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설비 최초로 국산화 이뤄낸 '한국형 원전'
디지털 제어반으로 실시간 원전 상태 모니터링
APR1400 노형 적용, 설계수명 20년 향상 '60년'
100만kW급 기존 원전比 전력 생산 40% 증가
우리나라 27번째 원전인 신한울 1호기가 지난 7일 상업운전을 본격 시작했다. 첫 삽을 뜬지 12년만의 가동인데 정부는 1호기 가동으로 올겨울 안정적인 전력 수급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호기의 경우 현재 공정률 99%로 내년 9월 준공이 목표다. 두 원전 모두 핵심 설비를 최초로 국산화한 '한국형 원전'이다. 울진군은 한울 1∼6기가 가동되고 신한울 3·4호기까지 건설되면 총 10기의 원전이 가동되는 최대 국내 원전 단지로 부상하게 된다. 경북 울진 신한울 1·2호기 건설 현장을 찾았다.
지난 5일 세종에서 약 4시간 달려 경북 울진 한국수력원자력 한울원자력본부에 도착하니 둥근 돔 모양의 원자력발전소 격납 건물 여러 동이 보였다. 이곳은 한울 1~6호기가 운영 중이고, 신한울 1·2호기 건설 현장이기도 하다. 앞으로 신한울 3·4호기도 이곳에 들어선다.
원전은 국가보안시설이기 때문에 사전에 승인된 사람만 출입이 가능하도록 엄격하게 보안이 유지됐다. 사전 출입신청이 반드시 필요하며, 안면 인증, 지문 등록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만 들어갈 수 있다. 휴대전화와 노트북, 저장매체 등 전자기기의 반입은 철저하게 제한됐다.
출입 절차를 마치고 웅장한 신한울 1호기 외관이 눈 앞에 들어왔다. 발전소는 대형 콘트리트 건물인데, 반구 형태의 돔은 지표면에서 약 72m, 아파트 24층 높이다. 콘크리트 외벽을 보기 좋은 색으로 칠하지 않는 이유는 격납건물의 미세한 균열 등을 육안으로 관찰하기 위함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발전소가 반구 형태의 돔형인 이유는 발전소 내부 높은 압력을 견디기에 가장 적합한 구조이기 때문"이라며 "네모 세모 형태의 구조물은 모서리가 발생하게 되는데 그 모서리가 안전성에 취약해지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발전소 안에서 이동하는 사이사이에는 철문이 많았는데, 유난히 무거웠다. 뒷사람을 위해 잘 잡아주지 않으면 문을 열기 어려울 정도였다. 안내를 맡은 한수원 관계자는 "발전소는 유사시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압력을 가해놓다 보니 발전소 안으로 공기를 빨아들이는 힘이 강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직원들의 안내를 따라 이동하자 유리창 너머로 주제어실(MCR, Main Control Room)을 볼 수 있었다. 원자로와 터빈 사이에 위치한 주제어실은 원전의 '두뇌' 격으로, 발전소 운전원들이 이곳에서 근무한다. 커다란 모니터로 이뤄진 디지털 제어반을 통해 실시간으로 원전의 상태를 모니터링한다. 방문 당시 운전원들은 PC를 이용해 발전소를 제어하고 있었다.
제어반이 디지털화된 것은 최초의 APR1400 노형인 새울1호기(구 신고리3호기)부터다. 다른 원전들은 모두 아날로그 방식이다. APR1400 노형은 다만 디지털 작동에 문제가 생길 경우에 대비해 아날로그 방식의 백업 시스템도 마련해뒀다. 주제어실에 화재 등으로 상주가 불가능한 상황에는 아래층에서 원격조정이 가능하다. 원전 설계의 기본 개념인 이중화, 다중화 덕분이다.
근무 시 11명 중 5명은 발전소 내 위치하며, 발전소 운전 관련 총책임자인 발전팀장과 원자로 차장, 터빈 차장, 안전차장 등 6명은 주제어실에 근무한다.
