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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처법 시행 1년…"예방효과 없고 법 집행 혼선만"


입력 2023.01.25 12:01 수정 2023.01.25 12:01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경총 '중처법 수사·기소 사건을 통해 본 문제점 및 개선방안' 보고서 발표

서울 대흥동 한국경영자총협회 회관 전경. ⓒ한국경영자총협회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시행 1년이 지났지만 중대재해 사고 예방 효과는 없고 법 집행 과정에서의 혼선만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25일 발표한 ‘중대재해처벌법 수사 및 기소 사건을 통해 본 법률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경총은 “중처법 시행 후 정부가 사고발생 기업에 대해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했으나, 현재까지는 법 위반 입건 및 기소 실적이 많지 않고, 법률의 불명확성으로 인해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과 달리 범죄혐의 입증에도 상당한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한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노동청·검찰)이 특정대상만을 경영책임자(피의자)로 인정하고 있고, 안전역량이 부족한 중소규모 이하 사업장은 여전히 법 준수 이행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중처법 위반으로 수사 및 기소된 사건을 통해 동 법률의 문제점을 다시 한번 심도있게 진단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어, 보고서를 발표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법률의 불명확성 등으로 인해 수사기관이 범죄혐의 입증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중처법 수사가 장기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2월 말 기준 수사기관(노동청·검찰)이 경영책임자를 중처법 위반으로 기소(11건)하는데 걸린 기간은 평균 237일(약 8개월)로 나타났다.


수사가 장기화 경향을 보이는 이유로는 ▲‘사업대표’와 ‘이에 준하는 자’로 규정된 경영책임자 특정의 어려움 ▲법률의 모호성·불명확성으로 인해 경영책임자의 관리책임 위반을 찾고 고의성 여부까지 입증하기 어려움 ▲방대한 수사범위 및 사건누적 ▲검찰의 수사지휘 증가 ▲노동청·경찰의 수사 경쟁 등이 지목됐다.


12월 말까지 중처법 위반 피의자로 입건(82건) 및 기소(11건)된 대상은 모두 대표이사로, 현재까지 노동청과 검찰은 CSO(최고안전보건책임자)를 선임한 기업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CSO를 경영책임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는 법률상 경영책임자 개념과 범위가 불명확한 상황에서 고용부와 검찰이 “대표이사에 준하는 최종 의사결정권을 가진 자만 경영책임자가 될 수 있다”고 해석해 나타나고 있는 현상으로, 수사기관이 형사처벌의 대상을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게 경총의 주장이다.


12월 말 기준 검찰이 기소한 11건 중 1건(중견기업)을 제외한 10건은 모두 중소기업 및 중소건설현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처법이 시행된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중소기업은 여전히 인적·재정적 여력이 부족해 법적 의무를 완벽히 준수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기업규모가 작을수록 사고발생 시 처벌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하청근로자 사망에 대해 원청의 경영책임자만 기소되고 과도한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지적됐다.


중처법 제정 시 기업규모를 고려하여 법 적용시기를 유예하면서 중대재해발생 사업장의 규모가 상시근로자 50인(50억원) 미만 하청기업인 경우, 법 위반 여부에 따라 원청의 경영책임자만 형사처벌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 법률규정과 고용부·검찰 해설서 내용만으로는 원청의 책임범위가 지나치게 불명확해, 누가, 어느수준(범위)까지 의무를 이행해야 처벌을 면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임에도 수사기관은 원청의 경영책임자에게만 중처법 위반책임을 묻고 있다.


검찰 내부 및 법무부 연구용역 결과에서도 중처법 위헌논란이 일고 있어, 향후 법원판단도 예측불가능한 상황이다.


중처법 사건 재판 중 위헌법률심판제청이 접수됐고, 검찰 내부 및 법무부 연구결과에서 위헌성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으로, 관련 판결도 없다 보니 사건을 담당한 법원 판사들도 법리적 판단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유사한 사건에 대해 상이한 판결이 나올 경우 법 시행에 따른 혼란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의 기소 사례만 봤을 때, 중처법 위반과 사고와의 인과관계 근거가 부족해 보인다는 점도 문제다.


범죄혐의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경영책임자의 안전 및 보건확보 의무위반 외에 위반의 고의성, 중대재해 발생과의 상당인과관계 등이 구체적으로 증명돼야 한다.


현재까지 검찰이 기소한 사건들의 범죄사실 요지를 보면 법 위반(범죄성립) 혐의를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고 위법 조항만을 나열하고 있어, 범죄성립 여부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노동청의 수사역량 부족으로 피의자 권리를 침해하거나, 과도한 자료제출을 요구하는 등 강압적인 수사행태 사례도 발생했다.


경총은 이같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처법 시행에 따른 현장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중대재해 예방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법률 개정(보완입법)을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본적으로는 중처법(중대산업재해 규정에 한함)을 산업안전보건법과 일원화시켜야 하며, 이를 실현하기 어렵다면 기업인들에게 가장 부담을 주는 형사처벌 규정의 삭제를 최우선적으로 검토·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논란이 되는 중처법 이행주체 및 의무내용(원청의 책임범위 포함)을 명확히 하고 내년부터 법이 적용되는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 대해서는 법 적용 시기를 추가로 유예해 사업장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적극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별도로 사업장의 법 준수 이행을 적극 지원하기 위해 중소기업에 대한 재정 및 기술 지원 등을 규정한 ‘(가칭)산업안전보건 기반조성 및 산업육성과 지원에 관한 법률’의 제정을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임우택 경총 안전보건본부장은 “현재까지의 중처법 수사 및 기소사건을 보면 법을 집행하는 정부당국에서도 법 적용 및 범죄혐의 입증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법 제정 당시 경영계가 끊임없이 문제 제기했던 법률의 모호성과 형사처벌의 과도성에 따른 부작용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중처법 시행 1년이 되었음에도 산업현장의 사망재해가 줄지 않고 있는 것은 형벌만능주의 입법의 폐단으로, 중대재해를 효과적으로 감소시키고, 법 적용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중처법을 하루빨리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처벌만 강조하는 법률체계로는 산재예방이라는 근본적 목적 달성에 한계가 있는 만큼, 산업현장의 안전역량을 지속적으로 육성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지원법 제정을 정부가 적극 검토·추진할 때”라고 덧붙였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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