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갑자기 노선 바뀌어" 장경태
"예타 통과 후 종점 변경은 '신의 손'"
실제론 99년 이후 14차례 선례 있어
사업비·정체해소 효과로 쟁점 이동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의혹과 건설 백지화 선언을 둘러싸고 정부·여당과 야당 사이의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누가 고속도로 노선 변경을 요청했는지, 노선 변경은 그토록 이례적인 일인지, 노선 변경에 따라 김건희 여사 일가 보유 부동산에 실제 이득이 돌아가는지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놓고서도 양측의 주장은 평행선을 그리고 있어 논란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8일 정치권에 따르면 예비타당성조사까지 통과한 서울양평고속도로의 노선이 바뀌는 게 그토록 이례적인지, 또 이례적이지 않더라도 과연 타당한 이유가 있어서 바꿨는지가 여론의 추이를 가늠하는데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의혹은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이 변경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종점으로 설정된 양평군 강상면 병산리 일대에 윤석열 대통령의 처가이자 영부인 김건희 여사의 일가 소유 부동산이 많다는데서 촉발됐다. 실제로 윤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 씨가 설립해 김 여사 친오빠 김모 씨가 운영 중인 부동산 개발회사 ESI&D 등 김 여사 일가는 강상면 병산리와 양평읍 양근리·공흥리·백안리 일대에 1만여 평의 부동산을 보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지난 2021년 4월 양평군 양서면을 종점으로 설정한 채 기획재정부의 예타를 통과한 원안이, 윤석열정부로 교체된 뒤 지난 5월 발표된 변경안에서 양평군 강상면으로 종점이 변경되는 과정 자체가 극히 이례적이라는 취지로 공격을 전개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전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두물머리 일대의 교통체증 해결을 위해 2017년부터 시작된 서울양평고속도로 사업은 줄곧 양서면이 종점"이었다며 "주민공청회 한 번 없다가 올해 5월 갑자기 강상면으로 노선이 바뀌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장경태 최고위원도 같은 자리에서 "2016년 제1차 고속도로 5개년 계획부터 기재부 예타까지 통과 완료했는데, 환경영향평가 중에 종점이 바뀌는 '신의 손'을 보여줬다"며 "'신의 손'은 웬만한 것으로는 덮기 어려운 거대한 힘이 작용했음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노선 변경 자체를 문제삼는 이와 같은 의혹 제기는 지난 1999년 예타 제도가 도입된 이래, 예타를 통과한 뒤 고속도로 노선이 수정·변경된 사례가 24건 중 14건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사그라지는 모양새다.
앞서 데일리안의 단독 보도에 따르면 1999년 이후 △목포~광양 △부산외곽순환 △충주~제천 △광주~완도 △함양~울산△상주~영덕 △포항~영덕 △파주~양주 △양평~이천 △새만금~전주 △성서~지천 △세종~청주 △부산신항~김해 △계양~강화 노선 등이 예타를 통과하거나 면제받고서도, 이후 기점·종점 등 노선이 변경됐다. 지자체 및 지역주민 요구사항 등이 많았기 때문이다.
백원국 국토부 2차관은 "예타 이후에도 제반 여건, 경제성, 교통 수요 분석을 정밀하게 하는 과정에서 더 좋은 안이 생기면 노선을 수정·변경하게 된다"며 "내가 알기로는 함양~울산 고속도로, 세종~청주 고속도로, 목포~광양 고속도로 등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의원들도 실제 사례 앞에 마지못해 시인하는 분위기다. 김두관 민주당 의원은 "함양~울산간 고속도로가 (예타 통과 이후) 시작점과 종점이 변경됐다"며 "종점인 울산에서는 굉장히 교통이 혼잡하기 때문에 옮겨달라 했고, 출발점이 변경된 것은 함양·거창·산청군이 협의를 해서 그렇게 됐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천억 더 드는데…'두물머리'
양서면 종점 아니면 교통정체 못 푼다"
국민의힘 "변경안이 교통량 6천대↑
…인근 도로 교통량도 2천대 더 흡수"
이에 민주당은 원안에 비해 변경안이 애초 목적이었던 교통정체 해소 효과는 미진한 반면 사업비는 더 든다며 '변경 이유'를 문제삼고 있다. 실제로 돈을 더 들이면서 교통정체 해소 효과도 미진한 변경안을 밀어붙여 종점을 강상면 병산리 일대로 굳이 바꾼 것이라면 '권력형 의혹' 논란이 구체화될 수도 있다.