상업운전(12월 7일 시작)을 이틀 앞두고 있는 주제어실에는 사뭇 긴장감이 도는 듯 했다. 이들의 손 끝에서 어마어마한 규모의 원전이 조종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원전은 3개 조가 8시간씩 근무하며 24시간 가동하는 체계다. 운전원들은 근무시간 동안 주제어실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식사도 배달된 음식으로 해결한다.
원전의 핵심기기는 원자로, 증기발생기, 터빈 등 3가지다. 원자로에서 데워진 물을 증기발생기에 전달하고 증기발생기에서 열교환을 통해 생성된 증기는 터빈룸으로 보내져 전기를 생산하게 된다. 증기가 터빈 날개를 돌리고 터빈 끝에 있는 발전기가 돌아가며 전기를 생산하는 원리다.
한울본부 직원들의 안내를 받아 신한울 1호기의 터빈룸을 둘러봤다. 고압터빈부터 발전기까지 약 70m 한 축으로 이뤄져있다. 터빈은 분당 무려 1800바퀴를 회전한다. 회전하며 발생하는 열기 때문에 한겨울에도 30도 가량을 유지하고 엄청난 기계음 때문에 대화도 거의 불가능하다.
한수원 관계자는 "APR1400 노형인 신한울1호기는 시간당 1400MW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데 이 터빈룸에서 연간 1만424GWh, 경북지역 연간 전력소비량의 약 23%를 생산하게 된다"며 "올겨울 안정적인 전력수급에 신한울 1호기가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전기 생산을 위해 사용하고 난 연료를 보관하는 대형수조인 사용후연료저장조로 이동했다. 붕산수가 가득 차 있어 핵분열을 억제하고 뜨거 워진 연료를 냉각하는 역할을 한다. 물이 가장 뛰어난 방사선 차폐체 역할을 하기 때문에 물 안에 보관하는 것이다.
원전 연료인 펠렛은 우라늄을 농축시켜놓은 것으로, 손가락 한마디 정도 크기다. 이렇게 작은 펠렛 하나가 약 1800kWh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데, 이는 4인 가구가 6개월간 사용할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1개의 연료봉에는 펠렛 350여 개가 들어가고, 연료봉 236개가 모이면 연료 다발이 된다.
연료 한 다발이 원자로에 들어가면 약 4년 6개월간 사용되고, 연료의 역할을 다 하면 이 수조로 들어온다. 국산 원자로 APR1400은 핵연료 241다발, 제어봉 93개로 구성돼있다.
한수원은 이달 7일부터 신한울 1호기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국내 27번째 원자력발전소인 신한울 1호기가 상업운전을 시작한 것은 2010년 4월 건설 착수 이후 12년여 만이다.
신한울 2호기 운영허가 취득 준비 중…내년 9월 준공 목표
신한울 1호기에서 나와 공정률 99%의 신한울 2호기로 이동했다. 2호기의 경우 2023년 9월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수원 관계자는 "신한울 1·2호기는 건설하는 10여 년 기간 동안 매일 약 3000명에 달하는 작업자가 현장에 출입했는데, 이는 모두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했다. 우리 기술에 대한 정보 보호를 위해서다. 우리나라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요즘의 일반 공사 현장과는 대조적이다.
신한울 2호기에서 가장 먼저 살펴본 것은 원자로냉각재펌프(RCP)다. 뜨거워진 원자로를 식히기 위해 냉각재를 순환시켜주는 설비다. 한 호기당 4대의 RCP를 갖추고 있다. 아직 신한울 2호기에는 연료가 들어가지 않는 상황이지만 운영허가를 받으면 즉시 연료를 장전해 시운전을 시작할 수 있도록 막바지 테스트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이어 살펴본 비상디젤발전기와 대체교류발전기는 발전소로 들어오는 외부의 전기 공급이 끊긴 비상 상황에 발전소로 전기를 공급해주는 설비들이다. 발전소에 전기가 끊기면 가장 먼저 외부 디젤 펌프가 연결된 비상디젤발전기가 자동으로 작동하고, 그마저도 동작이 안 되면 대체교류발전기가 투입된다. 이를 통해 격납건물 내부 압력이 올라가는 것을 제어해준다. 안전설비들을 다중화한 것이다.
