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부진에 8조 몸값 4조로 '뚝'
순익 700억…성장성 전망 밝아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가 얼어붙은 자본시장 여건을 고려해 결국 상장을 연기했다. 너무 멀지 않은 시점에서 제값을 받을 수 있는 적기에 상장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시장 안팎에서는 최근 증시 부진으로 몸값이 최고점 대비 반토막 난 것을 감안하면 일단 상장을 미루는 게 장기적으로 현명한 선택이라는 평이 나온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케이뱅크는 지난 2일 "대내외 환경으로 인한 투자 심리 위축 등 상황을 고려해 상장을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며 "대내외 시장 상황을 고려해 기업공개(IPO)를 지속 준비, 적기에 재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케이뱅크는 지난해 9월 20일 유가증권시장 상장 예비심사를 통과한 뒤 상장 준비를 해왔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증시 부진으로 IPO 시장이 얼어붙으며 제대로 기업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워지자 추진을 중단한 것으로 보인다.
시장 안팎에서는 상장을 무리하게 추진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다.
우선 미국과 한은 기준금리 추이를 봤을 때 당분간 금리는 정점 상태가 지속, 이에 따라 은행채 등 우량 자산으로 자금이 쏠리면서 자본시장의 유동성은 비교적 부족한 상태가 이어질 공산이 크다. 자본시장 유동성이 회복되지 않을 상황에서 무리한 상장은 기대했던 자금 조달 규모에 미치지 못한 수밖에 없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1일 올해 첫 공개시장위원회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4.50~4.75%로 0.25%p 인상했다. 2007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물가 상승세가 둔화되면서 금리 인상폭을 다소 낮추긴 했지만, 인상 기조 자체는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국은행은 인상 속도에 대한 부담을 다소 덜게됐지만 벌어진 한-미 간 금리 차를 고려하면 이달 열릴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 인상 카드를 쉽사리 버릴 수는 없는 상황이다. 한-미간 금리차는 최대 1.25%포인트(p)로, 역대 최대 금리 역전 차이는 1.50%p였다.
특히 저금리로 인해 여유자금이 증시로 쏠렸던 2021년과 달리, 지난해와 올해는 고금리 시대가 열리면서 코스피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조정되는 등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코스피 지수는 2021년말 3068.82에서 지난해 말 2155.49로 913.33포인트나 하락했다. 3일 기준 코스피 지수는 2464.25으로 지난해 말에 비해 회복되긴 했지만 정점과 비교하면 아직 유동성이 부족한 상태다.
이런 자금 조달 시장의 여건 등 때문에 몸값이 뚝 떨어진 점도 상장 연기에 주효했다.
상장 추진 초기 8조원까지 언급됐던 케이뱅크의 몸값은 현재 시장에서 4조원 아래로 떨어졌다. 장외거래시장인 38커뮤니케이션에 따르면 케이뱅크의 주가는 3일 기준 1만750원으로, 최고점이었던 2만2350원에 비해 반토막났다. 이날 시가총액은 4조387억원이다. 증시가 살아나는 시기에 맞춰 상장을 추진하면 지금보다는 더 괜찮은 몸값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드디어 연간 순익 적자에서 벗어나 이제 막 실적을 불려나가고 있는 만큼, 향후 몸값을 더 키울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 깔려 있단 해석이 나온다.
케이뱅크의 지난해 3분기 말 누적 당기순이익은 71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50% 증가했다. 수신 잔액은 13조4900억원으로, 여신 잔액은 9조7800억원으로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케이뱅크의 고객 수도 801만명으로 인터넷은행 중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케이뱅크 관계자는 "현재 보이고 있는 성장성과 수익성, 혁신역량을 적기에 인정받기 위해 시장 상황 변화에 따라 언제든 신속한 상장이 가능하도록 IPO를 준비할 예정"이라며 "인터넷은행의 설립 취지에 맞게 포용 금융과 혁신 금융을 실천하고 있고, IPO를 통해 이 같은 노력을 더욱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