고민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변경된 노선이 하나라도 장점이 더 많아야 사람들이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수긍이 될텐데, 노선 변경으로 인해 오히려 예산이 더 많이 들어간다"며 "그 지역이 두물머리가 있는 관광지여서 교통체증이 굉장해 이것을 풀어주기 위해 양서면을 종점으로 했던 것인데, 강상면으로 옮기게 되면 교통정체도 풀 수 없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찬대 최고위원은 "예비타당성조사를 거쳐 1조7695억 원의 사업비가 편성된 고속도로 계획이 하루 아침에 대통령 처가 땅 근처로 방향을 틀었다"며 "고속도로 총연장이 2㎞ 늘어나고 공사비가 1000억 원 가까이 늘었다"고 거들었다.
서영교 최고위원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 두물머리를 많은 사람들이 아주 좋아하는 공간이라 교통정체가 심해지니까 해결하기 위해서 고속도로를 놓기로 한 것"이라며 "노선 자체가 양서면이 아니라 강상면으로 바뀐 것은 그렇게 하면 돈도 엄청나게 더 드는데 황당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가세했다.
일단 변경에 따라 사업비가 더 드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 5월 공개된 서울양평고속도로 변경안은 원안에 비해 고속도로 총연장이 2㎞ 길어지고 총 사업비가 약 1000억 원 증액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증액된 1000억 원 중 종점 변경에 따른 증액 부분은 140억 원에 불과하다는 게 국토교통부의 해명이다. 사업비가 가장 많이 늘어난 부분은 오히려 기점인 경기도 하남시 관련으로, 하남시 감일동 일대를 지하화하고 교산신도시를 우회시키는 과정에서 820억 증액 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설령 민주당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변경안으로 인해 1000억 원이 증가했더라도 2조 원에 가까운 총사업비에 비하면 큰 액수의 증액이라고는 볼 수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앞서 본지의 단독 보도에 따르더라도 예타 이후 노선 변경 과정에서 거의 대부분 예외없이 사업비가 증액됐다.
민주당 '텃밭'에서 진행된 새만금~전주 고속도로 사례를 보면, 이 구간의 예타 노선은 2010년 통과됐지만 2012년 노선이 변경됐다. 사업비는 1조8424억원에서 2조2941억원으로 4500억 원 이상 증가했다. 변경 사유는 지역주민 요구사항에 따른 서김제IC 추가설치였다. 이외에 부산신항~김해 고속도로가 예타 통과 이후 변경 과정에서 389억 원, 계양~강화 고속도로가 종점 변경 과정에서 1772억 원 사업비 증액이 있었다.
결국 사업비 증액보다도 변경안이 원안에 비해 교통체증 해소 효과가 뛰어나느냐, 사업의 목적을 제대로 달성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한국도로공사에서는 양평군 양서면을 종점으로 하는 원안은 일일 1만5834대, 양평군 강상면을 종점으로 하는 변경안은 일일 2만2357대가 이용할 것으로 교통량을 예측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여당 간사를 맡고 있는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은 "대안 노선은 당초 노선 대비 일일 교통량이 약 6000대 증가하고, 6번 국도와 88번 지방도로 등 인근 도로의 교통량을 하루 평균 약 2100대 더 흡수해 교통정체 해소에 효과가 더 크다"며 "대안 노선(변경안)이 (원안보다) 비용 대비 사업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