마침내 원자력발전소의 심장인 원자로 내부로 들어가봤다. 현재 100% 출력 중인 신한울 1호기와 달리 2호기는 아직 핵연료가 장전되지 않아 방사능 관리구역으로 통제되는 격납건물 내부까지 진입할 수 있었다.
이 돔형 형태의 격납건물은 최대 지름 5.7cm의 철근으로 촘촘하게 엮은 후 콘크리트를 부어 두께 122cm의 외벽을 갖추고 있다. 이에 비해 후쿠시마 원전은 10cm 단일 철판구조였다. 신한울 1·2호기 건설에 철근만 무려 10만3000톤 소요됐다. 이는 63빌딩 철근 소요량의 약 13배에 달한다. 콘크리트는 레미콘트럭 약 12만대 분량이 들어갔다.
이를 통해 1.02g(중력가속도)의 내진 성능을 갖췄다. 내진 성능 0.3g이 리히터 규모 약 7.0의 지진에 대응할 수 있는 점을 참고하면 매우 안전한 수준으로 설계된 셈이다.
격납건물 한가운데에서는 운영허가가 떨어지면 핵연료를 장전할 원자로의 모습을 확인했다. 핵심 설비 중 하나인 원자로 냉각재 펌프(RCP·Reactor Coolant Pump)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원자로 냉각재 펌프는 신한울 원전에서 처음 국산화했다.
신기종 신한울1건설소장은 "원자로 원리는 난방용 보일러의 물이 순환되는 원리와 흡사하다"며 "보일러에서 가열된 물이 방을 돌며 따뜻하게 데우고 식은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보일러로 보내져 가열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원자로 내부의 물은 1·2차 계통으로 분리돼있다. 1차 계통의 물은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사이를 순환한다. 이 물은 원자로 안에서 가열되어 배관을 타고 증기발생기로 이동해 2차 계통에 열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식은 물은 펌프를 타고 원자로로 돌아와 재가열된 뒤 다시 증기발생기로 보내지는 패턴이 반복된다.
2차 계통의 물은 1차 계통이 전달해준 열을 통해 끓여져 증기가 되어 터빈을 돌리는데 사용된다. 신 소장은 "압력에 따라 물의 끓는 점이 달라지는 원리가 적용됐다"며 "1차 계통의 압력을 상대적으로 2차 계통보다 높였기 때문에 2차 계통의 물이 끓는 중에도 1차 계통의 물은 기화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수원 관계자는"신한울 2호기는 현재 운영허가를 위해 규제기관이 심사를 하는 중"이라며 "제 때에 운영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 안전성 인정받은 K원전 'APR1400'
신한울 1·2호기는 UAE에 수출한 원전과 같은 APR1400 노형으로, 100만kW급 기존 원전에 비해 40%나 더 많은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설계수명은 20년 향상된 60년이다. APR1400은 운영중인 새울 1·2호기(구 신고리 3·4호기) 외에도 새울 3·4호기가 건설 중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체코나 폴란드 등 해외 수출에 주력하고 있는 노형이기도 하다.
APR1400은 2019년 8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설계인증을 최종 취득하며 원전 안전성을 입증받았다. APR1400은 미국 이외의 나라에서 개발한 원전으로는 유일하게 NRC DC를 취득한 노형으로 기록됐다. 앞서 2017년 10월에는 EUR(유럽사업자요건) 인증까지도 취득해 세계 최고의 안전성을 인정 받았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기자들과 간담회에서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신한울 1·2호기는 해외 수출 주력 노형인 APR1400으로, 이들 원전을 잘 운영하고 건설하는 데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신한울 1호기가 국내에서는 전력 피크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고 해외로는 수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안전하게 운영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