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만 빌딩 5천억원어치 정리
타 보험사도 자본 확충에 고민 커져
KB손해보험이 최근 한 해 동안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부동산 자산의 절반 이상을 정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부터 바뀌는 규제에 대비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유동성을 확보한 모습이다.
당시 금융권에서는 이 같은 행보에 대해 경계감을 표하기도 했지만, 최근 부동산 시장 한파가 이어지고 자금 조달 여건이 악화되면서 결과적으로 KB손보의 선견지명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1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생명·손해보험사 전체의 부동산 자산은 지난해 9월 말 17조393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5%(6245억원) 감소했다.
이는 KB손보가 5000억원 대에 달하는 부동산을 대거 매각한 영향이 컸다. KB손보의 부동산 자산은 4247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52.8%(4750억원) 감소했다.
KB손보는 서울 합정빌딩, 경기 구리·수원빌딩, 대구빌딩, 경북 구미빌딩 등을 판매하면서 전국 거점이 11곳에서 6곳으로 줄어들었다. 다만 매각 후 재임차를 통해서 건물은 계속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영업력에는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KB손보가 빌딩을 내놓은 것은 올해 도입된 신 지급여력제도(K-ICS)의 영향이 크다. 기존에는 부동산 자산 가격 변동을 6~9%로 추정했지만 K-ICS 하에서는 25%까지 상정한다. 이전보다 2~4배 가량 책임 준비금을 더 쌓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KB손보는 책임준비금을 줄이고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KB손보는 지난해 빌딩 매각을 통해서 자본건전성도 높이고 호실적을 기록하며 효과를 톡톡히 봤다.
부동산을 정리하던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이 같은 행보에 의구심이 있었지만, 최근 부동산 시장 한파가 이어지며 신의 한 수가 됐다는 평도 나온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금리 인상으로 부동산 시장에 한파가 찾아오며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리가 오르는 시기에는 부동산 매수 심리가 얼어붙기 때문에 가격이 떨어지는데, 발 빠른 매각으로 매각 실패나 자산 감소 등의 위험성에서 벗어난 셈이다.
게다가 레고랜드 사태나 풋옵션 미행사 등으로 인해 금융시장에 유동성 가뭄까지 이어지면서 결과적으로 미리 현금성 자산 확보에 노력을 기울여 온 KB손보의 결단이 빛나게 됐다.
이에 다른 보험사들도 부동산 자산 운용을 두고 걱정이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보험연구원은 '2023년 보험산업 경영환경과 과제' 보고서를 통해 올해 통화긴축과 자금시장 경색 우려는 올해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에 보험사들은 대손충당금 적립 확대, 자본확충 등을 통해 손실이 일시에 확대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책임준비금을 더 쌓으면서 부동산 자산을 유지할지, 낮은 가격에라도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할지 업계의 관심이 모인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부동산 자산이 가장 많은 곳은 삼성생명(3조8913억원)이다. 이어 한화생명(3조21억원), 교보생명(1조9772억원), DB손해보험(1조1687억원), 현대해상(1조1145억원)으로 나타났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올해 도입되는 새 국제회계기준과 K-ICS에 대한 대비는 각 사가 어느정도 마무리 해놨을 것"이라면서도 "올해 이어지는 경제 불황으로 인해 부동산 자산 매각에 대한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