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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에 물어보니 71] "박원순 성희롱 인정 '인권위 정당'…'피해자다움' 제동"


입력 2022.11.16 05:11 수정 2022.11.16 09:14        정채영 기자 (chaezero@dailian.co.kr)

인권위, 성희롱 인정 및 정부부처에 개선책 마련 권고…유족 "범죄자 낙인" 찍어

법원 "피해자 진술 신빙성 인정…인권위 재량권 일탈·남용으로 보기 어려워"

법조계 "인권위 절차에 하자 있어도 성희롱 예방·피해자 구제 공익성에 더 큰 가치"

"피해자다움 강요에 제동 건, 최근 법원 판결 추세 보여줘…性사건 진술 일관되면 신빙성 인정"

지난 2020년 7월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피해자 대리인 김재련 변호사가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데일리안 DB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이 부하 직원을 성희롱했다고 인정한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에 대해 적절한 결정이라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법조계는 법원이 인권위가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본 것이라며 성희롱 예방 및 피해자 구제라는 공익성을 더 크게 생각하고, 무엇보다 피해자다움 강요에 제동을 건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15일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이정희 부장판사)는 박 전 시장의 배우자 강난희 씨가 인권위를 상대로 낸 결정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메신저로 셀카나 이모티콘을 보낸 부분을 보면 이에 관한 피해자 진술, 시간, 행위, 방법 등이 구체적 내용을 담고 있다"며 "허위 진술이 발견되지 않아 신빙성이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 각 행위는 성적 언동에 해당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불쾌감을 주는 정도에 이르러 성희롱에 이른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이 사건 권고 결정은 피고 권한 범위로, 재량권 일탈·남용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선고 직후 강 씨 대리인은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매우 당황스럽다"며 "유족과 상의해 재판부 판단의 어떤 점이 부당한지 밝혀볼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인권위는 "박 전 시장이 늦은 밤 피해자에게 부적절한 메시지와 사진 등을 보내고 집무실에서 네일아트 한 손톱과 손을 만졌다는 피해자의 주장은 사실로 인정 가능하다"며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성적 언동으로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강 씨는 이런 인권위의 결정에 불복해 작년 4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인권위가 조사 개시 절차를 위반한 채 증거를 왜곡했다"며 "상대방의 일방적 주장만으로 고인을 범죄자로 낙인찍었다"고 반박했다.


헌화하는 강난희 여사와 유가족들.ⓒ사진공동취재단

법조계는 이번 판결의 쟁점이 인권위 권고에 대한 '재량권 남용 여부'와 '공익성'이라며 인권위는 인권위가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법률사무소 현강 이승우 변호사 "행정소송의 쟁점은 '재량권 일탈·남용'"이라며 "국가인권위가 내린 권고가 '인권위의 재량권 남용이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기관 나름의 재량권이 있는 것인데, 재량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사실 어렵다"며 "재량권을 현저하게 남용한 것이 인정될 때만 취소가 된다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법무법인 덕수 김예림 변호사는 "사실 (유족 측의 주장처럼) 고인의 명예훼손 등 인권위 절차에 하자가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 부분보다 성희롱 예방과 피해자를 구제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에 대한 공공성이 더 크다고 보기 때문에 공익성에 더 큰 가치를 둔 것으로 보인다"며 "실제로 유명인의 명예훼손이나 성범죄도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미칠 경우 공익성을 고려해서 판결하는 일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권위는 일반적인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아니다"며 "인권위 자체가 해야 하는 권고 조치 등을 적절하게 수행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박 전 시장의 유족 측은 '인품이 훌륭하셔서 배울 것이 많다'라고 말하는 등 친밀감을 표시한 점과 피해자가 4년간 피해 사실을 호소하지 않은 점을 들어 성희롱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피해자는 각 행위에 대해 거부 의사 등 불쾌감을 표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유족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조계는 이 같은 재판부의 입장이 성(性) 사건을 대하는 최근 법원의 판결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법률사무소 킹덤컴 박성남 변호사는 "성비위 사건은 원래 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판단이 중요하다"며 "그 신빙성을 탄핵하는 방법으로 피해자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쳐오고 있었는데, 이 방법에 제동을 건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또 최근 공개된 박 전 시장과 피해자의 메신저 대화에 대해서는 "기록을 보면 조각조각 돼 있어 어느 쪽에서 판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달라 보일 수는 있다"고 전제하고, "법원은 전체를 보고 판단한 것이기 때문에 법원을 신뢰하는 게 맞다"고 조언했다.


김 변호사는 "성 사건은 둘밖에 모르는 공간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이번 판결처럼 진술이 일관되면 신빙성이 있다고 봐서 그것만으로도 인정되는 사례가 많다"며 "(피해 사실을) 얘기할 수 없는 상황이 얼마든지 예상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호소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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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영 기자 (chaezero@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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