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美 장비 반입식에 바이든 대통령 비롯해 애플·엔비디아 CEO 축하행렬
오랜 기간 축적한 기술·고객 노하우로 파운드리 시장서 30년 넘게 장기집권
5년간 눈에 띄게 성장한 삼성 파운드리, 초격차 기술·고객사 다변화에 주력할 듯
대만 파운드리(foundry·반도체 위탁생산) 회사인 TSMC의 장비 반입식에 미국 정·재계가 총출동했다. 애플, 엔비디아, AMD 등 빅테크 최고경영자들이 이례적으로 한자리에 모여 두터운 동맹 관계를 과시한 것이다.
미 대형 고객사들의 축하 행렬은 오랜 기간 다져온 TSMC의 글로벌 위상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삼성전자가 TSMC 보다 앞선 기술 로드맵을 갖추고 있지만, 이를 실적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수율 개선, 현지 공장 확대 등을 먼저 해결해야 함을 일깨워주는 모습이기도 하다.
8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6일(현지시간) TSMC 장비 반입식이 열렸다. 애리조나 1공장에서는 2024년부터 4나노(1nm는 10억분의 1m)를, 2공장에서는 2026년부터 3나노 반도체칩을 생산할 예정이다. 총 투자액은 400억 달러(52조7000억원)에 달한다.
이 행사에서는 이례적으로 미국 정·재계 관계자가 총출동해 TSMC의 미국 현지 반도체 생산을 축하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팀쿡 애플 CEO, 산자이 메로트라 마이크론 CEO, 황런쉰(젠슨 황) 엔비디아 창업자 겸 CEO, 리사 수 AMD CEO 등이 자리해 눈길을 끌었다.
거물들의 TSMC 반입식 축하 행렬은 반도체가 미국 경제와 안보 측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지난 8월 대만을 방문했을 당시 류더인 TSMC 회장을 가장 먼저 찾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중의 반도체 '파워게임'이 갈수록 가열되는 상황에서 미국이 파운드리 강자인 대만과 동맹을 강화하는 것은 정치·안보 측면에서나 산업·경제 측면에서나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TSMC 역시 오랜 기간 축적해온 반도체 기술과 고객사 노하우를 통해 글로벌 위상을 다지고 있다. 특히 제품 적시 납기, 높은 수율, 고객 맞춤형 생산 등으로 애플, AMD, 엔비디아, 퀄컴 등의 고객을 장기간 사로잡고 있다는 진단이다.
실제 팀쿡 애플 CEO와 수 AMD CEO는 이날 미국 TSMC 애리조나 공장에서 생산된 반도체를 쓸 것이라며 최대 고객사가 될 것임을 분명히했다.
이같은 빅테크 기업들의 TSMC 쏠림 현상은 파운드리 2위인 삼성전자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2분기 기준 글로벌 파운드리 점유율은 TSMC 53.4%, 삼성전자 16.5%로 2배 이상의 격차를 보이고 있다.
이 격차를 좁히기 위해 삼성전자는 TSMC 보다 앞선 파운드리 로드맵을 공개하며 선진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앞서 삼성은 2019년 '시스템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며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1등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올해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3나노에 차세대 공정기술인 '게이트올어라운드(GAA)'를 도입하는 결실을 거뒀다. GAA는 전류의 흐름을 세밀하게 제어해, 보다 높은 전력 효율을 얻을 수 있는 기술이다. 기술력에서 더 앞서나가기 위해 2025년에는 2나노, 2027년에는 1.4나노 공정을 도입하겠다는 로드맵도 공개했다.
3나노 고지를 먼저 점령했지만 고객 확보전에서는 아직까지 열위에 있다. 3나노가 아직 초기단계여서 고객층이 많지 않은데다, 시장에서 주류를 차지하는 4, 5나노는 여전히 TSMC 선호가 높기 때문이다.
특히 빅테크들은 한 번 기술적으로 검증된 업체와 오랜 기간 계약을 이어가려는 심리 때문에 TSMC가 장기간 선호받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1987년 설립된 TSMC는 30년 이상의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현재 첨단 제품 메인 시장은 4나노"라면서 "TSMC가 4나노를 미국 현지에서 생산하게 되면서 애플, 퀄컴, 엔비디아 기업들이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수율(결함이 없는 합격품의 비율) 제고도 극복해야 할 숙제로 꼽힌다. TSMC는 지난 8월 '2022 세계반도체 대회'에서 3나노 공정 수율이 80%에 안착했다고 밝혔다. 자사 공정 수율을 밝히는 일은 드문 경우로, 삼성전자와의 경쟁 구도에서 자신감을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 삼성은 아직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파운드리 경쟁 관건은 수율 확보에 있다. 삼성이 파운드리 수율을 높이면서 주문대로 제품을 구현해 고객사를 만족시킨다면 점유율 격차는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랜 기간 축적한 해외 공장 운영 노하우도 삼성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파운드리 시장은 TSMC의 롱런이 예상되나 그렇다고 삼성에게 기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35년 역사의 TSMC와 달리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사업은 이제 출범 5년을 맞았다. 짧은 역사에도 점유율을 16% 이상 끌어올린 점을 감안하면 장기적으로 볼 때 반전을 노려볼 만 하다는 진단이다.
삼성이 선제적으로 시작한 3나노 공정은 내년부터 실적에 반영될 전망이다. 삼성은 GAA 트랜지스터를 적용한 3나노 공정을 HPC(고성능 컴퓨팅)용으로 양산한 데 이어 모바일 시스템온칩(SoC) 등 다양한 제품군으로도 확대할 계획이어서 추가 수주가 기대된다.
거래선 단일화 리스크의 틈새를 파고드는 것도 삼성전자가 취할 수 있는 전략 중 하나다. 주요 빅테크 업체들도 삼성전자와 손을 잡는 게 파운드리 협상력 및 공급 안정성 강화 차원에서 유리하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공급망 헤게모니 싸움으로 공급망 밸류체인(가치사슬) 확보가 중요해지면서 우호국과의 동맹 강화 필요성이 커지는 상황도 삼성전자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파운드리 시장은 공급자 우위 시장이어서 기술력이 충분히 확보된다면 수주 물량은 꾸준히 늘어날 수 밖에 없다"면서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민간기업으로서의 투자 뿐 아니라 세액공제 등 다양한 정부 정책 뒷받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