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부친, 윤기중 교수 15일 별세
국내 '통계학'과 '경제학계'서 거목 평가
'원리원칙'과 '자유주의' 신념 尹에 영향
'정책·외교' 등 국정운영에도 반영 평가
윤석열 대통령이 스스로 '제1의 멘토'로 꼽았던 15일 별세한 부친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와의 부자지간은 각별했다. 윤 대통령은 고향, 진학, 가치관 등뿐 아니라 '원리원칙'을 강조하는 성격마저도 고(故) 윤 교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윤 대통령이 수차례 강조한 국정운영 방침인 '약자와의 동행' 역시 평생을 소득과 부의 분배 불평등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윤 교수의 영향이 묻어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윤 대통령과 윤 교수와의 관계는 대선 초기 때부터 주목을 받아왔다. 윤 대통령은 스스로를 '충남의 아들'이라고 소개했다. 실상 윤 대통령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태어났지만 뿌리를 '충남'이라고 외친 이유는 윤 교수의 고향이 충남 공주이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윤 대통령은 부친의 영향으로 충남 논산의 파평 윤씨 집성촌에 애정을 가졌고, 스스로를 아들로까지 표현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윤 대통령이 부친에게서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았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윤 대통령이 평생직장으로 삼았던 검사직 역시 윤 교수의 영향이 묻어있는 대목이다. 윤 대통령은 유년 시절 통계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윤 교수를 따라 경제학자를 희망했지만, '더 구체적인 학문을 하라'는 윤 교수의 말에 따라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검사가 된 이후에도 윤 대통령에게 '부정한 돈 받지 말라'는 고언을 입버릇처럼 해온 것도 윤 교수였다. 윤 대통령은 2013년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 수사로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2021년 대선 출마 결심 때 등 고비마다 부친에게 조언을 구했다고 전해진다.
윤 교수가 평생을 강조해왔던 '원리원칙' 주의 역시 윤 대통령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 교수는 한국경제학회 회장을 지냈지만 학위는 석사였다. 과거 1950~60년대 때 국내 대학 교수들끼리 동료 학자의 논문만으로 박사 학위를 주는 소위 '구제 박사(논문 박사)'가 유행할 때조차 이를 받지 않았다. 당시 "그런 식으로 학위 받는 게 무슨 소용이냐"고 말할 정도로 원리원칙에 집중했다.
이 같은 부친의 강직하고 엄한 면모는 자녀 교육에 그대로 반영됐다. 일례로 윤 대통령이 고교 1학년 때 윤 교수에게 업어치기를 당하고 기절해 다음날 등교하지 못했던 일화가 있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평소 아버지에게 많이 혼났느냐'는 질문에 "공부 안 하고 놀러 다닌다고 많이 혼났다"며 "대학생 때 놀다가 아버지한테 맞기도 했다"고 회상한 바 있다.
또 아들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인 지난해 3월 코로나19(COVID-19)에 확진돼 병원에 입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윤 교수는 원리원칙에 입각해 일체의 특혜를 거부했다. 90대의 고령에다가 대통령 당선인의 아버지였음에도 VIP 병동 등 특별 병동이 아닌 일반 코로나 환자 병동에 입원해 똑같은 진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의 원리원칙 주의가 가장 잘 드러난 사례가 지난해 벌어졌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동조합 화물연대본부의 불법 파업에 대한 대응이다. 당시 윤 대통령은 파업으로 인해 국민들의 피해가 장기화될 것이란 우려와 함께 파업 자체가 불법이란 판단에 따라 원리원칙에 따라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는 결단을 내린 바 있다.
윤 대통령의 단호한 국정운영 방식뿐만 아니라 방향성 측면에서도 윤 교수의 영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윤 대통령이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윤 교수가 서울대 법대 입학 기념으로 선물해준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의 자유'를 꼽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나아가 윤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후보 시절 인터뷰를 통해 "아버지는 원래 경제학을 하시다가 통계학을 연구하셨는데, 평생 양극화나 빈부격차에 관심을 가졌다"며 "(제가) 법경제학이나 경제법에 관심을 가진 것도 아버지와 대화하면서다"고 언급했는데, 이 같은 교육이 윤 대통령에게 자연스럽게 녹아들면서 '윤석열표' 약자와의 동행 및 복지정책의 확대로 이어지고 있단 분석이 나온다.
또 윤 교수가 월간 '사상계'에 실린 김지하 시인의 '오적'을 윤 대통령에게 읽어줄 정도로 좌우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 교육을 한 부분도 국정운영과 궤를 함께 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 6월 베트남 국빈방문 당시 국가주석 만찬에서 양국관계 발전을 강조하며 서로의 자유를 존중하고 지켜주며 함께 번영하자는 연대 정신을 강조한 바 있다. 당시에도 윤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베트남과 수교를 하자 1993년 하노이 국립경제대와 호치민 경제대 출신 유학생들을 연세대에 입학시키는 데 앞장섰던 부친의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정치권에 발을 들이고도 부친과 함께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던 점도 눈에 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021년 4월2일 윤 교수를 부축하고 4·7 재·보궐선거 사전 투표소를 방문해서는 "아버님께서 기력이 전 같지 않으셔서 모시고 왔다"고 했다. 대통령 취임 이후인 지난해 7월 12일에는 윤 교수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해 집무실 등 업무 공간을 소개하고 만찬을 하기도 했다.
윤 교수는 공주농업고등학교(현 공주생명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8년에 연세대학교 대학원을 석사 졸업했다. 1967년 일본 문부성 국비 장학생 1호로 선발돼 히토쓰바시대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윤 교수는 1968년부터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이후 1976년 한국통계학회 회장, 1992년 한국경제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고, 2001년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이 됐다.
윤 교수는 통계학(1965년), 수리통계학(1974년), 통계학개론(1983년) 등 교재를 편찬해 국내 통계학의 기틀을 잡고, 한국경제의 불평등분석(1997년)이란 저서를 통해 한국 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입체적으로 분석하는 등 한국 경제학계의 거목(巨木)으로 통한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교수가 임종 전 의식이 있을 때 윤 대통령에게 한 마지막 말은 "잘 자라줘서 고맙다" 였다고 한다.