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감원장 발언 연일 논란
'선의'라 할지라도 언사 신중해야
"선의를 가지고 한 말. 그 이상의 해석들은 나중에 오해로 정리될 것."
금융권이 때 아닌 관치 논란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당국이 금융사 최고경영자(CEO) 인사에 개입하려 한다는 의혹이다. 이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오해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오해는 누가 낳았나. 최근 라임자산운용 펀드 손실 사태로 금융위원회로부터 중징계를 받은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불복 소송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에 이 원장은 "현명한 판단을 내리실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금융사에 대한 사정 칼날을 쥔 금감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사실상의 거취 압박일 수밖에 없다.
손 회장의 잘잘못과 별개로 소송을 할지 말지는 개인의 권리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억울한 일이 없도록 사법부에서 충분히 시시비비를 가려볼 수 있도록 한 건 법치국가의 기본 원리다. 금감원장은 어떤 자리이기에 여기에까지 압력을 가할 수 있는가.
얼마 전에는 금융사 CEO의 조건을 언급한 발언도 구설수에 올랐다. 금융그룹 회장에 대한 인사 권한을 가진 이사회 의장들을 불러 모아 "내부통제 기준을 잘 마련하고 이행한 이가 CEO로 선임돼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감독 권한을 타이트하게 행사할 수밖에 없다"고 으름장을 놨다.
민간 회사의 인사권은 해당 법인에 있다. 도대체 금감원장이 무슨 자격으로 금융사 CEO 인선 기준까지 제시한단 말인가. 금감원은 금융사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그때 의견을 제시하고 현장검사에 나서면 될 일이다. 가뜩이나 연말 인사철을 앞두고 신경이 예민한 시기에 터져 나온 금감원장의 발언은 시점 상 더욱 논란을 부채질했다.
이 원장은 이런 모든 세간의 의구심을 오해로 떠넘겼다. 그러면서 어디까지나 선의로 한 발언이라며 스스로를 두둔했다. 하지만 좋은 뜻이라고 해서 결과까지 좋으리란 법은 없다. 도리어 지옥으로 가는 길은 종종 선의로 포장돼 있다.
금융당국의 수장은 시장에 뚜렷한 메시지를 내야 한다. 금융 불안은 불확실성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원리 원칙상 아무리 맞는 말이라 해도 오해를 일으키는 발언은 삼가야 할 이유다. 그러나 지금은 금감원장이 오히려 혼란을 키우고 나선 형국이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면 '현명한 선택'이니, '선의' 등으로 뭉뚱그리지 말고 선명한 비판을 내놓으면 된다. 이런 면에서 최근 잇따른 언사들은 어딘가 비겁하다.
남의 오해를 받기 쉬운 말을 우리는 어폐라고 한다. 그리고 어폐의 또 다른 뜻은 잘못한 말로 발생한 폐단 혹은 결점이다. 이 원장으로서는 최근 오해를 산 발언들이 폐단을 낳지 않도록 본인의 어폐를 인정해야 한다. 리더의 말은 깔끔해야지, 군말이 섞이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