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로 TSMC에 도전장
수율·패키징·디자인하우스 업그레이드 전제돼야
TSMC, 아이폰 업고 최강자 발돋움…AI·車 반도체 기회 찾아야
삼성전자가 300조원을 투자해 메모리뿐 아니라 팹리스(반도체 설계)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를 아우르는 명실상부 반도체 최강자로 발돋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번 투자는 선생산-후주문 방식의 '쉘퍼스트' 전략으로 TSMC와의 점유율 격차를 좁히는 데 초점을 뒀다. 전문가들은 생산능력 확대도 중요하지만 수율 제고, 패키징(후공정) 기술 고도화 등 고질적인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아이폰에 버금가는 차세대 시장 발굴에 선제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을 위해 20년간 30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존 기흥·화성·평택에 이어 용인 클러스터 조성으로 메모리 분야 초격차는 확대하고 파운드리 분야에는 일류화 기반을 다지겠다는 전략이다.
용인 클러스터에 파운드리 공장이 건설되면 그간 TSMC에 크게 벌어진 파운드리 격차를 크게 좁힐 것으로 삼성은 기대하고 있다. 삼성은 지난해 6월 세계 최초로 차세대 트랜지스터인 GAA 구조를 적용한 3나노 양산을 시작한 바 있다.
이 같은 기술 우위를 갖췄음에도 삼성은 CAPA(생산능력) 부족에 따른 '물리적 한계'로 TSMC를 추격하는 데 애를 먹었다. CAPA를 추가로 확보하게 되면 반도체 질과 양 모두 확보하게 되면서 추격 고삐를 바짝 쥘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삼성의 '통 큰 투자'는 미·중 패권 다툼 속 초격차 기술로 한국 제조업의 위상을 공고히하겠다는 측면에서 큰 기대를 받고 있다. 삼성 뿐 아니라글로벌 소재·부품·장비업체들의 국내 투자로 세계적 수준의 반도체 공급망 구축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평가다.
삼성의 300조 초격차 전략…수율 제고·디자인하우스·패키징도 성과내야
다만 삼성의 이같은 미래 전략이 통하려면 고질적 문제로 꼽히는 수율 제고 뿐 아니라 경쟁사 TSMC 성장의 원동력이었던 애플 등 막강한 수요처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3나노에 차세대 공정기술인 '게이트올어라운드(GAA)'를 도입하는 결실을 거뒀다. GAA는 전류의 흐름을 세밀하게 제어해, 보다 높은 전력 효율을 얻을 수 있는 기술이다. 기술력에서 더 앞서나가기 위해 2025년에는 2나노, 2027년에는 1.4나노 공정을 도입하겠다는 로드맵도 공개했다.
3나노 고지를 먼저 점령했지만 고객 확보전에서는 아직까지 열위에 있다. 3나노가 아직 초기단계여서 고객층이 많지 않은데다, 시장에서 주류를 차지하는 4, 5나노는 여전히 TSMC 선호가 높기 때문이다.
특히 빅테크들은 한 번 기술적으로 검증된 업체와 오랜 기간 계약을 이어가려는 심리 때문에 TSMC가 장기간 선호받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1987년 설립된 TSMC는 30년 이상의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수율(결함이 없는 합격품의 비율) 제고도 극복해야 할 숙제로 꼽힌다. TSMC는 지난 8월 '2022 세계반도체 대회'에서 3나노 공정 수율이 80%에 안착했다고 밝혔다. 자사 공정 수율을 밝히는 일은 드문 경우로, 삼성전자와의 경쟁 구도에서 자신감을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 삼성은 아직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디자인하우스(반도체 설계 후공정업체)·패키징 기술 고도화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팹리스가 칩의 핵심 기능을 설계한다면 디자인하우스는 이를 받아 파운드리가 제품을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도록 기술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쉽게 말해 디자이너의 드로잉(팹리스) 이후 재봉소(파운드리)에 들어가기 전 옷 제작을 위한 과정을 담당한다.
메모리 반도체가 산업 전반에 적용될 수 있도록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를 갖춘 것과 달리, 파운드리는 주문자 특성에 맞는 '다품종 소량생산'을 지향한다. 파운드리 시장이 커질수록 구매자 입맛에 맞는 디자인하우스 역량이 중요하다. TSMC가 200여개의 디자인하우스를 보유해 제품 완성도를 높이는 것과 달리 삼성은 디자인 솔루션 파트너(DSP)로 9개사와 협력하는 정도여서 갈 길이 멀다.
반도체가 훼손되지 않도록 포장하는 패키징 기술 제고도 삼성의 숙제다. 패키징 기술을 고도화할수록 반도체 효율이 늘어나기 때문에 삼성 뿐 아니라 TSMC, 인텔 등이 수 조원대를 들여 패키지 설비를 확대하고 있다. 이중 TSMC 기술은 경쟁사와 비교해 패키지 두께가 더 얇고 전력손실이 적다는 평가를 받는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파운드리의 기술은 삼성과 TSMC 간 차이가 없거나 삼성이 조금 앞선다고 나오지만 수율이나 제조사 신뢰, 파운드리 전·후공정 서비스에서는 삼성이 뒤쳐져 있다"면서 "이번 용인 반도체특구 조성을 계기로 우리 반도체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TSMC, 아이폰 등에 업고 글로벌 최강자 발돋움…삼성의 차세대 수요처는?
TSMC는 선제적인 기술 투자와 오랜 업력을 바탕으로 2022년 4분기 기준 58.5%의 글로벌 점유율을 보유한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30여년 업력에서 TSMC의 폭발적인 성장은 2007년 아이폰 출시 이후부터임을 알 수 있다. 차세대 스마트폰 개화가 TSMC의 성장을 가속화한 것이다.
가트너,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TSMC의 매출 및 영업이익률 성장은 2008년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는 2007년 아이폰 1세대 출시와 맞물린 시기로 스마트폰 시장과 성장을 함께 해왔음을 알 수 있다.
실제 TSMC의 수요처별 매출 비중을 보면 2008년 41.5%였던 이동통신 비중은 애플의 아이폰 공급에 힘입어 2017년 60.3%로 올라선다. 매출의 60%를 스마트폰이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아이폰 최신 사양에 맞춰 TSMC는 선단 기술을 개발해왔고 이는 돈독한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는 핵심 요인으로 자리매김했다.
TSMC가 파운드리 기술과 아이폰 수요에 힘입어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뤄낸 것처럼 삼성, SK도 이 같은 차세대 시장을 전략적으로 겨냥해 맞춤 기술을 발굴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아이폰 처럼 막대한 성장이 예상되는 주요 시장은 인공지능(AI), 서버용 반도체, 차량용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등이 거론된다. 이미 챗GPT를 통해 생성형 AI 수요가 확인되고 있으며, 자율주행차 등 미래 자동차 기술 구현을 위해 AP, GPU(그래픽처리장치), 인포테인먼트 기술 등이 관심을 받고 있다. 차세대 반도체는 메모리·시스템 반도체 부문에서 공통적으로 기회가 될 수 있다.
경희권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삼성, SK는 글로벌 수요가 뒷받침되는 핵심 제품을 생산해야 TSMC를 따라잡는 것이 가능하다"면서 "여러 유망 시장에 전략적으로 접근하며 품질을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