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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무역 붕괴③] EU, 자유무역 수호자에서 ‘단호한 통상정책’으로


입력 2022.10.29 07:00 수정 2022.10.29 18:18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경제공동체 EU, 팬데믹에 ‘균열’ 조짐

보호무역 기조 강화해 내부 결속 다져

지속가능발전 명분 무역 장벽 높여

지난 2019년 12월(현지시간)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총재(왼쪽)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신임 유럽연합(EU)집행위원장(왼쪽 두번째), 샤를 미셸 신임 EU정상회의 상임의장(오른쪽 두번째), 다비드 사솔리 유럽의회 의장이 벨기에 브뤼셀에서 EU 헌법격인 리스본조약 10주년 행사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시스

유럽연합은 태생 자체가 ‘경제공동체’를 시작으로 한다. 서로 국경을 맞닿아 있는 유럽 국가들로 이뤄진 부분적 ‘세계화’의 한 모습이 EU다.


유럽 국가들은 1957년 3월 로마조약 체결을 시작으로 1965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 경제공동체, 원자력공동체가 합병하면서 유럽공동체(EC)를 형성했다. 이후 1993년 11월 마스트리흐트조약에 따라 유럽연합(EU)로 개칭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EU 탄생 뼈대 역할을 한 ‘유럽연합 개혁조약(일명 리스본 조약)’ 내용을 보면 EU 공동통상정책의 목표는 교역 및 해외투자에 대한 장벽을 점진적으로 없애는 한편,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낮추어 국제무역을 조화롭게 발전시키고 궁극적으로 세계 자유무역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European Union(유럽의 연합)’이라는 이름 그대로 27개 국가의 정치·경제 통합기체인 EU가 달라지고 있다. 자유무역의 선봉으로 유럽을 넘어 세계 무역 국경을 허물어오던 EU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미·중 무역전쟁 등을 겪으며 ‘단호한 통상정책’이란 이름으로 경계의 벽을 쌓기 시작했다.


EU는 최근 유럽연합 역내 경제 보호를 명분으로 통상보호조치, 외국인 보조금 제한, 상호주의 공공조달제도, 수석통상감찰관 제도를 도입했다. 제3국의 강압적인 통상 조치에 대응한다며 통상위협대응조치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환경보호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명분으로 탄소국경조정제도, 기업의 지속가능한 공급망 실사제도, 이중사용금지 및 인권보호를 위한 수출통제 제도도 도입 중이다. 나아가 EU 역내 산업보호를 명목으로 외국인 직접투자 감시제도, 핵심 6대 산업 선정 및 연합체 결성, 핵심 원자재 선정 및 전략적 관리 등 다양한 보호무역 정책을 추진 중이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지난해 3월 ‘폰데어라이엔 집행부 출범 2년 차, 2021년 EU의 주요 통상 키워드는’이란 보고서에서 2019년 12월 새로 출범한 EU 집행부가 기후변화 대응과 디지털 전환을 가속할 것으로 분석하면서 EU의 새로운 통상정책이 일방적인 보호무역 조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EU는 지속가능 무역 달성을 위해 환경규제가 상대적으로 약한 역외국에 관세 등의 부담을 지울 수 있는 탄소국경제도를 도입했다. 공급망 실사 제도도 도입해 기업의 전 공급망 내 환경 및 인권 분야의 준수 의무 감독을 강화할 계획이다.


디지털 주권 회복과 관련해 EU 역내 통일된 디지털 서비스세 도입은 지금 막바지 단계다. 이는 사실상 미국 글로벌 정보통신(IT) 기업을 견제하기 위해 과세 기준을 기업 디지털 사업장에까지 확장하는 기능을 한다. EU의 데이터 주권 확보를 위한 각종 입법안도 제출할 계획이다.


지난 22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팔러먼트 스퀘어에서 영국 사람들이 유럽연합(EU) 재가입을 촉구하는 행진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

신규섭 무역협회 연구원은 “EU의 신 통상정책은 표면적으로 환경과 인권 보호 등 보편적 가치의 수호를 목표로 제시하고 있지만, 일방적인 보호무역 조치로 작용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6월 주벨기에유럽연합대사관이 내놓은 ‘유럽연합의 신(新)통상정책 공정무역인가? 보호무역인가?’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도 EU의 통상 정책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보고서는 ‘자유무역 수호자’였던 EU가 단호한 통상정책으로 전환하게 된 이유로 먼저 코로나19 범유행을 꼽았다. 전염병 위기로 EU 내 단일시장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회원국 간 협력과 공조, 사전논의 없이 자국 이익만을 위해 국경을 통제하고 각자 검역기준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앞서 결정된 영국의 EU 탈퇴도 자유무역 기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보고서는 특히 “독일과 프랑스 등 일부 선진 회원국들은 마스크, 손 소독제, 방호복 등 개인보호용품에 대한 수출금지 조치까지 취하는 등 소위 ‘각자도생(各自圖生)’ 방식의 통상정책이 나오기 시작했다”며 “나아가 EU 역내 산업 공급망이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맞이하면서 유럽 완성차 업체들의 조업 중단 상황까지 치닫자 역내 단일시장을 주장해온 EU로서는 고통스러운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고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영향도 있다. 2017년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외치며 등장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철저한 보호무역 기조를 펼치자 EU도 2020년 유럽 그린딜과 디지털 전환을 최상위 정책 의제로 내걸고 통상정책 벽을 높였다.


최근 미국이 자국에서 생산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도입하자 EU도 유사한 법안 도입을 논의할 정도다.


보고서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겪으면서 대부분의 EU 통상정책이 가이드라인 형태로 추진해온 탓에 위기 대응이 느리고, 구속력과 집행력이 없다는 한계점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EU 집행위원회는 포스트 코로나19를 대비하고 침체한 경제회복을 위한 산업 보호와 육성, 그리고 EU 역내에서의 집행위원회 존재감 강화를 위해 더욱 강력한 통상정책이 필요했고,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은 EU의 단호한 통상정책을 추진할 명분을 제공해뒀다”고 설명했다.


이성우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통상본부장은 “전통적인 보호무역조치인 반덤핑 등 수입규제 조치에 더해 수입규제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함께 탄소국경조정제도, 반도체 수출 규제 등 다양한 무역 조치들이 더해지고 있어 수출 지향적인 우리 기업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며 “국가별 특징이 다르고, 더욱 복잡해지는 만큼 기업, 협회, 정부, 컨설팅 기관이 협력해 적절한 대응 논리를 개발하고 협력해 나간다면 까다로운 수입규제에 잘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무역 붕괴④] 미국 빈자리 노리는 중국, ‘다자주의’ 강조하는 속내는…에서 계속됩니다.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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