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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지원=모럴해저드? '낡은 공식' [부광우의 싫존주의]


입력 2022.10.11 07:00 수정 2022.10.12 16:04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빚 탕감보다 빚 갚게 하는 정책

극소수 사례에 본질 왜곡 우려

서울 시내의 한 식당에 임대문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뉴시스

동네 사장님들을 돕기 위한 각종 금융지원 정책들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모럴해저드 논란에 삐걱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어 온 이들을 돕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정부가 빚을 늦게 갚을 수 있도록 해주거나 아예 탕감해 주는 건 도덕적 해이를 낳을 수 있다는 목소리다.


가장 뜨거운 이슈는 새출발기금이다. 이는 다음 달부터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본격 가동되는 채무조정 프로그램이다. 문제는 이를 통해 빚 대부분을 탕감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거졌다. 그 동안 경제적 곤란에도 대출 원금과 이자를 갚은 사람만 바보가 된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다.


누군가가 빚을 안 갚아도 되게 해준다는 말은 사실일까. 물론 이 말 자체는 팩트다. 실제로 금융위원회가 마련한 새출발기금 청사진에는 부실 차주의 대출 원금 중 60~90%를 아예 감면해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사실과 진실은 다른 법이다. 그 속내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과장 섞인 주장이 논지를 흐리고 있음이 분명해진다. 새출발기금이 정말 대출을 성실히 갚아 온 사람이 억울할 정도의 대책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기엔 의문부호가 붙을 수밖에 없다.


우선 전에 없던 이례적 방안이냐를 묻는 다면 아니올시다다. 새출발기금은 기존 신용회복위원회의 워크아웃이나 법원의 개인회생 등과 동일한 원칙에 기반을 두고 있다. 다만 코로나19란 특수 상황을 감안해 기존 제도들보다 대출 원금과 이자 감면율을 일부 상향한 정도다.


그래도 돈을 갚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빚을 너무 손쉽게 탕감해주는 것 아니냐는 불만에 대한 대답도 글쎄올시다다. 극히 제한적인 이들만 적용받을 수 있는 지원책인데다, 장기간 금융 거래를 포기하더라도 이를 받아들여야 할 만큼 벼랑 끝에 몰린 차주가 대상이기 때문이다.


새출발기금은 과거 신용불량자, 더 옛날이라면 금치산자로 불릴 만큼 재무 상태가 열악해야 이용 가능한 수단이다. 또 새출발기금 지원을 받으면 신규 대출과 신용카드 이용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는 등 7년 간 정상 금융거래가 불가능하다.


창업부터 대부분 빚을 깔고 시작하는 한국의 자영업자라면 이런 전제 조건이 얼마나 큰 페널티인지 모를 리 없다. 대출 원금을 탕감 받으려고 일부러 대출을 연체할 것이란 전망은 기우일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코로나19 직후부터 시행해 온 소상공인 대출 만기연장과 이자 상환유예 조치도 갑론을박의 대상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대출을 당겨쓰고 버티기 모드에 들어가는 게 나았을 것이란 결과론이다.


하지만 근원적 물음으로 돌아가 보자. 새출발기금도, 대출 만기연장·상환유예도 모두 기저에 깔고 있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시기가 늦어지거나 혹은 일부를 갚지 못하더라도 각자 상황에서 최대한 빚을 갚게 유도하는 방책이란 점이다.


이렇게 보면 오히려 정부의 최근 행보는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이를 사전 차단하려는 성격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부의 서민 금융 지원책이 나올 때마다 반복되는 모럴해저드 비난을 재검토해봐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마지막 한계에 몰린 극소수의 구제가 아닌, 어떻게든 끝까지 대출을 갚게 하려는 원칙론을 바라봐야 한다는 관점이다.


무릇 정책이란 현장에서는 따뜻해야 하나 책상에서는 냉철해야 하는 법이다. 감정에 휘둘리면 결국 꼬리가 몸통을 흔들고 본질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금융지원은 모럴해저드를 낳는다는 낡은 공식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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