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파랭킹 2위' 독일 상대로 접전 끝에 1-1 무승부
무기력했던 앞선 2경기로 실망한 팬들 다시 불러모아
16강 진출 기적 없었지만 꺾였던 기대 다시 세워
지소연·조소현·이금민 등 해외 경험이 풍부한 ‘황금세대’들이 버틴 대한민국 여자축구대표팀은 이번 월드컵에서도 조별리그 최하위 탈락이라는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콜린 벨 감독이 지휘한 한국(피파랭킹 17위)은 3일(한국시각) 호주 브리즈번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2023 호주·뉴질랜드 FIFA 여자 월드컵’ H조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피파랭킹 2위’ 독일을 상대로 1-1 무승부를 거뒀다.
1무2패에 그친 한국은 H조 최하위로 16강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했다.
독일을 상대로 잘 싸웠지만, 앞선 2경기 패배는 극복하기 어려운 치명타가 됐다. 한국은 1·2차전에서 의외의 완패를 당하며 고개를 갸웃하게 했다. 월드컵이라는 무게에 눌린 탓일까. 경기가 의도대로 풀리지 않으면서 선수들은 당황했고, 평소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콜롬비아전에서는 골을 넣을 수 있는 과정 자체가 꼬인 데다 수비 불안이 겹치면서 0-2 완패했다. H조에서 가장 약한 상대로 여겼던 모로코 앞에서는 2배 가까이 많은 슈팅을 퍼붓고도 골 결정력 약점을 드러내며 0-1로 졌다.
고강도 훈련을 견뎌낸 선수들은 물론 관계자나 팬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다. 크게 실망한 팬들은 독일전을 앞두고 “16강행 기적의 시나리오를 짜는 것도 의미가 없다”며 기대를 품지 않았다. 독일을 5골 차로 이기고 콜롬비아-모로코전 결과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판단이다.
그러나 마지막 경기에서 의미 있는 반전이 일어났다.
한국 여자축구는 투지를 불태우며 대회 첫 선제골과 승점까지 기록했다. 앞선 2경기에서 3골을 내주는 동안 인상적인 슈팅을 떠올리기도 어려웠던 한국은 독일을 상대로 전반 6분 만에 선제골을 터뜨렸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선 이영주의 날카로운 침투패스가 전방으로 연결됐고, 수비 뒷공간을 파고든 조소현이 패스를 받아 골키퍼와 맞선 상황에서 날카로운 오른발 슈팅으로 골네트를 흔들었다. 한국 여자축구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선제골이다.
앞선 경기에서의 부진으로 관심이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팬들을 다시 중계 TV 앞으로 끌어당겼다.
기선을 제압한 한국은 이후에도 강한 압박과 역습을 통해 독일의 빈틈을 노리는 등 냉정하게 경기를 이어갔다. 한국의 예상 밖 선전에 독일 선수들은 우왕좌왕했다. 그러나 경기 내내 한국을 괴롭혔던 ‘높이’는 막아내지 못했다. 전반 42분 독일의 장신 공격수 알렉산드라 포프에 헤더골을 내주고 말았다.
전반을 1-1로 마친 한국은 후반에도 독일 높이에 밀렸다. 후반 12분 포프의 헤더가 골망을 흔들었지만, 비디오판독(VAR)을 거쳐 오프사이드가 선언됐다. 2분 뒤에는 포프의 헤더가 골대를 때렸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선제골의 주인공 조소현이 부상으로 교체되는 등 악재가 겹쳤다.
하지만 한국은 앞선 2경기처럼 당황 끝에 자멸하지 않고, 무려 15분 이상 주어진 후반 추가시간까지 ‘절대 지지 않겠다’는 각오로 뭉쳐 투혼을 불사르며 독일의 파상 공세를 막아내고 승점1을 따냈다.
한국이나 독일에나 강렬한 무승부로 남을 수밖에 없다. 선수들은 아쉬움을 곱씹으면서도 독일전에서 승점을 획득한 뒤 태극기를 들고 함성을 내질렀다. 한국의 '태클'에 독일은 3위로 미끄러지며 자국 역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기적은 없었지만 꺼져가던 한국 여자축구에 대한 기대는 살려냈다. 독일전은 한국 여자축구가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희망도 제시했다. 돌아선 팬들을 다시 돌려놓은 한판이기도 하다. 손흥민(토트넘) 등이 활약하는 한국 남자축구도 ‘2018 러시아월드컵’ 마지막 경기에서 독일을 꺾는 파란을 일으킨 뒤 돌아선 팬들을 다시 불러 모으며 ‘2022 카타르월드컵’ 16강 쾌거를 달성했다.
단순 비교는 무리지만 한국 여자축구는 독일전에서 보여준 강렬한 경기력으로 꺾였던 팬들의 기대를 살려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동력은 확보했다. 불행 중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