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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이 부장! 시계는 뺍시다. 쪽팔리잖아”


입력 2023.03.19 07:07 수정 2023.03.20 06:44        데스크 (desk@dailian.co.kr)

‘14년 전의 윤석열’, 이인규가 벗기는 ‘노무현 신화’

뇌물-진보 언론-문재인이 盧 죽여

논두렁 시계, 구속 대신 도덕성 타격

“무능한 문재인, 주검 위에 대통령 됐다”

18일 서울 시내 대형 서점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지휘했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출신 이인규 변호사의 회고록이 진열돼 있다.ⓒ 뉴시스

“이인규 중수부장이 대통령을 맞이하고 차를 한 잔 내놓았다. 그는 대단히 건방졌다. 말투는 공손했지만 태도엔 오만함과 거만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 (문재인, <문재인의 운명>, 2011년)


“스스로 정치적 사망 선고를 내린 분에게 ‘항장불살(降將不殺)’의 예의를 지켜주기는커녕 ‘조리돌림’ 식의 수사를 진행하고 조직 내 ‘빨대’를 통해 피의(被疑) 사실을 유포, 결국 극단의 선택을 하도록 몰고 갔다.” (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 2011년)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대한민국 검찰에는 윤석열 같은 검사가 한 명 있었다. 이명박 정부 초기 대검 중수부장 이인규(65, 변호사)다.


‘박연차 게이트’ 수사 책임자인 그가 노무현의 죽음 전후를 역사 앞에 기록하고자 한 회고록을 내놓았다.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532페이지, 조갑제닷컴).


이 책은 자살 후 신화가 되고 영웅이 된 노무현의 거품, 그 ‘가면’을 벗기는 증언이 될 것이다. 동시에, 검사 출신 보수우파 대통령이 출현하자 기회주의적으로 노무현과 문재인 폄하에 나선 정치 검사의 기지개라는 악평도 받게 될 것이다.


판단은 독자들 몫이다. 이인규의 회고록은 당시 수사 기록과 기억, 수사 책임자로서의 의견이 주 내용이다. 결코 의미가 작지 않은 역사적 자료가 포함돼 있다. 이 사실이 매우 큰 가치를 지닌다.


회고록이 발행된 2023년 3월은 노무현에 대한 공소시효가 모두 만료된 지 한 달 후 시점이다. 그리고 SBS가 그를 명예훼손 혐의(“논두렁 시계 보도 배후에 SBS(당시 사장 하금열)와 국정원(당시 원장 원세훈)의 사적 인연이 있다”라는 이인규의 주장)로 고소한 사건이 서울 중앙지검에 의해 무혐의 처분이 난 지 5개월이 지난 뒤다.


이인규는 이 두 가지 법적 올가미가 풀리길 기다렸다가 ‘진실’을 세상에 공개했다. 그는 노무현 수사, 자살과 관련해 세간에 널리 회자된 ‘논두렁 시계’라는 말은 검찰 기록에 없고, 조사 당시 노무현으로부터 “밖에” 버렸다는 진술을 들었을 뿐이라고 했다.


‘논두렁 시계’는 이명박 정부 국정원이 노무현을 구속할 경우 역풍이 불 것을 우려, “도덕성에 타격만 줄” 용도로 창작해 낸 말이라고 이인규는 믿고 있다. 노무현 부부는 박연차(밀양 출신 태광실업 회장, 2020년 74세로 작고)로부터 스위스 명품 시계 피아제(당시 시가 1억원 이상)를 1개씩 2개 받은 사실이 검찰 수사 결과 확인됐다.


한때 봉하마을 일대 논에 시계 찾으러 가자는 말들이 나왔었다. 민주당과 노무현 추모, 숭배자들은 ‘논두렁 시계’를 검찰의 조작, 정치 보복 수사 상징 용어로 지난 14년 동안 활용해 왔다.


마치 그 시계 뇌물 자체가 없었다는 식으로 어느새 변했다. 이인규 회고록에 따르면 노무현은 아들의 사업 자금과 미국 주택 구입 비용 640만 달러(한화 약 80억원), 그리고 이 시계 받은 사실을 검찰에서 ‘`확인 당해’ 몹시 자책을 하고 있던 상태였다.


그는 검찰의 물적 증거 확보로 자신의 거짓말이 드러나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졌다”라고 실토했다. 건강도 책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나빠졌고,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던 와중에 우군이었던 한겨레, 경향신문 등 진보좌파 언론이 그를 가혹하게 비판, 사면초가가 됐다.


지난 2007년 2월7일 2단계 균형발전정책 대국민 보고회 참석에 앞서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재단

한 신문은 당시 이런 말까지 그의 면전에 던졌다.


“노무현 당신 패밀리가 한 일로 민주화 세력이 재기 불가능의 상처를 받았으니, ‘알았느니 몰랐느니’ 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사라지라.”


주위 가까운 사람들 모두 등을 돌리고, 믿었던 친구이자 동지인 문재인 변호사마저 곁에 없었다. “이것이 노 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라고 생각한다”라고 이인규는 썼다. 검찰 수사의 칼날-진보 언론의 돌변-문재인의 외면이 그를 죽음의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는 것이다.


이인규는 문재인에 대해선 독설을 참지 않았다.


“수사 내용을 파악하지도 않았고, 유리한 사실을 주장하고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의견서 한 장 제출한 적이 없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변호사였다. 그는 노(盧) 자살 직후엔 검찰에 호의적으로 말하다 정치를 결심하면서 돌연 검찰을 공격한, 노무현의 주검 위에 제단을 쌓아 대통령이 된 사람이다.”

노무현은 특히 시계 뇌물이 세상에 알려지는 걸 바라지 않았다.


(노무현, 중수부장실에서 이인규가 영접할 때) “이(인규) 부장! 시계는 뺍시다. 쪽팔리잖아.”


(노무현, 우병우 중수1과장에게 미국 주택 구입 사실 부인하며) “검사님! 저나 저의 가족이 미국에 집을 사면 조중동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박연차가 검사실에서 노무현에게) “대통령님! 우짤라고 이러십니까?”


(노무현이 박연차에게) “저도 감옥 가게 생겼어요. 감옥 가면 통방(通房)합시다.”


2009년 4월 30일의 盧 신문 과정은 CCTV로 녹화되어 영구 보존 중이다. 그리고 이 영상은 다음과 같은 말과 함께 수사 기록에 첨부돼 있다.


“피의 사실은 인정되나 피의자 사망으로 공소권 없음. 수사 기록 영구 보존.”


이인규 회고록으로 무능과 배신이 해부된 문재인의 복심 윤건영은 이 기록을 무시하고 주군 옹위에 나섰다.


“노 전 대통령을 두 번 죽이는 정치 검사의 일방적 주장, 억울한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이 검사 정권의 뒷배를 믿고 날뛰는 행동이다.”

노무현이 가족 비리라면, 이재명은 지방 권력을 사유화해 농단한 지역 토착 비리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가만히 있으면 이재명이 아니다.


“‘검사 왕국’이 되자 부정한 정치 검사가 낯부끄러운 줄 모르고 고개를 내민다. 우리는 허망하게 노 전 대통령님을 보내야 했던 논두렁 시계 공작 사건을 똑똑히 기억한다. 정치 보복과 망신 주기에 몰두한 수사 책임자가 고인의 명예를 또 한 번 짓밟았다.”

이인규 회고록의 마지막 장 에필로그 제목은 ‘사실보다 위대한 진실은 없다’이다. 노무현 재평가의 프롤로그가 쓰여졌다.

글/ 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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