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잔 45조 돌파…올해만 48% 급증
달러 확보 '안간힘'…빚 부담 '숙제'
국내 4대 은행이 경영 안정화를 위해 외부에서 빌려 온 외화가 올해 들어서만 15조원 넘게 불어나면서 45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금융시장을 둘러싼 불안이 확산되자 위기 대응력을 높이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은행권이 달러 유동성 확보를 위해 총력전을 펼치는 가운데, 빚을 늘려 외화를 메꾸고 있다는 점에서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 등 4개 은행의 올해 3분기 외화 차입금 평균 잔액은 총 46조5286억원으로 지난해보다 47.9%(15조777억원) 늘었다.
이처럼 차입이 늘고 있다는 것은 자체 이익만으로 경영 과정에 필요한 자금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하고, 외부 수혈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차입금은 기업이 운영 자금이나 투자금을 조달하고자 외부 기관으로부터 빌린 돈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개인이 금융사에서 받은 대출처럼, 기업도 일정 기한이 지나면 차입금에 대한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한다.
은행별로 보면 우선 국민은행의 외화 차입금 평균 잔액이 18조3631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69.8%나 늘며 최대를 나타냈다. 우리은행 역시 10조2581억원으로, 하나은행은 9조239억원으로 각각 50.7%와 24.5%씩 해당 금액이 증가했다. 신한은행의 외화 차입금 평균 잔액도 8조8835억원으로 35.0% 늘었다.
은행권이 빚을 확대해 가면서까지 외화를 쌓는데 주력하고 있는 배경에는 금융시장의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각국의 통화정책 긴축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 그리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연착륙 과정에서의 혼란 등 불확실성이 커지자, 위험 대비 차원에서 외화 수요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미국의 기준금리가 우리나라보다 높아진 역전 현상은 은행권의 움직임을 더욱 분주하게 만드는 요인이 됐다. 미국 금리가 높은 상황이 길어지면 외국 자본의 유출과 그로 인한 원화 가치 하락이 심화할 수 있는 만큼, 여지가 있을 때 미리 달러를 쌓아둬야 한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이번 달에도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p) 올리는 자이언트스텝을 단행했다. 사상 유래 없는 네 차례 연속 자이언트스텝이다. 이로써 미국 기준금리는 3.75~4.00%가 됐다. 이는 3.00%인 한국은행 기준금리를 최대 1%p 웃도는 수준이다.
문제는 연준이 앞으로 더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달러 가치는 지속 상승할 공산이 크고, 공급 상황도 당분간 나아지지 않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여유로운 달러 유동성 확보를 위한 은행 간 경쟁은 계속될 전망이다. 4대 은행의 올해 3분기 말 평균 외화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은 124.7%로 지난해 말보다 13.8%p 떨어졌다. 은행의 외화 LCR이 떨어졌다는 것은 그 만큼 외환 위험 발생에 대한 대비 수준이 이전보다 개선됐다는 의미다.
다만 결국 언젠가 갚아야 할 빚인 외부 차입을 통한 외화 조달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환율 변동성이 크게 확대돼 달러를 미리 모아둘 필요성은 있지만, 금리 상승기에 과도한 차입금에 따른 이자 증대는 중장기적으로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