 있다. 사법리스크로 각종 제약을 받는 상황에서도 회사의 미래를 위해 반도체 사업만큼은 글로벌 톱클래스로 올려놓아야 한다는 절박감에 국내외 사업장 현장경영은 물론, 글로벌 네트워킹을 위한 행보를 쉬지 않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1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총리 집무실에서 마르크 뤼터(Mark Rutte) 네덜란드 총리와 만났다. 지난 7일부터 시작된 유럽 출장 일정의 일환이다.


네덜란드 방문은 이 부회장의 이번 유럽 출장 기간 가장 중요한 일정으로 손꼽힌다. 삼성전자의 미래를 좌우할 시스템반도체 경쟁력 확보 여부가 이곳에서 결판이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분야에서 세계 1위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초미세공정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이 시장 1위인 대만 TSMC를 잡기 위해선 5나노미터(nm,1nm는10억분의1m)이하 초미세공정에서 앞서야 한다.


그걸 좌우할 극자외선(EUV) 노광장비의 독점 생산업체 ASML이 네덜란드에 위치해 있다. 연간 생산대수가 한정돼 있어 장비 확보 경쟁이 치열하다. 올해 ASML의 EUV 노광장비 출하량 51대 가량 중 22대를 TSMC가 확보했고 삼성 몫은 상대적으로 적은 18대라는 게 업계의 추정이다.


실무진의 노력만으로는 시장에 먼저 진입하고 규모의 경제까지 갖춘 TSMC보다 나은 협상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


그래서 이 부회장이 나섰다. 네덜란드 내각의 수장인 마르크 뤼터 총리(네덜란드는 의원내각제 국가라 대통령 없이 총리가 내각을 이끈다)를 만나 EUV 노광장비의 안정적 공급이 가능하도록 협조를 요청했다. 웬만한 글로벌 인지도와 인맥이 아니고서는 이런 식의 담판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


6년 전 인연도 한 몫 했다. 지난 2016년 9월 뤼터 총리의 방한 당시 이 부회장은 삼성 서초사옥에서 삼성전자 전시관 ‘딜라이트’를 직접 안내하며 친분을 쌓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맨 오른쪽)이 2019년 4월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에서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고 있다. 세바스찬 승(승현준·왼쪽에서 두 번째) 당시 프린스턴대학교 교수가 이를 바라 보고 있다.ⓒ삼성전자

이번 네덜란드 방문에서 볼 수 있듯이, 글로벌 리딩업체도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는 산업 패러다임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이 부회장의 책임은 막중하다.


사법리스크의 족쇄가 채워진 상황에서도 이 부회장이 끊임없이 뛰어온 것도 이 때문이다. 2017년 2월 구속됐다 1년 뒤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된 이 부회장은 경영활동 재개의 첫 행보로 그해 8월 화성 반도체 사업장을 찾았다.


당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회동 이후 화성사업장 내 반도체연구소를 찾은 이 부회장은 임직원들에게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고 미래 반도체 수요에 대비하기 위해선 ‘기술 초격차’가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며 끊임없는 혁신과 도전을 당부했다.


2019년에는 1월 기흥사업장에서 DS부문 사장단 회의를 열고 시스템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강조한 데 이어 2월 중국으로 날아가 시안 반도체 공장을 점검했다.


그해 4월에는 화성사업장에서 삼성전자로서는 역사적 전환점으로 기록될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이 있었다. 당시 이 부회장은 2030년까지 메모리반도체 뿐만아니라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도 글로벌 1위를 달성하겠다는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고 시스템반도체 분야 연구개발(R&D) 및 생산시설 확충에 133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 두번째)이 지난 2020년 10월 13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를 찾아 극자외선(EUV) 장비를 살펴보고 있다.ⓒ삼성전자

이후에도 이 부회장의 ‘반도체 행보’는 쉴 새 없이 이어졌다. 7월 DS부문 사장단 회의에 이어 8월 DS 등 부품계열사 사장단 회의를 열고 ‘반도체 비전 2030’의 세부 내용을 논의했고, 온양‧천안사업장 패키징사업 점검, 평택 2라인 건설현장 점검 등 현장경영에도 나섰다.


2020년에도 새해 첫 현장경영으로 화성 반도체연구소 3나노 개발현장 방문을 택했고, EUV 전용 반도체 생산라인(V1)도 점검했다.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 점검 등 해외 일정도 소화했다.


초미세공정에 사용되는 EUV 장비 확보를 위한 ASML 경영진과의 네트워킹도 이어갔다. 2020년 10월 네덜란드 에인트호번 ASML 본사를 찾아 피터 버닝크 최고경영자(CEO), 마틴반 덴 브링크 최고기술책임자(CTO) 등과 EUV 장비 공급계획 및 운영 기술 고도화 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 그해 11월에는 ASML 경영진이 방한해 좀 더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처럼 절박했던 이 부회장의 반도체 행보는 2021년부터 중단됐다. 그해 1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된 데 따른 것이다. 지난해 8월 15일 광복절 가석방으로 자유의 몸이 되면서 이번 네덜란드 방문과 같은 제한적 경영활동이 가능해졌지만, 재계 안팎에서는 사면복권으로 이 부회장이 더 적극적인 경영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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