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와 뭘했는지, 하늘 아래 부끄러울 게 없는지 李 본인이 잘 알 것
실체적 진실 맘껏 다투되, 기싸움으로 민생 볼모 잡는 일만은 없기를
중국 후한 때의 청백리이자 삼국연의의 등장 인물 양수(楊修)의 증조부인 양진(楊震)이 동래태수로 발령나 임지로 가던 중에 창읍에 머무르게 됐다. 창읍현령 왕밀이 밤중에 몰래 찾아와 황금 10근을 건넸다. 양진이 손사래를 치자 왕밀은 "지금은 한밤중이니 아무도 알 수 없다"고 권했다. 양진은 "하늘이 알고 신이 알고 자네가 알고 내가 아는데, 어찌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하겠느냐"며 물리쳤다. 후한서에 전해지는 이야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위례·대장동 개발 의혹'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했다. '성남FC 후원금 의혹'으로 지난 10일 검찰에 출석한지 불과 18일만의 일이다.
한밤중에 찾아와 금을 건네고 받던 시대보다 세상이 훨씬 복잡해졌다. 한쪽에서 성남FC 후원금은 시장이 시민을 위해 한 일이며 그 이익도 시민에게 돌아갔다고 주장하면, 다른쪽에서는 '제3자 뇌물죄'는 그런 것과 관계없이 성립한다고 반박한다.
위례·대장동 개발 의혹도 주역 64궤에서 이름을 딴 화천대유와 천화동인이 등장하고, 이들 회사의 실소유주가 누구인지 수많은 관계자들이 녹취를 거론해가며 엇갈리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주역을 묶은 가죽끈이 세 차례나 닳아 떨어질 때까지 읽었다는 공자도 화천대유와 천화동인이 이런 복잡한 비리 의혹에 등장하는 세상이 오리라고는 살아 생전에 상상치도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복잡해져도 변하지 않는 이치는 있다. "하늘이 알고 신이 알고 자네가 알고 내가 안다"는 말처럼 이재명 대표 본인만은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 그 행동이 하늘 아래 한 점 부끄러울 게 없는지 이 대표 본인은 알 것이다.
이 대표가 검찰에 출석했던 28일은 토요일인데도 서초동에 수만 명이 몰려나와 종일 북새통을 이뤘다. 이 대표는 "혼자 가겠다"고 했는데도 민주당 의원들도 현장에 나왔다. "야단 맞을 각오를 하고 나왔다"고 한다.
'성남FC 의혹'을 조사받았을 때 조사받으면서 했던 말이 이튿날 조간신문에 보도된 게 그렇게 불쾌했던지, 이번에는 조사받는 날을 이튿날 신문이 나오지 않는 토요일로 이 대표가 직접 지정까지 했다. 말을 하지 않으려고 사전에 서면진술서도 공개했다.
그런 것들은 실체적 진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조작검찰 박살내자"며 수만 명이 목소리를 높인들 이 대표가 했던 행위가 사라지는 게 아니며, 반면 "대장동 수괴 잡아넣으라"며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어댄들 이 대표가 하지 않았던 행위가 새삼 생기는 것도 아니다.
검찰이 이튿날 조간신문에 진술 내용을 흘리는 것이 성남시장 시절에 있었던 일에 영향을 미칠 수도 없고, 반대로 전북에 내려가 지지자들에게 "엄지손가락을 움직여 세상을 바꿔달라"고 하는 것도 이미 저질러진 일을 바꿔놓을 수도 없다.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취하든 이 대표 본인은 자신이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 그것이 죄가 되는지 여부를 알고 있을 것이다.
이재명 대표는 이미 기소되는 것은 각오했다고 한다. 이 대표도 형사피의자로서 당연히 누려야할 '무죄추정의 원칙'을 누릴 자격이 있다. 기소가 되면 법정에 나아가 실체적 진실을 다투고 결백하다면 이를 증명하면 된다. '하늘이 알고 신이 알고 김만배·남욱·김용·정진상·유동규가 알고 이 대표가 아는' 내용들이 법정에서 유무죄가 가려질 것이다.
실체적 진실을 다투는 것은 기소도 각오했으니만큼 법정에서의 몫으로 넘기고, 제1야당 대표의 신분을 이용한 정치권에서의 기싸움은 이제 그만뒀으면 한다. 검찰독재대책위원회를 윤석열검사독재정권대책본부로 확대 개편한다고 한다. 서울에서 국민보고회를 열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탄핵해 직무정지를 시키며, 양곡관리법을 본회의 강행 통과시켜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게끔 몰아붙인다고 한다.
부질없는 기싸움이 벌어진다고 해서 이미 성남시장 시절에 행해졌던 일들의 성격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실체적 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실체적 진실을 밝혀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겠다는 이재명 대표의 싸움이 민생을 볼모로 하는 인질극으로 돌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 국민이 비단 하나둘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