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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카탈루냐 복숭아 농장의 추억


입력 2022.11.10 14:01 수정 2022.11.10 14:01        데스크 (desk@dailian.co.kr)

영화 ‘알카라스의 여름’

스페인 북동부에 있는 카탈루냐 지방은 스페인 국내 총생산의 19%를 차지하는 부유한 지역이다. 카탈루냐는 고유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언어를 가지고 있으나 중앙정부의 차별정책으로 인해 오래전부터 분리독립을 주장해 왔다. 최근 스페인을 대표하는 여성 감독 카를로 시몬은 카탈루냐를 다룬 자전적 영화 ‘알카라스의 여름’으로 제72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강렬한 햇빛이 쏟아지는 스페인 카탈루냐의 작은 마을 알카라스에서 3대째 복숭아 농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솔레 가족은 어느 날 지주로부터 땅을 비워달라는 요청을 듣는다. 가문의 수장, 할아버지 로헬리오(요셉 바바드 분)는 스페인 내전 기간 중 땅 주인 피뇰의 목숨을 구해준 대가로 땅을 받았지만, 계약서를 따로 받지는 않았다. 피뇰의 아들은 수익성이 낮은 과수원보다 태양광 발전 패널을 설치하려는 계획으로 과수원을 떠날 것을 통보하면서 솔레 가족의 삶은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한다.


잔잔한 이야기 속에서 다양한 담론을 말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한 가정의 소소한 일상을 통한 가족 이야기로 보이지만 이면에는 인구 고령화 문제, 기후 위기와 가뭄, 거대 자본의 유입, 중앙정부의 재정적 차별 등 다양한 문제들을 내비친다. 쨍쨍한 햇볕이 내리쬐는 스페인의 여름 햇살 아래 자라나는 푸른 복숭아 밭과는 대조적으로 메마르고 건조한 들판은 기후 문제와 가뭄에 대해 말한다. 대형마트가 들어오면서 복숭아 가격 폭락으로 쇠퇴해 가는 농업과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면서 사라져가는 농촌 풍경 또한 잘 묘사하고 있다. 아울러 낮은 과일 가격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가한 소작농인 키메트와 로제르의 모습은 중앙정부의 재정 차별로 분리독립을 외치는 카탈루냐의 복잡한 역사까지 가늠하게 만든다.


대가족을 이루고 살았던 과거의 향수를 자극한다. 영화 속 배경이 되는 알카라스는 카탈루냐의 도시 레리다에서 촬영됐다고 한다. 드넓은 땅을 메운 복숭아나무와 고즈넉한 마당 있는 시골집,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복숭아 밭을 이곳저곳 놀이터 삼아 뛰어다닌다. 10대 남매는 낮에는 농가의 일손은 돕다 저녁이면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중년의 아버지는 밤이 돼도 일을 손에 놓지 않는다.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가 에피소드로 녹아든 만큼 솔레 가족의 이야기는 우리네 여느 농가의 정경과 비슷한 모습을 추억하게 해서 농촌에 대한, 대가족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만든다.


여성 감독의 섬세함이 작품 곳곳에 묻어난다. 그의 장편 데뷔작 ‘프리다의 그해 여름’이 어린 시절 부모님을 잃은 기억을 떠올린 작품이라면, 두 번째 영화 ‘알카라스의 여름’은 알카라스에서 복숭아 농사를 짓던 할아버지와 삼촌들에 대한 추억을 구체화 시켰다. 이번 작품에서는 배우들의 자연스럽고 몰입감 넘치는 연기는 진짜 가족 같은 캐미로 극에 현실감을 더하며 완성도를 높였다. 더욱이 알카라스에서 농사를 짓는 캐릭터를 구현하기 위해 해당 지역 언어를 사용했으며 등장인물과 비슷한 배경의 배우를 섭외해 자연스럽고 진실한 연기를 이끌어냈다. 아울러 자연스러운 대사를 위해 즉흥 연기를 지도하는 등 감독의 섬세한 연출이 자연스러운 가족의 풍경을 완성해 냈다.


산업화로 농촌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기후 위기와 탄소중립 시대를 맞아 농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식량안보 문제는 다시 중요해지고 있다. 실제로 도시의 힘만으로는 일자리를 비롯한 이러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영화 ‘알카라스의 여름’은 사라져가는 우리 농촌에 대한 현실을 반성하게 만들고 농업의 가치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양경미 / 연세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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