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나→처브 대주주 변경
잉여금 풍부하지만 변수도
우리나라에 첫 외국계 보험사로 상륙한 라이나생명이 지금까지 국내에서 영업을 하며 해외 모회사로 송금한 금액이 1조3000억원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와중 라이나생명의 주인이 또 다른 글로벌 금융사로 바뀌면서 앞으로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라이나생명의 곳간에 쌓인 잉여금이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가운데, 조만간 결정될 올해 배당금 규모는 끊이지 않는 국부 유출 논란의 새로운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라이나생명이 현금 배당을 처음 시작한 2007회계연도부터 지난해까지 배당한 금액은 총 1조3502억원이다. 이 같은 배당금은 모두 올해 상반기까지 라이나생명의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던 미국 모기업 시그나그룹이 챙겼다.
라이나생명은 외국계로는 최초로 한국에 진출한 보험사다. 1984년 4월에 우리 정부의 허가를 받아 미국 라이나생명의 지점 형태로 국내 보험업계에 발을 디뎠고, 2004년 1월 법인으로 본격 전환하며 영업을 이어오고 있다.
라이나생명이 본사에 내준 배당금은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인 돈의 절반에 가깝다. 라이나생명을 둘러싸고 국부 유출 논란이 계속돼 온 이유다. 조사 대상 기간 라이나생명의 총 당기순이익인 2조8934억원 대비 현금 배당금 규모는 46.7%에 달했다. 특히 2018년에는 해당 연도 당기순이익 3701억원 중 94.6%에 달하는 3500억원을 배당하기도 했다.
라이나생명의 올해 배당에 벌써부터 관심이 쏠리는 건 최근 주인이 바뀌어서다. 시그나그룹은 지난해 10월 라이나생명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지역 보험산업 전체를 처브그룹에 매각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거래가는 6조9000억원으로 수준으로, 이중 대부분인 6조원 가량이 라이나생명의 가치로 알려졌다.
이어 올해 6월 금융당국은 라이나생명에 대한 대주주 변경안을 통과시키켰다. 이는 처브그룹이 대주주 변경을 신청한 데 따른 것으로, 라이나생명의 대주주는 기존 시그나그룹에서 처브그룹으로 변경됐다.
처브그룹은 미국의 기업보험 전문 회사로 전 세계 54개국에서 ▲재물보험 ▲특종보험 ▲개인상해보험 ▲건강보험 등을 판매하고 있다. 처브그룹은 라이나생명 인수로 에이스손해보험과 처브라이프생명과 함께 국내에만 3개의 보험사를 소유하게 됐다.
관건은 처브그룹이 이전과 같이 라이나생명에 고배당 정책을 유지하느냐다. 일단 재무 상태만 놓고 보면 여건은 나쁘지 않다. 라이나생명의 배당 여력이 그 어느 때보다 풍부하기 때문이다.
대주주가 처브그룹으로 공식 전환된 올해 상반기 말 기준 라이나생명의 미처분이익잉여금은 1조8231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나타냈다. 미처분이익잉여금은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 중 배당이나 다른 잉여금으로 처분되지 않고 남아있는 이익잉여금으로, 주주총회에서 처분 대상이 된다. 이를 포함한 전체 이익잉여금 역시 지난 9월 말 기준 1조9475억원으로 사상 최대다.
문제는 여론이다. 인수 첫해부터 거액의 배당금을 책정할 경우 라이나생명에 대한 국부 유출 잡음이 또 다시 불거질 공산이 크다.
금융당국의 눈치도 살펴야 한다. 금융당국은 지난해부터 금융사들에게 지나친 고배당을 자제하라고 압박 중이다. 금융시장의 불안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이익을 유출하지 말고 리스크에 대비하라는 차원이다. 아울러 옛 외환은행을 둘러싼 이른바 먹튀 사태를 두고 우리 정부와 론스타 간 국제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와중, 또 다른 국부유출 논란은 금융당국과 라이나생명에게 모두 부담거리일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재무 상태만 놓고 보면 라이나생명이 올해 역시 고배당을 의결해도 무방한 상황이지만, 금융당국의 스탠스 등 비재무적 환경이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